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입던 31세 '괴짜 코인왕'의 몰락…징역 115년형 위기
세계 3대 암호화폐 거래소 중 하나인 FTX를 창립해 한때 '코인왕'으로 불렸던 샘 뱅크먼-프리드(31)가 최장 징역 115년 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처했다. 금융 사기, 자금 세탁 등 그에게 적용된 7개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4일(현지시간) BBC는 "약 한 달 간의 재판 끝에 배심원단 12명이 만장일치로 7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했다"고 보도했다. 1심 재판을 담당하는 미국 뉴욕남부연방지법은 배심원단 판단을 기반으로 내년 3월 28일에 선고를 내리기로 했다. 뱅크먼-프리드에게 적용된 혐의의 최고형을 모두 더하면 징역 115년에 달한다.
20대에 억만장자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스탠퍼드대 로스쿨 교수인 조셉 뱅크먼과 바바라 프리드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수학에 두각을 나타낸 수재였다. 그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 진학해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회사인 '제인 스트리트'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금융 분야에 눈을 떴다.
2017년 그는 암호화폐 가격이 국가마다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차익거래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암호 화폐에 대한 규제가 강하지만 수요는 높았던 한국·일본에서는 미국에서보다 더 비싼 가격에 비트코인이 팔렸다. 그는 미국에서 산 비트코인을 일본에 팔아 수익을 남겨 '알라메다 리서치'를 세웠다.
그는 알라메다 리서치에서 번 돈으로 2019년 암호 화폐 거래소 FTX를 설립했다. 이듬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유동성 과잉 국면에 들어서자 암호 화폐 거래 건수가 치솟았다. FTX에 대한 투자도 줄을 이었다. FTX의 기업 가치는 한때 320억 달러(약 42조원)에 달했다.
투자자들은 기존 억만장자들과 다른 뱅크먼-프리드의 모습에 더 쉽게 마음을 빼앗겼다. 부스스한 머리에 티셔츠·반바지 차림은 그에게 '괴짜 같은 천재' 이미지를 덧입혔다. 그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강연에 나섰을 때도 이런 옷차림이었다. 그는 또 '효율적 이타주의(EA·Effective Altruism)'를 내걸어 자신을 알리기도 했다. EA는 데이터 등 실질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사회를 이롭게 하는 방법을 찾자는 일종의 사회운동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FTX는 파산했다. 언론 등을 통해 알라메다와 FTX의 재무 건전성에 의혹이 불거졌고, 이어 뱅크런(대량 고객 인출 사태)이 발생하면서 '코인판 리먼 사태'로 이어졌다. 조사 결과 2019년부터 알라메다 리서치가 자금난에 빠질 때마다, 뱅크먼-프리드가 FTX의 고객 자금을 빼돌려 빚 상환에 쓴 사실이 드러났다. 또 고객 자금으로 바하마의 호화 부동산을 산 혐의, 불법 정치자금으로 1억 달러(약 1312억원)를 쓴 혐의 등도 불거졌다.
뱅크먼-프리드 측은 그동안 재판에서 "연방 검찰이 (뱅크먼-프리드를) 악당이나 괴물로 만들려고 한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FTX에 위험 관리 시스템이 없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는 범죄가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전 여자친구인 캐롤라인 엘리슨 알라메다 리서치 최고경영자(CEO)와 MIT 시절 룸메이트였던 개리 왕 FTX 공동 창업자가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면서 재판의 판도가 바뀌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뱅크먼-프리드의 동업자들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대신 자신들의 형량을 두고 거래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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