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조코위 아들 품었다…대권 삼수 도전하는 '인니 트럼프' [후후월드]

박소영 2023. 11. 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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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사전 > 후후월드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 "나의 정치적 유산 후계자는 바로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

인도네시아 대통령 후보 프라보워 수비안토(왼쪽)와 그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가 지난달 2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육군병원에서 대통령 후보 필수 건강검진을 받기 전에 기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내년 2월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프라보워 수비안토(72) 국방장관이 최근 조코위 대통령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36) 수라카르타(솔로)시 시장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후 이렇게 말했다. 프라보워와 조코위는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일 수 없는 정적(政敵)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프라보워는 2014년과 2019년 대선에서 조코위 대통령에게 연달아 패배했다. 그는 패배할 때마다 부정선거라고 주장했고, 특히 2019년엔 그의 지지자들이 화염병·돌을 던지는 폭력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던. 그랬던 프라보워가 조코위 장남을 ‘정치적 아들’이라고 공표하자 인도네시아 정계가 시끄럽다.


인기 얻으려 '정적' 조코위 아들 손 잡아

프라보워 지지자(가운데)가 지난 2019년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조코위가 승리했다는 대선 결과가 발표된 후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프라보워가 조코위 장남을 품은 이유는 두 번이나 실패한 대권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조코위는 퇴임을 앞뒀지만 지난달 지지율이 8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에 인기가 많다. 인도네시아 MZ세대(1981~2012년 출생)는 전체 인구 중 50%가 넘는 중요한 유권자다. 기브란은 정치 경력이 고작 2년이지만,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이들의 지지율을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외교 전문매체 디플로맷은 프라보워는 젊은 유권자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 조코위의 아들을 부통령으로 지목하는 신중하고 계산된 도박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명교 한국외국어대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교수는 "지지율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전형적인 권위주의자인 프라보워가 출신·배경·이념 등 많은 부분에서 완전히 다른 조코위와 손잡았다는 게 정말 놀랍다"고 했다.

프라보워와 조코위는 각각 인도네시아판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으로 비유됐다. 프라보워는 엘리트층의 국수적 보수주의자고, 조코위는 소탈한 서민층으로 중도 개혁성향을 가지고 있다.


엘리트 군인 출신에 재산은 2000억원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이 지난 8월 21일 미 항공업체 보잉 F-15EX 전투기를 인도에니사 공군에 도입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후 조종석에 앉아 엄지를 들어 올렸다. AFP=연합뉴스

1951년 10월 17일 수도 자카르타에서 태어난 프라보워는 엘리트 집안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이전인 1968~98년까지 30년간 철권을 휘둘렀던 수하르토 전 대통령 내각에서 경제부와 연구기술부 장관을 역임했다. 프라보워는 10대 후반 영국 런던에서 미국 학교에 다녔고, 인도네시아에 돌아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특수부대에 복무했다.

1983년 32세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딸과 결혼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혼란기에 민주화 운동가 납치·실종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1998년 불명예 제대하면서 아내와도 이혼했다. 이후 요르단으로 망명했고, 고위층 인맥을 이용해 형과 함께 제지·석유·가스·팜유 등의 사업에 성공하면서 엄청난 부자가 됐다. 지난해 기준 그의 재산은 2조3000억 루피아(약 2000억원)에 이른다.

지난 2004년 정계로 돌아온 그는 2008년 대인도네시아운동당(그린드라당)을 창당했다. 무슬림 보수세력의 지지를 기반으로 세력을 키웠다.

조코위 대통령(왼쪽)과 수비안토 국방장관이 지난 2019년 4월 대선 당시 유세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반면 조코위는 중부 자바 섬 솔로시의 빈곤층 가정에서 태어나 가구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군부 출신도, 유력 정치 가문 출신도 아니었다. 오히려 백지 같은 배경으로 소탈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구축해 농어민과 공장노동자 등 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조코위는 재선에 성공한 후, 프라보워에게 국방장관직을 요청하면서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정적도 끌어안은 대인 면모로 호감도가 더 올라갔다.

국방장관을 맡은 이후 프라보워는 조코위와 맞서는 대신 대화하고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소셜미디어(SNS)에 자주 노출하며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그렇다고 조코위에 무조건 굽히진 않았다. 일례로 지난 2019년 한국형 전투기(KF-21 보라매) 사업 분담금 문제를 놓고 조코위가 한국 정부와 한창 협상 중이었는데, 프라보워는 국방장관이 되자마자 전면 검토하겠다며 재협상을 보류시켰다.


조코위 세습 정치, 프라보워 표 잃을 수도

프라보워가 조코위 장남 덕을 볼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들을 통해 세습 정치를 시도하고 있는 조코위에 대한 여론이 남은 100여일 동안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조코위는 줄곧 "나는 직선제의 산물"이라며 "(헌법 개정해 3선 연임) 제안을 하는 사람은 내 뺨을 때리고 싶어하는 아첨꾼"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자녀의 정계 진출을 부인했다. 그랬던 조코위의 장남은 부통령 후보가 됐고, 사위와 막내아들도 정치인이 됐다. 미 정치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피터 멈퍼드 동남아 분석가는 "정치 왕조 출신이 아니지만 유명한 정치인인 조코위가 왕조를 만들고 있다"며 "정치적 아웃사이더로 권력을 잡은 사람이 180도 변신했다"고 전했다.

안와르 우스만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장(오른쪽)이 지난달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헌법재판소 청문회에서 판결을 낭독하고 있다. 안와르 헌법재판소장은 지난해 5월 조코위 대통령 여동생과 재혼했다. EPA=연합뉴스

특히 장남 기브란의 경우, 지난달 헌법재판소에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된 사람은 연령 제한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 소원이 받아들여져 출마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조코위 매제인 안와르 우스만 헌법재판소장이 기브란에게 유리한 쪽에 손을 들어줘 논란이 되고 있다.

종전 선거법에 따르면 만 40세 이상만 대통령·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호주국립대의 사나 재프리 정치사회 연구원은 "조코위는 외부에서 온 인물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인기가 많은데, 만약 그도 역대 정치 왕조를 세웠던 사람들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결국 지지자들을 실망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프라보워의 지지율은 37%, 강력한 경쟁자인 간자르 프라노워 전 중부 자바 주지사는 35%를 기록했다. 조코위의 세습 정치에 대해 48%가 걱정하고 있다고 응답해 조코위 장남의 합류로 프라보워는 표를 잃을 수도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서명교 교수는 "조코위를 지지하는 이들 중 일부는 장남 발탁이 찜찜하긴 해도, 군부 출신 보수적인 프라보워를 잘 견제하는 역할을 할 거라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면서 "다만 권위적인 프라보워가 당선되면 지난 10년간 쌓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인도네시아 대선은 내년 2월 14일에 실시된다. 이 선거에서 과반 득표와 절반 이상의 주에서 20% 이상 득표를 확보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후보만을 놓고 내년 6월 결선 투표가 진행된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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