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살릴 기회 있었는데…" 성폭행 계부 구속 3번 놓친 검경 [사건추적]
“얘들이 잘못되기 전까지 살릴 기회가 적어도 세 번은 있었는데….”
충북 청주에 사는 박모(51)씨는 2년 5개월 전 세상을 떠난 딸(당시 15세)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그때 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까.’ 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박씨의 딸 A양은 2021년 성폭행 피해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그해 5월 12일 충북 청주 한 아파트에서 친구 B양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 숨진 두 여학생 모두 B양 의붓아버지 원모(58)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원씨는 지난해 징역 25년이 확정됐다.
청주 여중생 유족 “살릴 기회 3번 있었다”
원씨 범행이 재판에서 모두 밝혀졌지만, 박씨와 그의 아내는 사건이 발생한 뒤부터 줄곧 부실 수사를 주장해 왔다. 박씨는 “최초 성폭행 피해 신고를 그해 2월 1일에 했다”며 “가해자 구속 영장은 그로부터 113일이 지난 5월 25일에야 발부됐다. 이미 아이들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고 말했다. 그는 “사망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경찰은 검찰, 검찰은 경찰을 탓하는 태도를 보였다. 책임을 미루는 수사기관이 원망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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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진술 신빙성 부족” 영장 반려
양 기관이 비공개 태도를 고수하자, 박씨는 행정소송 끝에 지난 1일 검찰 수사 보고서 일부를 받았다. 박씨 주장처럼 검찰이 공개한 수사보고서에는 여중생 사망 전까지 3차례에 걸쳐 영장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 초기 경찰은 신고 한달 이상 지난 2021년 3월 10일 원씨의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이에 검찰은 기각했다.
검찰은 당시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원씨가 성폭행 피의자로 2월 19일 경찰에 제 발로 ‘임의출석’해 조사받은 것도 기각 사유로 적었다. 첫 영장이 반려되고 8일 뒤인 3월 18일, 경찰은 다시 원씨의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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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6일 전 변호인도 “구속 수사” 요청
경찰은 B양을 상대로 피해자 진술과 영상촬영을 진행했으나, 동행한 B양 친모가 방해하는 바람에 사실상 무위로 끝났다. 학대를 방임한 B양 친모를 동석시킨 것이다. 대신 경찰은 2021년 5월 11일 ‘성범죄 피해가 의심된다’는 병원 진료기록부 등을 첨부해 두 번째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로부터 보완수사 요구를 받은 지 한 달 반이 더 지난 시점이다. A양과 B양은 이튿날 세상을 등졌다. 유서엔 사건이 반드시 해결돼 피의자가 벌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해 5월 13일 자에 작성한 경찰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청주지검은 5월 12일 오후 전화로, 5월 13일 오전 검사실에서 경찰을 만나 ‘(영장신청)서류 접수 취소 방법으로 반려한다’고 구두 지휘했다. 반려 사유로는 “피해자 진술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적었다.
하지만 두 여중생의 죽음 이후에나 보강수사에 탄력이 붙었고, 결국 원씨는 25년형을 받았다.
박씨에 따르면 B양 사건을 맡은 국선변호인도 당시 구속 수사와 함께 원씨 부부와 B양을 분리해달라는 의견서를 두 차례(5월 3일, 5월 6일)나 냈다. 박씨는 “경찰이 수사를 부실하게 한 점, 검찰이 피해자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임해 수사가 지연된 사실이 드러났다”며 “내 딸 아이에 대한 범죄만으로라도 가해자를 구속했다면 비극적인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 중인 유족 측은 공개된 수사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할 예정이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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