"목없는 시신 옮겼다" 소년 절규에도…이스라엘, 공습 강행

이유정 2023. 11. 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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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중심부인 가자시티 안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은신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수뇌부의 제거 작전을 밀어붙이면서 학교·구급차 등 민간인 시설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5일(현지시간) “현재까지 가자지구 내 2500곳을 공습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지난 4일 오전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 인근 알 파쿠라 학교에 최소 두 차례의 공습을 단행했다. 사상자는 최소 수십 명으로 추산됐다. 이 학교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가 난민 대피소로 활용해왔다. UNRWA의 줄리엣 토우마 대변인은 로이터에 “이재민 가족을 위한 텐트가 있는 학교 운동장과 여성들이 빵을 굽고 있던 학교 안에서 각각 공습이 있었다”고 확인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린 소년이 “폭탄 테러가 일어났을 때 내가 여기 있었다”며 “목이 없는 시신을 내 손으로 옮겼다”며 울부짖는 동영상도 외신들에 보도되고 있다.

IDF는 이번 피해와 관련해 “상황을 파악 중”이라면서도, “IDF가 다른 목표물을 겨냥한 공습의 결과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로이터에 해명했다. IDF는 전날 구급차를 겨냥해 폭격했다는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3일 가자시티 최대 병원 알 시파 인근에서 달리던 구급차가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15명이 사망했다. IDF는 X(옛 트위터) 공식 계정을 통해 “구급차 내에서 활동하던 하마스 테러리스트를 무력화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는 성명을 내고 “구급차를 공격한 건 제네바 협약을 위반한 전쟁 범죄”라며 이스라엘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PRCS는 가자시티의 또 다른 병원인 알 쿠드스 건물 입구에도 이스라엘의 공격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구급차 공습은 외국인·중환자 대피에도 영향을 줬다. 이집트의 보안 소식통 두 명과 의료 소식통 한 명은 로이터에 “가자지구에서 부상 당한 주민들과 외국 여권 소지자들이 라파 국경을 통해 이집트로 건너가는 작업이 4일부터 중단됐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내 부상자 이송에 쓰이는 구급차가 이스라엘의 표적이 됐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설명했다.


이스라엘, 가자 남부에도 일부 공습


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 인근의 학교에 이스라엘의 공습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학교에서 공습 직후 빵 반죽과 조리 기구 등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군은 북부에 이어 가자지구 남부에도 제한적 공습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남부로 대피했던 사람들 일부가 북부로 다시 넘어오며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미정부가 추산한 가자지구 북부의 민간인 규모는 현재 40만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음식과 식수 부족에 처한 가자 지구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토머스 화이트 UNRWA 가자지구 담당국장은 AP통신에 “거리에선 ‘물, 물’을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면서 “가자는 죽음과 파괴의 현장이 됐다”고 말했다.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 지구 정부가 밝힌 사망자는 4일까지 9488명이다. 단 외신들은 이 수치가 검증되진 않았다고 보고 있다. 하마스는 “납치된 인질 60명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실종됐다”고도 주장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이스라엘 측은 5일 아랍어 X 계정에 “민간인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가자 지구 북부에서 남부로 가는 통행로인 ‘살라 아딘’ 도로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개방한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IDF는 전날 오후에도 약 3시간가량 대피 시간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대피로를 향한 미사일 폭격과 총격이 여전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IDF는 “하마스가 미사일 공격으로 민간인 대피를 막고 있다”는 글을 X에 올리며 반박하고 있다.


하마스 지도자 하니예 자택도 공습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 장관(왼쪽)이 카타르 도하에서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정치국 지도자를 맞이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의 요아브 갈란트 국방 장관과 헤르지 할레비 군참모총장은 주말 사이 각각 이스라엘 북부 국경 및 가자 지구 내부 등 전쟁의 최전선을 직접 방문하며 이번 전쟁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갈란트 장관은 4일 접경 지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투는 차근차근 잘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는 대대별로 하마스 대대를 해체하고 지휘관 12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마스의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를 찾아 제거할 것이며, 가자 주민들이 먼저 그에게 도달한다면 전쟁이 단축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갈란트 장관이 언급한 신와르는 하마스의 국방 장관 격으로, 하마스의 최고 사령관 모하메드 데이프와 더불어 요주의 인물로 꼽힌다. 그런 그를 콕 짚어 ‘공개 수배’한 셈이다.

이에 앞서 IDF는 하마스의 정치·외교 담당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의 가자 지구 자택에도 공습을 가했다. 하니예는 2019년 이후로 튀르키예·카타르 등을 오가며 활동 중인 탓에 공습 당시엔 집 안에 있지 않았을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공습을 받은 가자 지구 자택엔 그의 자녀들이 거주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이란에서 활동하는 하마스의 고위 관료인 오사마 함단은 이란 매체에 “하니예가 며칠 전 테헤란에서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면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고전 왜…“하마스 무기 이란제 업그레이드”


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에서 이스라엘방위군(IDF)의 조명탄이 알 샤테아 난민촌 상공을 비추고 있다. EPA=연합뉴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하마스가 과거와 달리 월등한 화력으로 이스라엘에 맞서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의 지상전이 시작된 지난달 27일 이후 하마스 역시 폭발물을 탑재한 무인 항공기(드론), 대전차 미사일 등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다”며 “그 배경에 이란의 무기와 전술 이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WSJ에 따르면 하마스는 자체 개발 무기인 ‘주아리 자살 드론’ 외에 이란제 아바빌-2 전술 드론, 이란의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미샤-2 등도 쓰는 것으로 분석됐다. 주아리 드론은 과거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국)에 의해 암살된 튀니지 태생 기술자 모하메드 주아리가 개발한 무인기다. 하마스가 확보한 미사일도 최대 사거리가 24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팔레스타인 무장 봉기인 ‘제 2차 인티파타’ 당시 하마스가 만들었던 1세대 카삼 로켓은 사거리 3~4㎞의 조악한 수준이었다.


누가 전쟁 범죄 저질렀나…“하마스” “이스라엘”


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서 정부 비판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시위대가 하마스에 의해 납치된 인질들의 석방도 요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번 사태를 둘러싼 각국 이해 관계자들의 ‘블레임 게임’도 가열되고 있다. 지난달 하마스의 공격으로 사망한 이스라엘인 9명의 유가족들은 최근 “하마스의 민간인 학살은 전쟁 범죄”라며 이들에 대한 고발장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접수했다. 반면 튀르키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4일 “네타냐후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며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ICC로 가져가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튀르키예는 이스라엘에서 자국 대사도 소환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튀르키예에서 자국 외교관들을 철수시켰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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