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잘린 손가락을 살리고 싶었다... 삶을 움켜쥔 네 개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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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인천’을 더(More) 알아가다. 지금 발 딛고 선 도시, 살아가는 동네, 그 안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인천 곳곳에 깃든 인천 사람 저마다의 삶과 기억, 숨은 이야기를 찾아 기록한다. 이번 호에는 ‘손’을 바라보고 이야기한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세월 따라 거칠어진 살결, 파여가는 주름 사이로 한 사람의 숨결과 살아온 시간이 깃들어 간다. <기자말>
[글 정경숙·사진 류창현, 임학현]
▲ 옛 조양방직을 ‘신문리미술관’으로 다시 세운 이용철 작가의 ‘손’ |
ⓒ 류창현 포토 디렉터 |
"이 건물만 찍으세요. 나는 이곳을 주무르다 갈 사람이지만, 여긴 영원할 테니까."
6년 전, 강화도 옛 조양방직 터에서 이용철(58) 작가를 만났다. 그의 단단한 망치질 소리가 깊은 고요와 오랜 침묵의 시간을 깨웠다. 그렇게 한 세기 가까이 어둠 속으로 침잠하던 공간에 새 빛이 비쳐 들었다. 기록하고 싶었으나 그는 한사코 사진 찍히기를 거절했다. 결국 그의 '귀한 손'만 담을 수 있었다.
구두 닦는 사람을 보면 / 그 사람의 손을 보면 / 구두 끝을 보면 /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
창문 닦는 사람을 보면 / 그 사람의 손을 보면 / 창문 끝을 보면 / 비누 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 / 맑은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
- 천양희 시인의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주어진 대로 그저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하나 저마다의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어둠을 밀어내고 빛을 비추는 일이다. 여기, 아름다운 손을 지닌 네 사람이 있다. 온기 어린 그 손이 쌓아 올린 삶의 역사를 어루만지고 가슴에 새기어 본다.
▲ 손을 살리는 손 |
ⓒ 임학현 포토 디렉터 |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결코 잊을 수 없다. 하늘빛이 유난히도 맑은 날이었다. 다섯 살 난 어린아이가 손가락 네 개가 절단된 채 병원 응급실로 다급히 실려 왔다. 부모가 하는 정육점에서 놀다가 그만 기계에 손가락이 잘린 것이다. 그 손으로 연필을 쥐고 친구들과 공 던지기도 하고, 커서는 결혼반지도 껴야 하지 않는가.
기필코 살려내야 했다. 하지만 손쓸 수 없을 만큼 혈관과 신경이 손상돼 있었다. 사력을 다해 수술에 매달렸지만, 아이의 손가락을 온전히 살리지 못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뼈아프게 남아 있다. "정균이, 목정균. 이름도 생각나요. 지금쯤 많이 컸겠죠."
뉴성민병원 황준성(51) 수지·외상센터장. 그는 손을 살리는 손을 지닌 수부외과 전문의다. 그날 이후 매달리며 애원하던 부모의 눈빛을 잊은 적이 없다. 한 사람의 손이라도 더 지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을수록 재접합술의 완성도가 높아져 갔다.
최근 3년간 그가 진행한 200건가량의 완전 절단 환자의 수술 성공률은 90%에 이른다. 미국에서 손가락이 잘린 채 그를 찾아와 되살린 환자도 있다. 이제는 사명감 있는 '완성된 의사'라고 자신 있게 스스로를 칭한다.
▲ 손가락 네 개가 절단돼 찾아온 다섯 살 난 아이. 그 손으로 연필을 쥐고, 커서는 결혼반지도 껴야 하지 않는가. 기필코 살려내야 했다. |
ⓒ 임학현 포토 디렉터 |
▲ 손가락 네 개가 절단돼 찾아온 다섯 살 난 아이. 그 손으로 연필을 쥐고, 커서는 결혼반지도 껴야 하지 않는가. 기필코 살려내야 했다. |
ⓒ 임학현 포토 디렉터 |
보고 소리 내는 손, 민선숙
▲ 보고, 소리 내는 손 |
ⓒ 임학현 포토 디렉터 |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못 보리라고, '빛'을 잃고 어둠 속에 갇히리라고, 그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장마철로 접어들 때였다.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낮게 깔리더니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열한 살 소녀는 우산도 없이 시장에 간 엄마가 걱정돼 집을 나섰다. 당시 용현시장 앞길에는 신호등이 없었다. 지나던 택시가 소녀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 응급실이었다.
그 후로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사물의 윤곽만 희미하게 보이고, 또 자고 일어나니 색만 어렴풋이 보였다. 열여덟 살쯤엔 최소한의 빛만 가까스로인지하기에 이르렀다. 낮에도 밤에도 그의 세상은 온통 암흑 속에 잠겼다. 그렇다고 삶까지 어둠 속으로 몰아넣지는 않았다. 민선숙(57)씨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 교사다.
▲ 그에게 손은 눈이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건 분명 내 인생의 역경이었지만, 대신할 수 있는 두 손이 있어 감사해요. 눈으로 이 세상을 다 볼 순 없어요.” |
ⓒ 임학현 포토 디렉터 |
그리고 음악이, 그에게로 다가와 빛이 돼주었다. 인천혜광학교를 운영하는 광명복지재단은 2011년 혜광브라인드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단원 모두 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가 선택한 악기는 첼로였다. 우아한 곡선이 흐르는 몸체에서 나오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창단 10주년 연주회를 열고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달 4일엔 홍콩, 이스라엘, 대만에서 온 시각장애인 연주자들과 부평아트센터 국제교류음악회 무대에 섰다.
