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거짓을 말해야 돈이 된다
광화문 교보문고 정치·사회 섹션 앞에서 책을 뒤적이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윤미향 의원(무소속)의 신간 『윤미향과 나비의 꿈』하나만으로도 뭔가 싶었는데, 그 옆엔 재직 당시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던 박성제 전 MBC 사장의 『MBC를 날리면』, 눈을 돌리니 지난 8월 출간 이후 줄곧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디케의 눈물』이 있었다. 저자의 경력도 구체적 내용도 모두 다르지만 세 책엔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셀프 면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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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미향·박성제·조국 신간 잇따라
사법 판단 책임없이 셀프 면죄부
팬덤 기대 돈벌이와 복권 노리나
」
조만간 책을 쓰는 사람보다 책을 읽는 사람이 더 귀해질 때가 올 거라는 어느 작가의 말마따나 모두 자기 얘기를 자기 관점에서 책으로 내는 시대다. 하지만 국민으로부터 적잖은 도덕적 질타를 받은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일부 사안과 관련해선 이미 법원 판단까지 내려져 사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적 인물들이 이런 과오엔 일말의 반성조차 없이 침묵하거나 더 나아가 스스로 조작된 신화를 쓰고, 그걸 또 자기 진영 팬덤을 겨냥한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향후 정권 교체 시 복권의 디딤돌로 쓰려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가령 '위안부 비즈니스'라는 비판을 받았던 윤미향 의원은 불과 한달여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후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2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의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다. 일찌감치 지난 2020년 더불어민주당의 꼼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 시절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로부터 직접 제기된 정의기억연대 횡령 의혹에도 불구하고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출범한 김명수 사법부의 선택적 재판 지연 덕분에 아직 의원 지위와 특혜를 누리고 있다. 그런 그가 억울하다면서 낸 게 이번 신간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심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마음이 여전할 것이라 믿는다"는 응원의 추천사를 써준 이 책의 제1장 '무죄·무죄·무죄…로 끝난 마녀사냥'의 첫 소제목부터가 '나는 무죄다'였다. 제대로 된 근거는 없다. 오히려 2019년 미국 워싱턴 소녀상 제막식 참석 때 한 활동가의 실수로 비즈니스 좌석이 예약된 걸 공항에 도착해서야 알게 됐다느니, 후원금을 비즈니스 업그레이드에 쓸 수 없어 일단 내가 비용을 정의연에 송금했느니 하는 믿기 어려운 자기변명이 대부분이다.
'공영방송 수난사'라는 부제가 붙은 박성제 전 사장의 『MBC를 날리면』도 비슷하다. 그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양분됐던 지난 2019년 MBC 보도국장 신분으로 김어준 라디오에 출연해 그 유명한 "딱 보니 100만(명)짜리 (집회)" 발언을 한 당사자다. 지상파 방송의 보도국장이 정파성이 뚜렷한 타 방송국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매우 이례적인데, 서울교통공사의 승객수 분석 등 과학적 계산법으로는 10만명 정도였던 집회 인원수를 놓고 "계산하고 이런 게 중요하지 않다. 경험 많은 사람은 감으로 안다"며 앞장서서 선동에 나섰다.
이러니 4개월 뒤 그가 사장에 취임해 더 선명해진 MBC의 편파성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대표적인 게 당시 취임 직후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를 무리하게 엮은 '검언유착' 프레임 왜곡보도다. MBC와 김어준 등의 대대적 합작으로 유시민 등 문재인 정권 실세들의 신라젠 의혹을 좇던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는 200일 넘게 감옥살이를 했다. MBC 보도를 근거로 왜곡 후속보도를 한 KBS의 두 기자는 올 초 이 전 기자의 강요미수 무죄 확정 뒤 공개 사과를 했지만 박 전 사장은 책에 이와 관련해 별다른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현직 시절 "MBC는 엄정한 취재윤리를 준수했다"라거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검언유착이 허구는 아니고 일부 언론이 몰고 가는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이런 정파성 덕분에 장사는 잘했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 캐겠다던 취재진의 경찰 사칭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취재윤리는 땅에 떨어졌다.
"등에 화살이 꽂힌 채 길 없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는 홍보문구로 포장한 조국 전 장관 책은 딱 기대대로다. 이미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까지 부정하며 자기합리화로 일관한다. 엄마 일을 도운 후 엄마가 준 표창장을 학교에 제출한 것밖에 없는 딸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취소되는 날벼락 같은 일을 당했다는 식이다. 그런데도 교보문고 앱 책 리뷰엔 "십자가를 짊어진 장관님" 운운하며 책 구매 인증을 한다. 사실이 아니지만, 어쩌면 사실이 아니어서 진영 팬덤의 지갑이 술술 열리는 이상한 시대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 기억이 흐릿해질 즈음 이런 거짓까지 진실로 둔갑할까 두려워 기록을 남긴다.
글 = 안혜리 논설위원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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