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대책으로 '자동육아휴직'?... 웃음이 나온 까닭
[최지혜 기자]
결혼 전에는 부러운 친구들이 많았다. 체력이 좋아서 몇 날 며칠 밤을 새우고 놀아도 끄떡없는 친구,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어 비수기에 싼값으로 여행을 즐기는 친구,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축복받은 체질의 친구 등. 샘이 많은 나는 온갖 종류의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살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달라졌다. 신기하게도 아이를 낳은 지금은 그런 친구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 밤새고 놀 일도 없으며, 아이와 함께 가는 여행을 생각하면 챙겨야 할 목록이 먼저 떠올라 피곤하다. 생존 운동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요즘엔 살찌는 건 상관없으니 건강만 하면 좋겠다.
▲ 지난 10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한 어린이집 교사와 아이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
ⓒ 연합뉴스 |
물론 부러운 친구들이 있다. 남편이 정시 퇴근해서 평일 저녁에 함께 저녁밥을 먹는 집, 전쟁 같은 아침 등원을 남편이 도맡아 하는 집, 남편이 주말에 출근하지 않는 집 등 남편의 육아참여도가 높은 집들이다.
세종으로 이사 와서 새로 사귄 친구 한 명도 그런 집에 산다. 정부출연기관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남편은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롭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아이의 아침 등원과 저녁 하원 중 하나는 무조건 맡는다. 남편은 대부분 정시 퇴근해서 아이 목욕부터 크고 작은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체감상 남편의 육아참여도가 높은 도시인 이곳에서도 눈에 띄는 케이스랄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엄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그 집 엄마인 친구는 얼마 전에 둘째를 가졌다.
사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우리 집 가장도 고군분투 중이다. 아이가 아파서 가정보육이라도 하는 날은 더 그렇다. 밤 10시가 넘어 들어와서 부랴부랴 늦은 저녁을 챙겨 먹고 분리수거며 설거지며 밀린 집안일을 돕는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소파에 기대 잠이 든 남편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든다. 이런 상황인데 한결같이 아이를 더 낳고 싶다고 말하는 남편. 둘째를 낳으면 일찍 오겠다는 공수표를 수도 없이 날린다.
▲ 지난 10월 25일 오후 서울의 한 구청 민원실에 출생신고서가 비치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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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남편도 얼마 전 둘째를 가진 친구네 집을 부러워한다.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둘째'에 대한 고민은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얼마 전 암 판정을 받은 아빠 덕분에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아빠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얼마 전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지난 추석 부모님 댁에 방문했을 때 아빠는 수척해진 얼굴로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OO이(첫째 아이) 동생 낳아라. 아빠 소원이다."
'둘째는 없다'는 내 다짐을 뒤흔들 마지막 복병이 남았다. 바로 4살 난 딸 아이다. 보통 동생에 관심이 1도 없다가도 5살 정도 되면 동생을 요구하는 외동들이 하나둘 출몰한다.
갑작스러운 태도변화에 부모들은 당황스럽다. 둘째를 고민하던 한 지인의 집도 얼마 전 그 일을 겪었다. 동생이 싫다고 말하던 외동아이가 '궁서체'로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다. 처음엔 보살펴줘야 해서 양보해야 할 것이 많겠지만 조금 크면 함께 놀 수 있어서 좋겠다고 했단다. 그 말투와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그냥 넘길 수 없었다고 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건 지인의 남편이다. 그 집은 남편의 육아참여도가 높아서 되레 남편이 둘째를 거부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의 경우 아직은 '동생이 싫다'고 한다. 동생이 생기면 엄마가 안 놀아 줄 거 같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다행인지. 하지만 언제 돌변해서 동생을 낳아달라고 떼쓸지 모르겠다. 5살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른이 돼서도 외동이길 원하는 아이는 없다'는 말도 자꾸 생각난다.
