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식수도 표지석도 사라졌다…경남 귀환 '도청사'에 생긴일
1983년 7월 1일 ‘재부경남시군향우회장단’은 현재 경남도청 운동장(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한쪽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높이 12m·흉고 둘레 1m의 아름드리 느티나무였다. 도청사가 58년 만에 부산에서 경남(창원)으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나무 아래에 표지석도 남겼다. “開廳紀念植樹(개청 기념식수) 在釜慶南市郡鄕友會長團一同(재부경남시군 향우회장단 일동)”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 느티나무는 당시 경남도민 숙원이었던 도청사 귀환을 환영, 각계각층 인사가 심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일명 ‘도청이전 기념식수’ 50여 그루 중 하나였다. 그런데 최근 이 나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무가 있던 자리는 중장비가 헤집어놔 흙더미만 쌓여 있었다. 표지석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행방불명” 상태다. 경남도의회가 의회 청사 증축공사를 하면서 이 나무를 베어내 폐기 처분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는 경남도청이전 4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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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많이 들어서”…기념식수 벴다
3일 경남도의회 등에 따르면 도의회 사무처는 내년 10월 준공을 목표로, 의회 건물 뒤쪽인 경남도청 운동장 부지(사림동 1-1번지)에 별도 청사 1동을 짓고 있다. 증축 청사 규모는 지하 1층·지상 3층에 연면적 3570㎡로, 사업비는 191억원이 들어간다. 지상 1층에는 도민 공연장, 지상 2·3층에는 의원 연구실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그런데 의회 사무처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의회 청사 증축공사를 위한 용지 정비를 하면서 벗나무·느티나무 등 나무 110그루를 모조리 잘랐다. 이 중 향우회장단이 심은 ‘도청 이전 기념식수’도 포함됐다. 베어낸 나무는 폐기물이어서 소각 처리했다.
의회 사무처는 경제성 등을 이유로 나무를 베어냈다고 했다. 기념식수처럼 큰 나무는 이식(移植)하는 데만 약 1000만원이 든다고 한다. 과다한 이식 비용으로 사업비가 늘면, 증축 공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어 이런 선택을 했단 게 사무처 설명이다. 예산이 초과되면 중앙투자재심사 등 행정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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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 경남도청’ 잔치까지 열었는데…
베어낸 나무는 경남도 재산이다. 하지만 의회 사무처는 나무 처리와 관련해 경남도와 협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남도 관계자는 “2021년 10월 공유재산관리계획 승인에 따라 재산관리책임이 의회 사무처로 넘어가 있어 사업에 관여할 수는 없다”면서도 “(기념식수 등 처리) 관련 협의가 오거나, 향후 증축 청사의 조경수로 쓸 줄 알았다”고 전했다.
이에 “올해가 경남도청 마흔살인데….”라며 씁쓸해하는 도 공무원도 많다고 한다. 경남도청은 원래 경남(진주)에 있었는데, 일제시대인 1925년 4월 1일 조선총독부가 ‘시정상(施政上) 편의’를 위해 철도가 지나는 지점(부산)으로 이전을 결정하면서 옮겨졌다가 1983년 다시 경남에 돌아왔다. 창원 도정시대 시작이었다. 이 때문에 경남도는 올 7월 ‘창원 도정 40주년’ 기념행사도 개최했다. 도청 본관 1층 복도에 ‘창원 도정시대 40주년 기념 기록전시회-빈터에서 시작하다’란 이름으로 그간 경남도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전시회도 열었다.
논란이 커지자 의회 사무처는 진화에 나섰다. 이번에 잘라낸 도청이전 기념식수와 비슷한 대체 나무를 구해와 심고, 사라진 표지석을 복원해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창원=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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