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칼로…" 사위 살해한 장인, 택시기사에 고백한 그날밤 전말

문현경 2023. 11.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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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30대 사위를 살해한 50대 남성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뉴스1]


지난해 8월, 서울 광진구에 사는 중국인 A씨(56)의 집으로 사위 B씨(35)가 찾아왔다. 딸 부부가 한국에 다시 들어온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어느 일요일이었다. 사위는 “제가 예전에 돈 드린 적도 있지 않냐”며 70만원을 요구했다. A씨는 거절했다.

3년 전 딸의 결혼으로 장인과 사위가 되었으나, 둘 사이는 좋지 못했다. A씨는 딸에게 가정폭력을 행사한 사위가 미워 또 다른 폭력으로 이를 해결하려 한 적이 있었으며, B씨는 장인이 경제적 지원을 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낮에 왔던 사위는 밤에 또 와 같은 요구를 했다. “아들에게 농기구를 사 줘야 해서 돈을 줄 수 없다”는 A씨와 “사람 구실도 못 하는 아들에게 뭘 사 주냐”는 B씨는 다투기 시작했다. A씨는 딸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녀는 휴대폰 영상을 통해 ‘아이를 기르지 말아라’ 하는 아버지와 ‘애 버려봐라, 다 죽여버린다’ 하는 남편을 봐야 했다.

통화 종료 후, 말다툼은 몸싸움으로 격화했다. 그 과정에서 B씨가 사망했다. A씨는 “사위가 칼을 집어 들기에 손목을 잡아 칼을 빼앗으려 한 것 외에는 기억나는 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공소장에는 A씨가 과도로 B씨의 가슴 부위를 1회 찔러 살해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건 발생 한 달 만에 구속기소된 A씨는 지난 2월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국선변호인은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 주장을 시도해봤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처의 깊이나 방향을 고려하면 살해할 의도로 칼을 깊숙이 찔렀다고 보인다”며 “칼을 빼앗으려 실랑이를 벌였다면 A씨 손에 방어흔이 생겼을 텐데 없고, B씨 손에만 방어흔이 있다”고 했다.

문제의 칼에서 A씨의 DNA는 나오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칼에 묻은 B씨의 혈흔에서 검출된 DNA 농도가 짙어 칼을 손에 잡은 A씨의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A씨의 옷에서 나온 B씨의 혈흔도 살인의 정황 증거로 인정됐다.

서울동부지법. 연합뉴스


‘기억 안 나, 모른다’ 주장했지만…혈흔·CCTV·증인


A씨는 “그 날 밤 사위가 칼에 찔렸는지도, 죽었는지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CCTV에는 B씨가 A씨의 집에 들어가는 모습, 30분 뒤 A씨가 나와 담배를 피우고 동네를 10여분간 배회하는 모습, 다시 집에 들어갔다 나와 택시를 타는 모습 등이 잡혔다. 재판부는 “당시 B씨 상태를 몰랐다면 배회하다 대구를 거쳐 포항까지 가는 이례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 봤다.

증인으로 나온 택시기사는 A씨가 자신에게 범행을 털어놓았다고 했다. 휴게소에서 잠시 대화를 했는데, A씨가 “마지막으로 조부모 산소가 있는 포항에 왔다”며 “사위와 돈 문제로 언쟁하던 중, 사위가 수박 먹으려 가지고 왔던 칼을 들고 달려들어 몸싸움이 일어나 사위를 죽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딸과 통화하며 “왜 나한테 칼까지 겨누냐. 일단은 서울 올라가서 자수 해야 된다” 하는 것도 들었다고 한다. 택시기사는 “우발적이고, 초범이니 오래 안 살 것이다”며 위로했고 A씨가 끄덕였다고 한다.

재판부는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범행 직후 도주 의사를 단념하고 수사에 자발적으로 응한 점, 국내에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B씨의 모친과 아내(A씨의 딸)가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고려해 12년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서울고등법원·대법원은 각 4개월·2개월 만에 항소기각·상고기각 선고를 내렸고, 판결은 지난달 18일 확정됐다.

기소부터 확정까지 1년 1개월간 구치소에 있던 A씨는, 앞으로 남은 10년 11개월을 국내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며 출소 후에는 5년 간 보호관찰을 받는다. A씨는 외국 국적이고 사망한 B씨도 마찬가지였으나, 형법은 대한민국 내에서 죄를 범한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속지주의 원칙).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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