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좀 봤다" 노무현 승부수…메트로폴리탄 서울과 빼닮았다
국민의힘이 추진 중인 메트로폴리탄 서울 구상에 대해 여권 핵심부는 “16대 대선 때의 수도 이전 논의보다 더 폭발력이 강한 이슈가 될 것”이란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 등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신행정수도 이전과 달리 이번 구상은 예산도 얼마 들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여권이 롤모델로 삼는 신행정수도는 2002년 16대 대선 레이스 막바지 무렵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승부수로 띄운 공약이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고전하며 지지율이 10%대까지 곤두박질친 노 후보는 그해 9월 30일 선거대책위 출범식에서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옮겨가겠다”고 공약했다.
초기엔 반향이 크지 않았는데, 한나라당이 ‘수도권 공동화론’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외려 신행정수도 이슈가 전국적으로 커졌다. 또, 한나라당은 수도권 인구가 충청권 인구보다 많다는 점을 고려해 “수도권의 땅값 및 집값 폭락이 불가피하다”(이 후보), “2000만명이 밀집한 수도권 사수를 포기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김영일 사무총장)는 식의 수도권 공략형 대응을 했다.
결과는 충청권 바람을 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승리였다.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57만여 표 차로 이회창 후보를 앞섰고, 충청권에서 더 얻은 36만여 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듬해 11월 신행정수도건설 국정과제 회의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을 주제로 내가 지난 대선에서 좀 재미를 봤다”고 말할 정도였다.
대선 패배로 또 야당이 된 한나라당은 신행정수도 이전 반대가 패배 원인 중 하나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대응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사이 노무현 정부는 여론을 등에 업고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추진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자 한나라당에서도 충청권 의원들이 탈당 카드까지 꺼내 들며 찬성 의견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3년 12월 본회의에서 표결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은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재적 국회의원 272명 중 194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67표, 반대 13표, 기권 14표를 기록했다. 본회의 직전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당 의원총회에서 “우리 때문에 법안이 좌절되면 대전·충북 등 24석을 상실하게되는 극단적 상황이 온다. (총선) 길을 열어달라”며 찬성을 독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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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의 공약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여권의 기세는 더 높아졌다.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과반(152석·51%)을 얻으며 한나라당(121석·40%)을 압도했다. 특히 충청권 24석 중 19석(79%)을 싹쓸이한 게 압승의 결정적 계기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충청의 맹주 자민련은 4석(17%), 한나라당은 1석(4%)에 그쳤다.
신행정수도 이슈로 두 번 연속 패배를 당한 한나라당은 다시 반대로 돌아섰다. 총선 2개월 후인 그해 6월 박근혜 대표는 “지난해 법 통과 과정에 우리 실책이 컸다”면서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수도이전을) 정략적으로 충분한 검토 없이 내놓은 것을 반성해야 하지만 충분한 검토 없이 이를 통과시킨 한나라당도 반성해야 하며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책임이 더 크다”고 공식 사과했다.
한동안 “법 통과에 동의했던 게 선거를 앞둔 정치 논리였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하자”(박형준 의원)는 자조가 이어진 한나라당이 혼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이 나오고 나서였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당시 노 전 대통령 전략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비가 전혀 안 돼 있었고, 그 결과 내내 끌려다기만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아예 새로운 이슈로 주도권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지금 서울-김포 통합 이슈를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민주당은 메트로폴리탄 구상에 뚜렷한 입장을 내지 못하는 중이다. 한병도 전략기획위원장은 지난 1일 전체 의원이 속한 텔레그램 대화방에 “(국민의힘 정책은) 정략적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며 “섣부른 찬반 입장보다는 당분간 여론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차분,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20년 전 공방이 역전돼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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