그에게 손은 눈이다. 그 감각은 섬세하며 미적 감성으로 충만하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건 분명 내 인생의 역경이었지만, 대신할 수 있는 두 손이 있어 감사해요. 눈으로 이 세상을 다 볼 순 없어요." 그의 곱고 여린 손끝에서 피어나는 선율이 한 송이 꽃처럼 어여쁘다.
▲ 강철보다 단단한 손 |
ⓒ 류창현 포토 디렉터 |
'탕탕탕!' 망치로 쇳덩이를 내리치는 손에 힘이 한껏 실린다. 인일철공소 송종화(85) 장인. 팔순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강철 같은 모습이 영락없는 대장장이다. 고집불통 쇳덩이도 그 앞에선 고개를 숙이고 물러졌다 더 단단하게 몸을 굳힌다.
열다섯 나이에 도원동 황곡철공소에서 쇠망치를 처음 손에 쥐었다. 스승의 이름은 권원. "선생을 잘 만났어. 그분이 왜정 때부터 일을 꼼꼼하게 잘했지. 이 일대에서 농기구를 잘 만들기로 꽤 이름 었어." 6·25전쟁 때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먹고살기 위해 대장장이의 길로 주저 없이 걸어 들어갔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쇠도 질과 강도가 다 다르다. 그 성질에 맞춰 쇠를 다스리고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대장장이의 일이다. "가장 중요한 건 야키(やき)야." 담금질하는 열처리 과정을 이른다. 제아무리 모양을 잘 낸들 소용없다. 담금질을 잘해야 쇠가 무르지도 딱딱하지도 않게 단단해져 제구실한다.
▲ 손을 보면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보인다. 마디마디 옹이가 박히고 깊게 주름진 손에서 살아가는 일의 숭고함을 본다. 손은 곧 마음이고, 사람이며, 삶이고, 인생이다. |
ⓒ 임학현 포토 디렉터 |
▲ 손을 보면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보인다. 마디마디 옹이가 박히고 깊게 주름진 손에서 살아가는 일의 숭고함을 본다. 손은 곧 마음이고, 사람이며, 삶이고, 인생이다. |
ⓒ 임학현 포토 디렉터 |
70여 년 한길을 걸어온 장인조차 대장 일은 죽을 때까지 다 익히지 못한다고 했다.
"자고로 대장 일을 하려면 힘만 세서는 안 돼. 머리가 좋아야 하지. 눈썰미와 손재주도 있어야 해. 열 사람이 배우면 한 사람도 되기 어려운 게 대장장이야."
그가 나이 드니 자꾸만 작아진다며 마디가 굽고 깊게 주름 파인 손을 보여준다. 그 손으로 휘두르든 쇠망치와 받침으로 쓰든 쇳덩이 모루도 세월에 닳아 무뎌졌다. 그를 처음 가까이서 만나 기록한 때가 4년 전이다. 그 후로 도원동 철공소 거리를 지날 때면 그가 잘 있는지 궁금했다. 철공소 문이 열려 있어도 찾아가 안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언젠가 이 거리에서 망치질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다시 만난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묵묵히 쇠를 다루는 그의 작아진 모습을 뒤로하고 길을 나선다. 어느덧 가을인가, 바람이 선득하게 얼굴을 스친다.
▲ 큰 세상 품은, 작은 손 |
ⓒ 임학현 포토 디렉터 |
손이 작아지는 줄도 몰랐다.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린을 켜던 재주 많은 손. 어린 동생을 쓰다듬고, 꽃 한 송이 심던 다정한 그 손. 열일곱 소녀에게 느닷없이 병마가 찾아왔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을 앓으면서 가장 먼저 손이 작아지고 비틀어져 갔다. 관절이 구부러진 채로 굳어갔다.
부모님은 하나밖에 없는 딸의 병을 고치려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했다. 좌절했다.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자리에만 누워 살았다. 작고 네모난 상자가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하나뿐인 친구였다.
지금도 기억난다. 작은 방, 창밖에서 사람들이 자유공원 언덕을 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긴 세월을 보듬은 나뭇집과 돌계단, 구불구불한 골목, 그리고 햇살 좋은 날이면 더 눈부시게 빛날 키 큰 플라타너스 등. 모두가 걷는 그 길을 차마 걸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 시간이 20년이다.
▲ “멋지다, 예쁘다 칭찬받는 소중한 손이에요.” 구부러지고 변형돼 남과는 다른, 그 작은 손이 이 큰 세상을 품고 있다. |
ⓒ 임학현 포토 디렉터 |
▲ “멋지다, 예쁘다 칭찬받는 소중한 손이에요.” 구부러지고 변형돼 남과는 다른, 그 작은 손이 이 큰 세상을 품고 있다. |
ⓒ 류창현, 임학현 포토 디렉터 |
지금은 안다. 구부러지고 변형돼 남들과는 다른, 그 작은 손이 이 큰 세상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김은숙(53)씨는 수채화와 캘리그라피를 그리는 작가다. 3년 전, 처음엔 붓을 쥐기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만의 아름다운 세상이 손끝에서 훨훨 펼쳐진다.
"멋지다, 예쁘다 칭찬받는 소중하고 고마운 손이에요.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새 삶을 살게 됐어요. 제 글씨가 장애가 아닌 이야기 있는 삶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대요. 그 힘을, 저도 이제 알아요."
그가 운다.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던 기억을 꺼내려니 치열하게도 삶을 살아냈구나 싶다. 그러면서도 기쁨의 눈물이라서 괜찮다며 눈물을 닦아낸다. 그가 울다가 웃는다.
▲ '더인천 : 사람 삶을 움켜쥔 손' 유튜브 섬네일 |
ⓒ 굿모닝인천 |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류창현, 임학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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