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커피 마시면 파면'... 정부의 희한한 방침때문에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기자]
▲ '외국인을 위한 특정외래품판매소 설치 계획'을 보도한 1962년 1월 14일 자 <경향신문> |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
이런 분위기로 인해 커피에 대한 신문 보도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내용도 빈곤해졌다. 신문에 등장하는 커피 관련 뉴스는 외국산 커피 단속과 단속에 걸린 다방 얘기가 거의 전부였다. 진짜 커피를 마시기 어려웠던 당시 커피애호가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것은 가끔 보도되는 희한한 커피 뉴스들이 전부였다.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등은 1962년 1월 14일 '외국인을 위한 특정외래품판매소 설치 계획'을 일제히 보도하였다. 외국인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판매소가 설치되고, 이곳에서는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수입한 커피, 빠다, 밀크, 오렌지 등을 판매한다는 소식이었다.
실제로 그해 4월 2일 용산에 판매소가 문을 열었다. 한국은행에 돈을 미리 입금한 후 이용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시 외국인 등록자 수는 1227명이었는데, 판매소 이용을 위해 돈을 입금한 세대가 230세대였다. 등록 외국인 거의 모두였다.
암울한 시대에 시내 서점에서는 때아니게 <브라질어 입문>이라는 책이 잘 팔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에서 해외 이민을 권장하였고, 첫 대상 지역의 하나로 커피의 나라 브라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해 1월 14일 자 <경향신문>은 "커피마시게 이민 서둘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이민이 이루어진 것은 1962년 12월이었다. <동아일보> 12월 4일 자는 이 소식을 전하며 12월 18일 브라질 이민 제1호가 출발 예정이라고 전했다. "커피밭에서 해가 솟아, 커피밭으로 해가 진다"고 알려진 브라질로 이민을 떠난 것은 30가구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민을 보내는 목적이었다. 신문에 게재된 이민을 통해 얻게 되는 효과는 인구정책의 적정화, 국민경제의 안정, 그리고 국위선양이었다. 이민을 통해서 국위를 선양한다는 신기한 사고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민 가구에는 200달러씩 보조금이 지급되었고, 법으로 "정신병자 및 심신쇠약자, 알콜 중독자, 마약중독자,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 등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이민 자격 자체를 부여하지 않았다.
브라질 이민자들에게 현지 적응을 위해 당국에서 당부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브라질에 있는 일본 이민자 50만 명의 텃세를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버스에서 키스를 하는 등 성에 대해 몹시 개방적인 곳이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친절한 정부였다.
▲ 1962년 3월 25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한국 최초의 다방 '멕시코'의 주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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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역사도 전해졌다. 그해 3월 25일 자 <조선일보>에는 종로에 있던 한국 최초의 다방 '멕시코'의 주인 김용규의 회고록을 실었다. 1929년 11월 3일 개업했던 조선의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였던 다방 이야기였다.
그런데 <경향신문>은 같은 해 5월 6일 자에서 1920년대에 개업한 '귀거래', '아세아' 등이 우리나라 다방 계의 효시라고 주장하였다. 커피 역사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귀거래다방'과 '아세아다방'이 처음으로 소개된 것이다.
<조선일보>는 3월 26일 자 '만물상' 코너에서 "커피는 회교도들이 고행을 견뎌내기 위하여 15세기 초부터 사용하였다"는 사실도 알렸다. 커피가 아프리카에서 10세기 이전, 심지어는 기원전부터 음용되었다는 요즘 떠도는 가짜뉴스보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기사였다.
커피의 암흑기였던 당시에 실렸던 신문 기사 내용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아마도 국내에서의 커피나무 재배 소식일 것이다. <조선일보>는 1962년 12월 2일 자에서 '열대식물 무럭무럭, 제주도에 황금의 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농촌진흥청이 주관하여 제주도에 커피, 파인애플, 캐나오(양마)를 시험재배하였다는 소식이었다. 커피 10개를 서귀포에서 파종하여 그 발아가 아주 좋았으나 이를 제주시로 옮겨심은 후에 날씨 탓인지 생육이 과히 좋지 않았다는 소식이다. 다음 해에는 다량을 여러 곳에 파종하여 다시 시험해 볼 예정이라는 기대감 가득한 소식도 전하였다.