둘째를 낳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적이 있다. 임신부터 턱턱 숨이 막힌다. 어찌어찌 임신과 출산을 넘긴다 해도 '독박육아'라는 큰 산이 턱 하고 버티고 있다. 이젠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울 테니 두 아이를 케어하는 일은 오로지 내 몫이 될 것이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된다.
▲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왼쪽 네 번째)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저출산 고령사회운영위원회 및 인구정책기획단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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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중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육아휴직을 더 마음 편히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들을 검토 중이라는 기사를 봤다. 출산휴가 끝난 뒤 눈치 보지 않고 바로 육아휴직 쓸 수 있도록 '자동 육아휴직제'를 추진하는 한편, 육아휴직을 하면 소득이 반토막으로 줄어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지적에 급여 상한선을 월 최대 15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올리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단다. '관계 부처랑 논의를 시작할 계획'인 수준일 뿐이라 세부 방안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맞벌이 부부 중 일부 여성의 경우 정부 정책의 의도대로 눈치를 보지 않고 자동 육아휴직을 할 수 있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동육아휴직을 반기는 기업이라면, 애초에 눈치를 주는 일은 없지 않을까. 결국 또 소수의 가정만 혜택을 받는 반쪽짜리 정책이 될 것 같은 인상이다.
한편으로는 자동육아휴직 하나로 여성들이 아이를 더 낳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좀 웃기다.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느낌이랄까. 육아휴직 급여를 50만 원 더 준다 해도 결국 월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정도로는 경제적 이유로 육아휴직을 안 할 사람이 더 하지도 않을 텐데, 이게 정말 유효한 대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지난 7월 일명 '노란버스법'이 발표됐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노란버스법'은 학생들이 학교 일정에 맞춰 이동하는 모든 과정에서 통학버스인 '노란버스'만 이용하라는 법안이다. 경찰청은 '소풍 등 비정기적 운행 차도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 대상에 포함되며, 위반 시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공문을 교육부에 보냈고, 교육부는 각 시·도 교육청에 이런 지침을 전달했다.
이후 일선 학교는 대혼란에 빠졌다. 당장 노란 버스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초등학교 자녀를 둔 친구들의 단톡방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교장들이 사고가 날까 봐 몸을 사려서 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이 몽땅 취소가 됐다면서.
"정책이 그지 같아. 이래놓고 애 낳으라니."
▲ 지난 10월 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코베 베이비페어에서 관람객이 영유아 이불 등 상품을 살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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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지 슬쩍 물어본 적이 있다.
"육아휴직? 나 육아휴직 쓰면 우리 팀 없어져."
그렇다. 정책이 아무리 이렇고 저렇고 해도, 우리 집은 해당무다. 사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쓴다고 해도 걱정이다. 당장 내년에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의 대출금은 어떻게 갚을 것이며, 생활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치솟는 물가에 외벌이로는 아이 한 명 키우는 것도 빠듯한데, 육아휴직을 하면 이마저도 절반 이하로 깎인다. 살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째를 가지려면 로또에 당첨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 3월 이후 2022년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수치에 놀란 정부에서는 부모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이런저런 정책들을 내놨다. 얼마 전엔 소아과 부족으로 인한 '오픈런'을 해결하고자 소아청소년과 수가를 개선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아기를 낳으면 저렴한 금리로 집을 살 수 있는 '신생아특례대출'도 내년 1월에 시행예정이다.
하지만 둘째를 고민하는 입장에서 정부가 제시하는 저출생 해결책들은 여전히 납작하기만 하다. '안 낳는다'에서 '낳는다'로 마음을 돌리기에는 체감상 집값도, 교육비도, 노동환경도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의 획기적인 정책에 기대어 못 이기는 척 둘째를 낳고 고민을 끝내면 좋으련만. 효녀딸로 아픈 아버지의 소원도 이뤄드리고, 남편에게 일찍 퇴근하겠다는 말이 공수표가 아님을 증명할 기회도 주고 말이다. 첫째를 낳을 때도 이미 노산이었던 나는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그건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 0.7을 기록한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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