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시칠리아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시칠리아가 멀리서 손짓한다.
아직 가보지 못한, 그러나 오래전 버킷리스트에 고이 담아둔 시칠리아.
팔레르모, 코를레오네, 지안팔도, 체파루, 바게리아, 시라쿠사 ….
대부(The Godfather) 시리즈. 속편을 찍으면 영화가 망한다는 영화판의 통념을 통쾌하게 깨버린 영화 ‘대부 Ⅱ’.
말론 브랜도가 대부(돈 비토 코를레오네) 역을 맡고 알 파치노가 막내아들 마이클 역으로 분한 ‘대부Ⅰ’이 나온 게 1973년. 벌써 50년.
‘대부Ⅰ’의 한 장면. 시칠리아의 아버지 고향에 은신 중인 마이클이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마을 중심가를 거닌다. 그런데 거리에는 남자들이 없고 여자들만 보인다.
“이 마을에는 왜 남자가 없지?”
경호원이 대답한다.
“피의 복수의 결과죠.”
5년 뒤인 1978년 ‘대부 Ⅱ’가 나왔다. 막내아들 마이클이 패밀리의 후계자가 되어 물려받은 ‘사업’을 키워나가는 이야기다.
‘대부 Ⅱ’에서는 대부의 젊은 시절이 교차편집으로 보여진다. 뉴욕의 이태리 타운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20대의 아버지(로버트 드니로 분).
코를레오네는 어린 시절 도망치듯 떠난 시칠리아를 다시 방문해 부모를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려 한 패밀리의 대부 돈 치치오에게 복수한다.
‘대부 에필로그’에서는 영화 배경의 절반 이상이 로마와 시칠리아다. 오페라 가수로 성공한 아들의 공연을 보러 마이클 패밀리가 모인다. 한때 관계가 소원했던 부인도 이 순간만큼은 마이클 곁에 있다.
“이제야 시칠리아 땅을 밟아보네요.”
“진짜 시칠리아를 보여주지.”
마이클은 아내를 아버지의 생가에 데려간다. 그러면서 시칠리아인에 대해 말한다.
“여기 사람들은 오랫동안 끔찍한 일을 많이 겪었지. 정말 억울한 일도 많았지. 시칠리아에선 모든 게 극적이지. 시칠리아인은 절대 잊지 않아.”
마리오 푸조 원작을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대부 시리즈’. 최근 나는 ‘대부 시리즈’를 정주행했다. 대부Ⅰ·Ⅱ는 몇 년 만에 다시 감상했다. ‘대부 에필로그’는 이번에 처음 보았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보니 비로소 시칠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이탈리아 마피아를 다루고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시칠리아 찬가(讚歌)다.
‘대부 시리즈’ 말고 시칠리아를 세계에 알린 영화가 ‘시네마 천국’이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바로 시칠리아 팔레르모 출신이다. 영화에서 지안팔도(현 라스카리 역)는 청년이 된 토토가 고향을 떠나는 역으로 그려진다. 해변에서 주민들이 보트를 탄 채 영화를 보는 장면도 잊히지 않는다. 그곳이 체파루(Cefalu)다.
영화에서 시칠리아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시네마 천국’은 토르나토레 감독의 고향 예찬이다. 1990년에 나온 이 영화는 모든 청춘들에게 첫사랑의 애틋함을 아로새겼다. ‘시네마 천국’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시칠리아 여행 계획을 세웠고, 영화의 무대를 찾아 시칠리아를 방문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지인도 ‘시네마 천국’의 무대를 답사해 여행기를 썼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을 쓴 게 1816년이다.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시칠리아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다. 괴테가 1787년 4월13일 괴테가 팔레르모에서 쓴 일기를 펼쳐본다.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현존하는 위대한 영화감독으로 첫손에 꼽히는 미국 감독. 그는 뉴욕에서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빚쟁이 삼촌이 폭력배들에게 쫓기고 위협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최근 번역 출간된 ‘마틴 스코세이지 : 레트로스펙티브’는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세계를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해설하는 책이다. 신문에 실린 리뷰를 읽다가 나는 다음 문장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의 영화에선 가장 비열하고 격렬한 폭력이 가장 성스럽고 순수한 영성(靈性)과 충돌하고 뒤섞인다.’
‘플라워 킬링 문' ‘아이리시맨’ ‘갱스 오브 뉴욕’…. 스코세이지의 영화 세계를 이해하려면 그의 뿌리를 캐들어가야 한다. 그의 조부모와 외조부모는 모두 시칠리아 태생이다. 조부모는 폴리찌 제네로사(Polizzi Generosa), 외조부모는 치미나(Ciminna) 출신이다. 두 지역은 모두 시칠리아 북부 지역인 팔레르모 주에 있다. 그러니까 조부모와 외조부모는 뉴욕으로 이민 와서 시칠리아 동향(同鄕) 사람을 만나 결혼한 것이다. 우리 식으로 따지면 뉴욕에서 같은 도(道)에 이웃한 군(郡) 사람을 만난 셈이다. 대서양 건너, 신대륙에서 고향 사람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고 동질감을 느꼈을까.
이탈리아 본토와 시칠리아 사이에는 좁은 해협이 있다. 메시나 해협. 가장 좁은 곳이 너비 3.1km에 불과하다. 동지중해와 서지중해를 이어주는 해협이다.
진작에 연륙교가 놓아 졌겠지 싶지만 이곳에는 아직까지 섬과 본토를 연결하는 다리가 없다. 수심이 200~250m나 되어 해류가 거센 탓이다. 메시나 해협에서는 선박 난파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이런 지리적 환경을 그리스신화가 놓칠 리 없다. 신화에 따르면 이 해협에 바다 괴물 스킬라와 카비르디스가 살고 있다. 이 바다 괴물들이 바닷물을 솟구치게 해서 지나는 선박을 침몰시킨다고 한다.
이 거친 물살이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역사·문화적으로 구분 지었다. 이탈리아는 흔히 부유한 북부 지역과 가난한 남부 지역으로 나뉜다. 남부 지역의 중심이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독립적인 왕국을 유지한 적도 있지만 그보다 오랜 세월을 그리스, 프랑스, 스페인, 아랍 등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지배 세력이 교체될 때마다 유혈이 낭자했다. 마피아(Mafia)는 지배 세력의 교체기마다 벌어진 살육전에 대항하기 위한 주민 자위 조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역사학자 홉스바움의 학설이다. 시칠리아가 마피아의 온상이 된 것은 역사적 배경에서 필연적이라는 이야기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외국에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질문을 받으면 “시칠리아에서 왔다”고 대답한다. 이탈리아 출신이라고 말하는 법이 없다. 이것은 마치 마르세유 출신이 자신은 프랑스인이 아니라 마르세유 사람이라고 강조하는 것과 흡사하다.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중에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가 있다.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올려진 적이 있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13세기 시칠리아가 배경이다. 1282년 부활절 저녁기도 종소리에 맞춰 시칠리아 사람들이 일으킨 봉기를 다룬다.
피지배층인 시칠리아인과 이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지배층 프랑스인들의 대립 구도가 큰 틀을 형성한다. 여기에 러브 라인(love line)이 삽입되면서 역사적 사건이 현재화된다.
최근에 나온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알’에도 시칠리아가 등장한다. 기원전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 시칠리아 시라쿠사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유산이 고스란히 보존된 공간 시라쿠사. 영화는 시라쿠사 고고학공원에 있는 ‘디오니시오의 귀’를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으로 설정했다. 이제는 황혼길에 접어든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라쿠사 골목을 누빈다.
조성관 작가·천재 연구가
'지니어스 테이블' 운영자, 전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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