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해경 지휘부 무죄... 아이들이 과연 뭘 보고 배울까

서부원 2023. 11. 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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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 아이들에게 건네는 참담한 메시지

[서부원 기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참사 해경 지휘부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않아도 국가는 어떠한 지시, 구조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생명이 무고하게 희생되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겼다"며 "정부 책임자들과 해경 구조 세력 컨트롤타워에게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했다"고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아이들이 과연 뭘 보고 배울까?"

3일 아침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경찰청 지휘부의 부실 대응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 교사로서 허탈해졌다. 직급이 높고 사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업무상 과실 책임이 가벼워진다는 걸 여실히 보여줘서다. 권한과 책임은 비례한다는 불문율이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유권무죄, 무권유죄'라고 해도 할 말 없게 됐다. 부와 권력을 모두 손에 쥔 그들이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면책 특권'까지 보장받은 셈이니, 말 그대로 죽은 이들만 불쌍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에 형사 책임을 진 사람은 현장 지휘관이었던 당시 123정장이 유일하다. 고위직의 법적 책임이 생떼 같은 아이들 수백 명의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참회이자 도리일 텐데, 말단 공직자 한 명만 처벌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족들의 눈물겨운 호소는 차디찬 법 논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에 책임져야 할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게 될 듯하다.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이미 끝난 상태이고,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 등 총책임자들은 물론, 기소된 관할 용산구청장과 용산경찰서장 역시 법적 처벌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사고 예측이 어려웠다면 법적으로 처벌하기 힘들다는 게 대법원의 논리였으니, 관련 공직자 모두 죄가 없다며 뻗댈 수 있게 됐다. 현장 책임자로 지목된 용산경찰서장도 "사건 발생 사실을 제때 보고받지 못했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자칫 이태원 참사 역시 죽은 이들만 불쌍하게 될 판이다.

'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대법원마저 고위공직자들의 손을 들어주었으니, 더는 유족들이 기댈 곳은 없다. 세월의 더께 속에 부박한 세상의 인심도 유족들 편이 아니다. 시들어버린 여론의 관심에 언론도 발을 빼게 될 것이다. 시민들의 가슴에 단 노란 리본과 손목에 찬 노란 고무링만이 그들을 위로할 뿐이다.

현실에서 법과 인권의 거리는 멀다. 입만 열면 '공정'과 '상식'을 부르대지만, 법은 늘 강자의 편이었다.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고, 적용하는 이들 모두 강자이기에, 법은 태생적으로 그들에게 봉사할 수밖에 없다. '법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약자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강자의 용어다. 본디 '법치'란 강자의 횡포를 제어하기 위한 약자의 방어 수단이었다.

구조 책임이 있는 해양경찰청 고위공직자들의 무죄 판결 소식에 순간 가슴에선 불길이 일었어도, 한편으론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생각도 교차했다. 뉴스를 접한 아이들도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심드렁한 표정엔 이게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냐는 비아냥과 무력감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참으로 민망했다.

직급이 높을수록,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을수록 법적 책임이 가벼워지는 모순이 법정에서 증명되고 있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나무라기도 뭣하고, 업무 수행에 있어서 그들의 자발성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숱한 참사에도 고위공직자는 무탈하고, 말단 공무원만 처벌된다는 사실을 눈으로 똑똑히 봐온 터다.

이번 판결 말고도 그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정부 기관부터 사기업, 이익단체, 학교에 이르기까지, 권한과 책임이 비례하는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멀리 갈 것 없이 최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마다 고위직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고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은 하위직에 떠넘기는 게 전가의 보도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세월호 참사 해경 지휘부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
ⓒ 유성호
 
'중대 재해 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청 높이는 기업주와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 처벌을 면제해달라는 의사협회,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들을 나 몰라라 해온 학교장의 모습은 서로 거울상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최소한의 공공성마저 상실한 강자들의 치부가 드러난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각자도생의 전쟁터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도 맞장구치며 강자 편에 섰다. 최근 그가 유난히 강조하는 '민생'은 그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민원을 해결해주는 것이었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 '공익의 대표자'를 자처하는 검찰의 수장 출신이면서도, 정작 그에게 '공익'이란 '강자의 이익'과 동의어였던 셈이다.

요즘 아이들이 공유하는 '시대 정신'은 극한의 경쟁과 각자도생의 정글에서 생존하는 것이다. 한때 우리 사회에 풍미했던 '자발적 가난'이나 '연대와 공존'의 가치관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도덕 교과서에서나 이따금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일 뿐, 최근에는 시험에도 잘 등장하지 않는 생소한 용어가 됐다. 학교 교육도 각박한 사회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부모가 아닌, 시대를 닮는다고 했다. 사회가 강퍅해질수록 아이들의 성정 또한 메말라 가게 된다. 강자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약자에게 가혹한 야만적인 사회에서, 아이들은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전쟁 같은 일상을 견뎌낸다. 10대 아이들의 입에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말이 선선히 튀어나온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존중한다. 법리상 하등 문제 될 게 없다고 믿는다. 법관의 양심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했으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도 안타깝고 참담하다. 법정에서는 완전무결한 판결이었을지 몰라도, 학교 현장에는 교육의 본령이 조롱받고 교사의 교육 행위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키는 명징한 신호가 됐다.

교과서의 내용도, 교사의 가르침도 그것의 '권위'를 넘어설 수 없다. 의도했을 리 없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아이들에게 건넨 메시지는 이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고위직에 올라라. 부와 권력을 모두 손에 쥘 수 있을뿐더러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험이다. 만약 하위직이라면 책임질 일은 애초 하지 마라, 다친다." '올곧은 시민을 육성한다'는 교훈이 참으로 무색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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