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실패 반복하는 '콜린벨호', 이대로는 안 된다
[이준목 기자]
벨 감독이 이끈 여자축구대표팀은 최근 2024 파리 올림픽 2차예선에서 조기탈락했다. 한국은 1승 2무 승점 5점으로 무패를 기록했지만, 북한(2승 1무·승점 7)에 이어 조 2위로 밀려 최종예선 진출에 실패했고 파리올림픽 출전의 꿈도 물건너 갔다. 지난 11월 1일 중국과의 조별리그 B조 최종전에서 심서연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1-1로 비긴 게 치명타가 됐다.
2023년 한 해에만 벌써 세 번째 좌절이다. 7월 열린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무 2패로 조기 탈락했고, 9월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8강에서 북한에 패해 노메달에 그쳤다. 그리고 이번엔 올림픽 예선 조기 탈락까지 더하며 최악의 성적을 잇달아 경신했다.
콜린 벨 감독과 선수들은 한국 여자축구의 암흑기를 초래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잉글랜드 출신의 벨 감독은 지난 2019년 10월 최인철 전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사상 첫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했다. 벨 감독은 한국을 맡기 전까지 독일-영국 등 유럽무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해 왔으며 2015년 프랑크푸트르의 UEFA 여자 챔피언스리그 우승, 2017년 아일랜드 여자축구대표팀의 돌풍을 주도하며 지도력을 호평받았던 인물이었기에 기대감이 높았다.
축구협회는 벨 감독의 화려한 유럽 커리어에 매료되어 그가 세계축구의 트렌드를 접목해줄 적임자로 판단하여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 '황금세대'로 불릴만큼 역대 최고의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단까지 물려받았다. 벨 감독 본인도 미디어 친화적이고 성실한 이미지로 대중적 호감도 또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벨 감독은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 어느덧 4년이 넘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실패만 거듭했다.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현 UAE 감독) 감독이 비록 몇 차례의 위기는 있었지만 마지막 무대였던 카타르월드컵 원정 16강의 성과를 남기며 유종의 미를 거둔 것과 대조된다.
벨 감독은 부임 이후 줄곧 '자신감, 유연성, 고강도 훈련' 등을 키워드로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국제대회마다 한국축구의 고질적인 약점인 경기력과 체력에 대한 문제는 여전했던 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전술-전략적인 대안이나 위기관리능력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로 벨 감독 부임 이후 여자축구대표팀은 매번 비슷한 패턴으로 무너지는 양상이 반복됐다. 지난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플레이오프(PO)에서는 중국에게 합계 3-4(1-2, 2-2), 한골차로 밀리며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당시에도 한국은 2차전에서 먼저 리드를 잡았으나 지키지 못하고 동점에 이어 연장전까지 가서 끝내 역전을 허용했다. 2년이 흘러 파리올림픽 예선에서 같은 팀을 상대로 설욕은 커녕 또다시 같은 데자뷰가 재현됐다는 것은, 그만큼 팀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한국 여자축구는 아직까지 올림픽 본선무대와는 인연을 맺지못하고 있다.
2023 월드컵에서는 역대 최고 성적인 8강 진출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콜롬비아와 모로코에게 무기력한 무득점 2연패를 당하며 단 2경기만에 일찌감치 조기탈락이 확정됐다. 최종전에서 독일의 발목을 잡으며 1-1 무승부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도 선제골을 지키지못하고 승점 3점이 아닌 1점에 만족해야 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홍콩-필리핀등 약팀들을 대파했으나 8강에서 북한을 만나자 상대 자책골로 인한 리드를 지키지못하고 내리 4골을 내주며 또 역전패했다. 심판의 오심과 손화연의 퇴장으로 인한 수적열세 등의 악재가 겹쳤다고 하지만, 수년간 국제무대에서 동떨어져있던 북한을 상대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였다.
벨호가 중요한 경기마다 무너지는 패턴을 보면 '피지컬 열세→골결정력 부족→실책으로 인한 실점→실점 이후 급격한 에너지 다운→체력 하락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라는 수순을 거듭하는 것을 알수 있다. 초반에는 활발한 전방압박으로 경기를 주도하다가도 한골만 내주면 금새 기가 죽으며 경기력의 기복이 심하고, 어쩌다 힘겹게 리드를 잡아도 끝까지 안정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뒷심이 부족하다.
벨 감독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축구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 특유의 고강도 체력훈련과 다양한 대륙별 국가들과의 평가전 등으로 역대 어느 감독보다도 많은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결과는 4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물론 운이 안따라준 측면도 있었다. 항저우 AG의 경우, 편파적인 경기일정과 심판의 판정 논란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했다. 또한 파리올림픽 예선은 중국, 북한이라는 여자축구 강호들과 조기에 만나는 최악의 대진운이 뼈아팠다.
벨 감독은 월드컵 탈락이 확정된 후 "이것이 월드컵이고 한국 여자축구의 현실"이라고 주장제적인 여자축구의 수준이고 현실"이라고 작심발언을 했다. 아시안게임 직후에는 대회 일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패배의 원인을 외부로 돌렸다.
하지만 정작 벨 감독 본인의 전술적 문제점이나 경기운영에 대한 자성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지난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8.9세로 본선 32개국 중 최고령을 기록하기도 했다. 애초에 벨 감독이 요구하는 고강도 축구를 90분 내내 유지할 수 있을만한 체력이나 선수층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몇 년째 선수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축구를 고집한 것이 뼈아픈 결과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모든 부진의 원인이 전적으로 벨 감독 개인만의 책임만은 아니다. 한때 황금세대로 불리우며 고평가를 받던 주전급 선수들 역시 최근 몇 년간 중요한 순간에 얼마나 제 역할을 해줬는지 돌아봐야 한다. 한국 여자축구는 다수의 해외파 선수들을 배출했으며, 국내 여자축구리그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나 처우도 세계 기준(1만4천 달러, 약 1790만 원)과 비교하여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그러나 주축 선수들은 대부분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고 이들은 기량이나 체력면에서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남자축구에 비하여 훨씬 낮은 위상과 인지도, 짧은 선수수명, 저출산 시대 등의 영향으로 여자축구 유망주들의 인적자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여자축구는 지금 국제경쟁력에서 암흑기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린 벨 감독과 동행한 지난 4년은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 더 이상 '졌잘싸'나 '과정은 좋았는데 운이 없었다'는 식의 희망고문으로 실패를 미화해서는 곤란하다. 그간의 성과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함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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