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한달만에 1만명 사망…장기화로 세계 경제 '비상등'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7일(현지시간)로 한 달을 맞이한다. 전쟁의 여파로 인적·물적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 전쟁이 더 장기화하면 유가·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지며 세계 경제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달 만에 1만명 사망…"10분에 1명 어린이 사망"
유대교 명절 직후 찾아온 안식일이던 지난달 7일 새벽, 이스라엘 남부에 수천 발의 로켓포탄이 내리꽂혔다. 포격에 이어 하마스 무장대원 수천 명이 이스라엘 남부를 급습했다. 이스라엘도 하마스 시설 등 1만 1000곳을 타격하며 '피의 보복'에 나섰다. 예비군 36만명에 동원령을 내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포위한 뒤 지난달 말부터 사실상의 지상전에 돌입한 상태다.
전쟁 한 달 만에 발생한 양측의 사망자(양측 집계 기준)는 이미 1만명을 넘어섰다. 3일 현재 하마스 측 가자지구 보건부가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9257명에 달한다. 이스라엘도 자국민 1400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했다.
특히 어린이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의 인명 피해가 극심해지면서 국제 사회에서 "비인도주의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하루 평균 어린이 400명이 죽거나 다쳤다"며 "이런 상황이 뉴노멀이 될 수는 없다"고 양측에 자제를 호소했다. 알자지라 방송도 "전쟁 이후 10분당 한 명꼴로 어린이가 사망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주민에게 피난하라는 최후통첩성 경고를 한 직후 병원·학교·난민촌까지 공격 대상에 포함되자 전쟁범죄가 의심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스라엘은 유엔·세계보건기구(WHO) 등의 휴전 또는 전쟁의 일시 중단 요청을 거부하고 오히려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하마스가 수년간 조성한 483㎞ 길이의 땅굴에 숨은 적을 계속 찾아내 싸워야 하는 이번 전쟁의 특성상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외신들은 가자지구에서 진행될 지상전이 최소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지속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양측의 인적·물적 피해가 경우에 따라 1년 이상 지속해서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하마스는 220여명으로 추산되는 인질을 일종의 협상 카드로 쓰며 의도적으로 전쟁의 기간을 계속 늘려 이스라엘 및 서방의 부담을 확대하는 작전을 펼 가능성이 크다.
무장세력 속속 개입…이란 직접 참전 변수
외신들은 만약 반(反)이스라엘·반미를 외치는 시아파의 '맹주' 이란이 이번 전쟁에 직접 개입할 경우, 전쟁이 신(新) 중동 전쟁급으로 확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란은 아직까지 직접 전쟁에 뛰어들지는 않고 있지만,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세력들이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개입한 데 이어, 역시 이란이 배후인 것으로 알려진 예멘 후티 반군도 지난달 말부터 드론과 미사일로 이스라엘 동부를 위협 중이다.
동시에 이란은 지난달 29일 이스라엘을 향해 "시온주의 정권의 범죄가 레드라인을 넘었다"(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는 경고를 보내며 중동 국가들의 반이스라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친이스라엘 대 친팔레스타인 진영으로 나뉜 ‘편 가르기’는 중동 지역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되는 기류다. 특히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 '신냉전' 기류가 전쟁을 둘러싼 국제 여론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8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이 '보란 듯' 정상회담을 진행하며 이번 사태를 논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 세계 각국에선 각자의 진영 또는 친소 관계에 따라 유대인 또는 무슬림을 대상으로 한 혐오주의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배럴당 150달러면 세계 경제 2686조 손실
서방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장기전에 따른 직접적인 인적·물적 피해와 함께 이번 사태가 유가·식량문제 등 전 세계 경제 시스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부분이다.
대표적인 예가 원유다. 만약 이번 전쟁이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결 구도로 확대될 경우, 세계 석유의 20%가 지나다니는 호르무즈 해협 등 해상통로의 안전이 위협을 받게 된다. 특히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고 나설 경우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로 불리는 아시아로 공급되는 중동산 원유 공급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 이란은 2011년을 비롯해 미국의 제재를 받을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를 위협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중동 지역의 원유 매장량은 세계 전체의 50% 수준이고, 세계 공급량의 3분의 1을 담당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량은 하루 2100만 배럴이지만 우회 수송관 수송 능력은 790만 배럴 수준에 불과하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는 전 세계 원유공급 차질로 이어지고, 그대로 '오일 쇼크'로 불릴 정도의 국제유가 상승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은행(WB)은 세계 석유 공급량이 하루 600만∼800만 배럴 줄어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할 때, 유가가 배럴당 140~157달러까지 간다고 전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배럴당 최대 2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컨설팅업체 EY파르테논과 블룸버그통신 산하 경제연구소 블룸버그이코노믹스도 150달러대의 '오일 쇼크'를 경고했다. EY파르테논은 유가가 현재 배럴당 약 85달러에서 150달러까지 오르면 글로벌 경제에 2조 달러(약 2686조원)의 손실을 안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수십 년간 세계가 목격한 것 중 가장 위험한 시기"라 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중동산 원유로 인한 글로벌 경제 쇼크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미국에서도 전쟁의 장기화를 막자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유가 급등은 내년 11월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표심을 잃게 할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상승이 특히 이집트·요르단 등 에너지 수입국에는 재앙이라고 짚었다. 이집트의 경우 물가 상승률이 38%인 상황에서, 이스라엘로부터 수입해 온 가스까지 끊기게 됐다. 매체는 전쟁 여파로 중동의 교통·물류가 불안정해지면 제조업 침체와 관광객 감소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세계은행(WB)은 또 전쟁 장기화가 중동의 불안한 식량 사정을 한층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WB에 따르면 중동 내 식량 불안 인구는 지난해 기준 3400만명인데 전쟁이 장기화하면 이보다 더 증가할 수 있다.
"전쟁 장기화는 한국 경제에 직격탄"
우리 경제도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란 참전 등 중동 전쟁으로 확전 시에는 중동산 원유공급 차질 등으로 국내 경제에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이 내년 경제를 예측할 때 기준으로 삼은 국제 유가는 배럴당 84달러였다. 그러나 이미 유가는 배럴당 90달러 안팎을 오가고 있고, 원유 가격이 더 오를 경우 내년도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국내 식료품·비주류 음료의 물가가 5% 이상 치솟으며 2011년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5%를 넘겼다. 국제 원유 가격 급등은 물가 상승을 부추길 핵심 요인이다. 이와 관련,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5일 중앙일보에 "전쟁으로 인해 원유·곡물 등 원자잿값이 오르고 물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면 주변 국가와의 무역·관광 등 서비스 수지에도 영향 줄 것"이라며 "특히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72.4%)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성장률을 끌어내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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