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 "BTS, 20대 만화가 나를 자극... 큰 영감 얻어"

장혜령 2023. 11. 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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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감독

[장혜령 기자]

 영화 <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감독
ⓒ 미디어캐슬
 
한국에서는 '오겡끼데스까'로 유명한 <러브레터>(1995), < 4월 이야기 >(1998),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 <하나와 앨리스>(2004), <립반윙클의 신부>(2016), <라스트 레터>(2020) 등 이와이 슌지를 믿고 따르는 충성도 높은 팬들이 많다. <러브레터>가 나온 지 30년 가까이지만 여전히 소년, 소녀 감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그에게 청춘, 청년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지난 11월 3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와이 슌지 감독을 만나 신작과 일본 영화업계와 작업 방식을 들을 수 있었다. 신작 <키리에의 노래>는 일본을 대표하는 젊고 재능 있는 배우와 작품을 제작했다. 여전히 젊음을 테마로 최고의 배우와 협업하고 있는 저력을 확인하는 영화다.

이번 영화는 '지진'이라는 재난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이 슌지 감독에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큰 상흔으로 남았다고 했다. <키리에의 노래>를 통해 상처 입은 영혼을 희망의 노래로 치유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그는 <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 >(2011)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인식 전환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든 바 있다. <키리에의 노래>는 그 연장으로 볼 수 있다.

- 일본에서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를 애도하는 여러 영화가 제작되고 있습니다. 감독님에게 2011년 어떠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가요.
"일단 제가 나고 자란 곳에서 지진이 나기도 했고요. 지난 10년 동안 재해 다큐멘터리나 '꽃은 핀다'라는 노래도 만들면서 돌이켜보니 그날 하루 보다, 그 뒤 오랜 시간 일본을 떠올려 보게 되더라고요. 저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걷다가, 오늘까지 이르렀던 것 같네요."

- <키리에의 노래>는 동일본 대지진 12년 후 세상에 나왔습니다. 키리에가 지진 후 쓰나미가 덮치기 전 동생을 찾아다니다가 극적으로 만납니다. 그 이후 장면은 상상으로 남긴 채 파트가 달라지는 것처럼 흑백으로 처리됩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하나의 마침표라 보시면 되어요. 쓰나미가 밀려온 지점부터 구획이 그어지는 단절이에요. 원래 그 뒤 이야기가 있어요. 어린 루카가 혼자 구출되는 장면, 나츠히코가 달려와 재해 지역에 도착하는 장면 등이 있었지만. 최종 단계에서 보여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동명 소설에서도 구체적인 것은 넣지 않았어요."

- 10월에 주연 세 분을 이끌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다양한 행사를 소화하셨습니다. 여전히 <러브레터>를 인생 영화로 꼽는 한국 팬도 많아요. 한 달 만에 재방문한 소감, 한국 개봉 3일 만에 1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까지 들은 기분이 어떠신가요.
"20년 전 부산에 처음 방문했는데, 20년 후에 일본에서 가장 재능 있는 배우와 영화를 만들고 부산에 또 온 거라 감회가 남달라요. <러브레터>를 본 세대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봐주셨다는 데 의미가 있죠. <러브레터> 개봉 때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세대가 <키리에의 노래>를 봤다고 하니 묘한 감정이 듭니다. 제가 흡혈귀처럼 나이 먹지 않나, 타임머신을 타고 뚝 떨어진 건 아닐까 싶어요. 다양한 관객이 거듭 제 영화를 봐주시면서 이어진 결과라 매우 감사합니다."
 
 영화 <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감독
ⓒ 미디어캐슬
 
- 영화감독, 영상 작가, 각본가, 음악가 등 천부적인 재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전방위 아티스트로서의 감각을 일깨우는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키리에의 노래>도 그렇고 젊은 배우의 재능에서 큰 영감을 얻습니다. 만화 업계로 치면 20대 만화가이고, 한국에서는 BTS가 저를 자극하고 있어요(웃음). 청년들이 제대로 된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봐요. 젊은 예술가의 등을 보면서 열심히 쫓아가고 있어요.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엄청난 영감이 됩니다."

- 한국에서는 화이트 이와이, 블랙 이와이라 불리면서 감독님이 만든 뮤직비디오, TV 시리즈, 영화, 만화, CF, 음악, 소설 등을 두고 '이와이 월드'라고 부릅니다.
"저는 학창 시절부터 8mm 영화를 찍었어요. 만화, 음악도 직접 만들었고 그 과정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죠. 프로 업계로 발 들이면서 바로 영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광고, 뮤직비디오까지 만들면서 영화에 닿아갔죠. 원하는 걸 알아내고 그 페이스로 온 것뿐인데 이와이 월드라고 생각해 주니 기쁘네요. 그만큼 제 작품에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다들 창작은 어렵거나 높은 허들 위에 있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저를 보시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아실 거예요. 학생 때랑 변함없는 저를 본보기로 생각해 주세요. 제가 그래왔듯이 청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디렉터스 컷(178분)에서 1시간 정도 덜어낸, 119분 버전이 한국에 정식 개봉했습니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편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3시간짜리를 2시간으로 줄일 때 아이나 디 엔드의 노래를 줄이지 않는 방향으로 신경 썼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나 디 엔드의 노래를 많이 들어주실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 신예 '아이나 디 엔드'는 한국의 '아이유'가 언뜻 겹쳐지기도 합니다. 마치 울부짖으면서 호소하는 듯 강렬한 허스키 보이스가 처연하게 들리기도 해요. 키리에 역에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뮤지션 아이나 디 엔드를 캐스팅하게 된 이유가 듣고 싶습니다.
"<키리에의 노래>에는 <떠돌이 고제 오린>(1977, 오린의 발라드)을 오마주한 장면이 있어요. 중학교 때 봤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맹인 여성인데요. 일본 전통 악기인 샤미센을 들고 전국을 떠돌아요. 실제 맹인 음악가가 지금도 존재하고 전국을 떠돌면서 연주합니다. 그중 유명한 맹인이 노래하면 주변 창문이 흔들릴 정도로 전율이 일어났다는 전설도 전해져요. 아이나 디 엔드의 노래를 들었을 때 그 맹인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머릿속에 전설의 맹인과 아이나 디 엔드가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젊은 예술가들에게서 큰 영감 얻어"
 
