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타격대' 김기동 감독의 우승이 더 값진 이유
[이준목 기자]
▲ 날아오르는 김기동 감독 4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23 하나원큐 대한축구협회(FA)컵 결승 포항 스틸러스와 전북 현대의 경기. 우승을 차지한 포항 선수단이 김기동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
ⓒ 연합뉴스 |
'기동타격대'가 포항 스틸러스에 10년 만의 FA컵 우승이라는 값진 선물을 안겼다. 수장인 김기동 감독 개인으로서는 사령탑 5년 차 만에 거머쥔 첫 우승 타이틀이다.
김 감독이 이끄는 포항은 지난 11월 4일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2023 하나원큐 대한축구협회컵 결승전에서 전북 현대를 4-2로 제입하고 정상에 섰다.
마침 결승 상대가 전북이라는 것도 포항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두 팀은 지난달 28일 K리그 35라운드 경기에서 발생한 '선수교체 실수사건'으로 갈등을 빚었다. 포항은 해당 경기에서 교체 선수를 잘못 적는 실수를 저질렀고 심판의 착오까지 겹치며 기록상 12명이 뛰는 상황이 발생했다. 전북이 이를 문제삼아 포항에 몰수패를 내려줄 것을 요청하면서 양팀은 FA컵 결승전을 앞두고 미묘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또한 포항은 그동안 공들여 키운 핵심 선수들이 몸값이 높아지면서 타 구단으로 이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중 다수가 전북 유니폼을 입었다. 손준호, 김승대, 일류첸코, 송민규 등은 모두 포항에서 활약하다가 전북으로 갔던 선수들이다. 특히 가장 최근까지 포항에서 뛰었던 송민규는 FA컵 결승전에서 친정팀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고 세리머니를 펼치다가 포항 팬들의 야유를 받기도 했다.
포항의 산증인 김기동 감독
▲ '이겼다' 4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23 하나원큐 대한축구협회(FA)컵 결승 포항 스틸러스와 전북 현대의 경기. 포항 김기동 감독이 우승을 확정 짓고 주먹을 쥐고 환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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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감독은 포항 역사의 산증인이다. 1991년 포항의 전신인 포항제철 아톰즈에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고, 부천 SK(1993-2002)를 거쳐 다시 포항에 복귀하며 은퇴할 때까지 선수생활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포항맨'으로 보냈다. 특히 세르히오 파리스 감독 시대였던 2000년대 중후반 2007년 K리그, 2008년 FA컵,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을 모두 함께했고, 말년에는 2010년대의 황선홍 시대도 경험했다.
김 감독은 은퇴 이후 23세 이하 대표팀 코치를 거쳐 2016년 친정팀 포항의 수석코치로 복귀했고 2019년에는 자신이 보좌하던 최순호 감독이 경질되면서 마침내 포항의 12대 감독에 취임했다.
김 감독은 첫 시즌 포항을 리그 4위로 반등시키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20시즌에는 리그 3위- FA컵 4강으로 팀을 이끌며 우승트로피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K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2021시즌에는 리그에서 9위에 그치며 하위스플릿 추락의 수모를 당했만, 대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올리며 희망을 남겼다. 2022시즌에는 울산-전북의 양강에 이어 다시한번 리그 3위에 오르며 명예를 회복했다.
그리고 2023시즌은 김 감독의 사령탑 5번째 시즌이자 포항으로서도 창단 50주년을 맞이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시즌이었다. 김 감독은 주축 선수들의 공백 속에도 리그 2위에 이어 FA컵 우승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으며 커리어 하이를 경신했다. 무엇보다 무관 감독의 꼬리표를 벗고 파리아스-황선홍같은 역대 포항의 레전드 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반열에 오르게 됐다.
포항은 전통적으로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이었고 우수한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갖춘 구단으로 명성을 떨쳐왔다. 하지만 투자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어서 라이벌 울산이나 전북같은 빅클럽들에 비하여 전력상으로는 항상 열세였다. 매년 핵심선수들이 리그 내 경쟁팀이나 해외리그로 빠져나가면서 전력을 유지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은 포항은 급기야 더이상 명문이 아니라 '셀링클럽(선수를 팔아 수익을 올리는 구단)'이 됐다는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김기동 감독의 업적이 더욱 빛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감독은 유망주들을 적극 기용하고 유연한 전술 변화와 선수들의 포지션 이동 등을 통해 약점을 메꾸며 매년 기대 이상의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
국가대표급 선수가 드물고, 그나마 주전들이 계속해서 이탈하는 포항의 상황 속에서도 핑계나 변명을 대는 모습을 찾기 힘들 만큼 팀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소통 친화적인 성격으로 선수들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 언론-팬들과의 관계도 우호적이다.
무엇보다 김 감독의 최대장점은 공격과 수비전술을 짜는 데 모두 능하고 한정된 선수자원과 팀 상황에 맞춰서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이 K리그에서 가장 탁월한 '지략가'라는 점이다. 유럽 빅리그와 비교할때 포항이 K리그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도르트문트(독일) 정도의 위상이라고, 김기동 감독은 디에고 시메오네(아틀레이코)나 위르겐 클롭(리버풀)을 떠올리게 한다. 거인 골리앗에 해당하는 '다윗'처럼 이른바 강자들의 독주체제를 견제하는 대항마로의 포지션이다.
실제로 포항은 올 시즌 개막 전만 하더라도 하위권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초반부터 당당히 상위권에 자리잡았고, 울산-전북 등 강팀들을 상대로는 더욱 끈끈해지는 모습을 보이며 막판까지 우승 경쟁의 대항마로 활약했다. 결국 울산의 2연패를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우승팀 울산보다도 적은 리그 최소패(5패)를 기록중이다.
팬들은 이처럼 한정된 전력에도 불구하고 강팀들과 대등하게 맞서는 포항 축구의 모습에 소수정예 이미지와 김기동 감독의 이름을 결합시켜 '기동타격대'라는 멋진 별명을 선사하기도 했다.
김기동 감독은 FA컵 우승 직후 "감독이 된 후 그동안 꿈꿔왔던 것을 이뤘다. 팬들에게도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선물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라며 감개무량한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오늘 만큼은 승리하고 싶었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에게 오늘 우승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선수들을 믿었기 때문에 우승할 수 있었다"며 선수들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
포항과 김기동 감독의 존재가 없었다면 올시즌 K리그의 순위경쟁은 상당히 맥빠진 양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포항에게 있어서 최고의 자산은 스타급 선수보다도 김기동 감독이라는 훌륭한 지도자를 찾아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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