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냄새, 정어리 5t 집단폐사…어민들은 꼭 버려야 했다 [극과 극 한반도 바다]

박진호, 안대훈 2023. 11. 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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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욱곡마을에서 주민들이 폐사한 정어리 떼를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어리 집단 폐사에 주민들 악취 시달려


지난해 10월 경남 창원시 마산만과 진해만 일대에서 14~16㎝ 크기 정어리가 집단 폐사했다. 당시 창원시가 수거한 정어리 폐사체만 200t이 넘었다. 인근 주민은 죽은 정어리에서 발생하는 지독한 냄새로 한동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정어리 집단폐사 원인 규명에 나선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은 ‘산소 부족으로 인한 질식사’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어선에서 버린 게 확실하다”며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정어리가 혼획돼 버렸다는 한 선장의 증언도 있었다.

남해 대표 어종은 멸치다. 하지만 기선권현망 선단의 경우 멸치를 잡는 과정에서 정어리 등 다른 어종이 잡히면 불법이라 버리고 올 수밖에 없다. 단일 어종 어획만 허가(혼획 금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앞 바다에 집단 폐사한 정어리 떼가 떠 있다. [중앙포토]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달 1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어업 선진화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1500건 규제 중 700건 정도 철폐


2014년 개정된 혼획금지법은 수산업법(제41조의3)에 따라 포획·채취할 수 있는 어종만 어획하고, 다른 잡어는 잡을 수 없게끔 만든 제도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논란이 지속하자 해양수산부는 지난 7월부터 ‘어업 규제완화 시범사업’으로, 멸치만 잡게 돼 있는 경남 멸치권현망수협 7개, 전남 멸치권현망협회 3개 선단에 혼획을 허용하려고 했다.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혼획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보자는 차원이다. 하지만 연안 어업인들이 “(혼획 금지가 풀리면) 대형 선단이 모조리 잡아갈 것”이라며 반대해 시범사업은 보류됐다.

최근 동해안에서 대거 출몰하는 참치도 마찬가지다. 참치는 국제기구인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 협약에 따라 국가별 어획 쿼터량이 정해진다. 이로 인해 동해 어민들은 정치망에 잡힌 참치 수십t을 버리러 해안에서 10㎞가량 떨어진 먼바다로 나가곤 한다. 해안에 버리면 해수욕장 주변으로 참치 사체가 밀려들기 때문이다.

반면 동해안에선 오징어가 사라지고 있다. 오징어잡이로 생계를 유지해 온 어민들은 출항을 포기한 상태다.

‘어업 선진화 추진 방안’ 인포그래픽. [자료 해양수산부]


‘총허용어획량’ 제도 2027년까지 전면 도입


어민들은 “수온 변화로 한반도 어장은 급변하고 있는데 수산 정책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며 “어촌 환경에 맞춰 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하지 않는 수산 정책 때문에 한쪽에선 너무 많이 잡혀 기름 써가며 먼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버리고, 또 다른 쪽에선 잡히지 않아 배를 세워놓고 손가락만 빨고 있는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양수산부(해수부)는 ‘어업 선진화 추진 방안’으로 어업 관련 규제 1500여건 중 절반에 가까운 700여건을 철폐하기로 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국내 어업은 115년 전에 만들어진 수산 관계법령을 바탕으로 금어기·금지체장(길이) 등 복잡하고 다양한 규제 위주로 관리됐다. 이런 이유로 어업 생산성은 하락하고 경쟁조업으로 남획이 끊이지 않았다.

규제철폐 핵심은 어획량을 중심의 어업관리체계인 ‘총허용어획량(TAC, Total Allowable Catch)’ 제도를 2027년까지 전면 도입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연근해 모든 어선에 적용한다. 어선별로 TAC 소진량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어업인 간 TAC 할당량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양도성 개별할당제도(ITQ)를 도입할 방침이다.

'어업 선진화 추진 방안' 인포그래픽. [자료 해양수산부]


총생산량 연간 3000억원 증가 예상


양도성 개별할당제도가 도입되면 방어 100t을 할당받은 어민 A씨가 50t을 잡은 상황에서 어획 활동을 더는 못하게 될 경우 방어를 잡는 다른 어민 B씨에게 나머지 50t을 팔 수 있다.

TAC 제도가 전면 도입되면 금어기·금지체장 규정도 없어진다. 어획량 관리로 대체 가능한 금어기·금지체장, 어선 크기 제한, 어획 방법 등 규제는 대폭 완화, 조업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양도성 개별할당제도가 도입되면 일시적으로 어업을 못하게 된 어민은 쿼터를 팔수 있어 경영안전망 역할을 하게 되고 규모를 확대하고 싶은 어민은 투자를 통해 쿼터를 늘릴 수 있다”며 “조업을 할 수 없게 돼도 쿼터를 팔 수 있으니 조업 경쟁이 완화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민들과 협의를 통해 필요한 어종은 탄력적으로 금어기와 금지체장을 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회유어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내 어업에 TAC 전면 도입이 맞는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총어획량이 정해지고 국내 어민이 이 제도를 충실히 이행한다 해도 주변국에서 이를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서해 소청도 인근 어장에서 건져 올린 그물 속 꽃게를 선원들이 털어내고 있다. [중앙포토]


주변국 공조 없는 TAC 효과 의문


실제 서해 꽃게잡이는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한 어민은 “중국 어선들이 30년 넘게 불법으로 조업하는데 대책이 없다”며 “현장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규제만 적용한다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꽃게는 이동성 어종으로 한·중 수역을 오간다. 중국 어선은 수역을 가리지 않고 과도하게 어획하는데 국내 어선은 제한을 받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 어민들만 돕게 된다.

정석근 제주대 해양생명과학과 교수는 “북한·중국·일본·러시아와 같은 주변국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자유롭게 왕래하는 회유 어종이 국내 전체 어획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데 주변국과 공조 없이 홀로 하는 TAC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TAC를 굳이 해야 한다면 이런 경제적인 면을 면밀히 검토해서 실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현재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에 한국 수준으로 자원 관리를 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한·중·일 협력 조사와 평가, 관리도 강화하는 쪽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현실에 맞는 방식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춘천ㆍ창원=박진호ㆍ안대훈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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