 영화 <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감독
ⓒ 미디어캐슬
 
- <러브레터>(1995), <라스트 레터>(2020), <키리에의 노래>(2023)의 주인공 키리에와 잇코도 이름이 두 개인데요. 죽은 자와 산자, 1인 2역을 설정 이유가 듣고 싶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인간을 생물학적 관점으로 보길 좋아했고 생물학자도 되고 싶었습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사고방식, 생물학적 관점에서 복원하고 싶었습니다. 나의 반은 엄마, 아빠고 동시에 나는 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도 나와 같은 서로 공유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형제도 단순히 혈연으로 이어진 걸 넘어서 어느 부분이 같다고 느꼈어요.

윤회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믿는데요. 일반적으로 생을 뛰어넘어 다른 인간이 된다고 보지만, 저는 그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족은 어쩌면 크론, 도플갱어, 쌍둥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즉, 같은 사람, 한데 묶인 존재라고 말이죠. 이런 생각을 은근히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1인 2역 설정이 계속되는 이유가 되겠네요. 감독판 버전에서는 나츠히코 가족이 다 모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서로 닮은 유명 배우를 모아 가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 엔딩 크래딧도 인상적입니다. 쿠키영상이나 에필로그처럼 연출하신 의도가 있을지도 여쭙습니다.
"엔딩 크래딧 때 어린 루카의 노래도 들려오면서 현재 키리에의 일상이 잔잔하게 소개되는데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키리에의 일상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갈지, 또는 여행할지를 보여주면서 관객을 천천히 키리에의 현실에서 본인 현실로 돌아가게 해주려던 의도였습니다. 물론 키리에가 업계 인정도 받고 대히트로 명성을 얻으면 좋은 일이겠지만 내가 지금 이곳을 걷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과연 프로 뮤지션으로 성장이 정답일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떠올려 보면 영화 속에서 성공하는 인물은 하나도 없어요. 그 생각을 엔딩에 넣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 <키리에의 노래>가 일본과 한국 거의 동시 개봉인데요. 일본 관객 중 기억나는 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제 영화 중에 가장 많은 리뷰가 달렸어요. 그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이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음 날에도 울고 있다'는 리뷰였죠. 제가 다음날까지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영화를 만들지 않았는데...(웃음) 전 공감이 안 돼서 감수성이 옅어졌나 싶었어요. 지금은 영화를 본 후 감정이 다음 날까지 지배하지 않기 때문인 거죠. 아직도 관객이 순수한 감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부러웠습니다."

-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혹은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모든 장면에 추억이 담겨 있는데요. 오프닝과 클로징을 장식한 설원에서 뒹구는 장면에 애착이 있어요. 눈이 있었을 때 찍어야 해서 첫 촬영이었거든요. 키리에와 잇코가 눈밭을 뒹굴고 있고, 키리에가 '사요나라'를 부르고, 잇코가 듣고 있잖아요. 이 노래를 관객 모두가 듣는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상징이 되는 장면으로 잘 시작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영화 전체를 드러내는 이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크랭크인 때 엄숙했던 기억이네요."
  
 영화 <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감독
ⓒ 미디어캐슬
 
- '키리에'라는 이름은 크리스천에서 따온 것 같아 성스러운 느낌마저 듭니다. 미사곡에서 들리기도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키리에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여성 이름으로 위화감 없이 쓰여요. 하나님을 뜻하기도 하고 미사곡의 의미도 있습니다. 모차르트 레퀴엠 중 키리에 파트가 따로 존재할 정도로 의미 있는 이름이라 사용했습니다."

- 팬데믹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요. 앞으로 스트리밍 서비스가 영화산업을 지배하고 AI가 만드는 창작물이 많아지는 상황이 온다면, 마지막으로 감독님만의 생존 방법을 궁금해할 분들에게 조금만 들려주실 수 있나요.
"영화나 영상을 만드는 창작자 입장에서 본 업계는 옛날부터 격하게 변화하는 장이었어요. 카약 같은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요동치는 급류 속에서 열심히 헤쳐 나가야 하는 작업이죠. AI 때문에 아마 업계가 상상하지 못할 시대로 접어들 거라 믿어요. 그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작업할 공간을 찾아, 나름대로 할 수 있는 표현을 꾸준히 해나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키리에의 노래>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충격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키리에(아이나 디 엔드)가 음악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뮤지션의 성장을 노래한다. 그 과정에서 종적을 감추었던 친구 잇코(히로세 스즈)와 연인을 잃고 슬픔에 잠긴 나츠히코(마츠무라 호쿠토)와 재회하는 이야기다. 11월 1일 개봉해 절찬상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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