<경향신문>도 1963년 1월 9일 자에 국내에서의 커피나무 재배 소식을 전했다. 제목은 '영하 속의 푸른 성장, 열대의 포근한 미소'였다. 이 기사에 따르면 당시 창경원 식물원에는 커피나무가 무성하여 고염만한 빨간 열매가 한창 익었다. 약 2미터 정도 높이의 5년생 나무였는데 커피 열매가 약 200여 개가 열렸다고 한다. 커피의 수입이 금지된 나라에서 커피나무 재배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기사였다.
▲ 1963년 12월 3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미인계로 판 가짜커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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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 커피 단속 소식은 끊이지를 않았다. 단속을 엄하게 한다는 소식을 넘어, 적발된 커피를 인천항이나 부산항에서 바다로 가져가 소각했다는 뉴스도 전해져 외래물품 배격에 대한 정부 당국의 의지를 만천하에 보여줬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자고 나면 단속이었고, 단속에 걸려 영업정지를 당하는 한이 있어도 커피 암거래와 숨겨 팔기는 반복되었다.
결국 외래 커피를 팔다 걸리면 무조건 업자를 구속하고, 다방허가를 취소하겠다는 단호한 방침을 내놓았다. 1962년 6월 27일 밀수가 심한 지역의 하나였던 경상남도 경찰국장이 담화로 발표하였다. 공무원으로서 커피를 마시거나 사다가 적발되면 바로 고발, 파면 조치할 것이라는 경고도 발표되었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주소, 성명, 직위 등을 신문 지상에 공시할 것이라고 엄포도 놓았다.
엄포는 엄포, 커피는 커피였다. 경상남도 경찰국장의 담화 일주일 후인 7월 4일 부산지검은 부산 남포동 3가 12번지 '내집' 다방 마담 이복란을 구속 기소했다. 외래 커피 2잔을 팔다 적발된 이복란에게 부산지법은 징역 6월을 선고하였다. 7월 13일 부산 중부경찰서는 광복동 1가 29에 있던 '파리잔' 다방의 마담 홍정애를 같은 혐의로 구속하였다.
밀거래는 커피에 국한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커피포트도 인기 있는 밀거래 품목이었다. 1962년 7월 11일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종로 5가 대진상회 주인을 특정외래품단속법 위반 혐의로 검거하고, 홍콩제 커피포트 1000개를 압수하였다. 9월 17일에는 부산에서 커피 단속을 벌이는 경찰을 피하던 다방 주인이 건물 2층에서 추락하여 중상을 입기도 하였다.
동두천에서는 커피 빈 병에 바닥과 위에만 커피를 넣고 중간에는 휴지를 넣어 판매한 깜찍한 아가씨 두 명이 입건되었다. 이 사건을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 제목은 '미인계로 판 가짜커피'였다. 1963년 5월 8일 동두천의 미군부대 종업원 나모씨가 커피를 운반하다가 검거되어 벌금형이 선고되었으나 납부할 도리가 없어 비관 자살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단속과 규제 속에서도 도심지에는 한 집 건너 다방이었다. 서울 시내에만 1400~1500개가 성업 중이었다. 다방에서 판매하는 차와 커피류에는 영업세, 소득세, 유흥음식세, 특별행위세, 물품세, 가옥세, 부가세 등등 온갖 세금이 붙어 차를 마시는지 세금을 마시는지 모르던 이 시절이었다. 점심을 굶어도 친구들과 만나면 다방엘 먼저 들어갈 만큼 다방 출입은 도시민들의 한 생리로 화해버린 시대였다. 직업이 없는 실업자가 넘치던 시절이었고, "실업인의 직장"이 다방이던 어두운 시절이었다.
모두가 힘들고, 모두가 침묵하던 시절 <조선일보>는 1963년 9월 2일 자에서 "이미 생활화한 기호물을 억지로 사치품으로 규정한 폐단이 없지도 않다"는 점을 들어 "당국의 재고"를 요구하였다. 당국은 군사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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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1962년과 1963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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