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조토 뿌리면 빈대 사라진대요"…이 소문이 사람 잡는다
"빈대를 잡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지난 여름 인천에 사는 정모(45)씨의 집 안에서 빈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온에 약한 빈대를 잡아보려 기록적인 더위가 이어진 한 여름에도 보일러를 50도까지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규조토를 뿌리면 빈대가 사라진다는 정보를 접하고 집 안에 규조토 분말을 뿌렸다. 그는 "규조토 분말이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하루 종일 빈대를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고 했다.
빈대가 가정집까지도 확산하면서 '셀프 방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존 살충제로는 박멸하기 쉽지 않다보니 인터넷에는 각종 '물리적 방역' 정보가 올라오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박모(55)씨는 "방역 업체에 문의해보니 예상 견적이 100만원을 넘는데도 '완전 박멸은 장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며 "다른 방역 업체를 불러봤지만 결국 빈대가 사라지지 않아 셀프 방역에 나섰다"고 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셀프 방역 방법 중에는 맞는 정보도 있지만 효과가 입증되지 않거나 위험한 방법도 있다. 전문가에게 셀프 방역 정보의 진실을 물어봤다.
①규조토 분말, 효과 떨어지고 인체에 위험
전문가들은 규조토 분말을 이용한 빈대 방역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시혁 서울대 응용생물화학부 교수는 “빈대나 해충 방지용으로 사용되는 규조토 분말은 굉장히 날카로워 사람의 피부 닿거나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들어가면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보고가 있어 권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주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열대의학교실 교수는 "규조토 분말이 빈대 퇴치에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득보다 실이 크다"며 "인체에 위험한데 효과는 일반 살충제보다 떨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빈대 공포가 확산하며 규조토 판매량은 급증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식용 규조토를 판매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평소 판매량 대비 5배 정도 증가했다”며 “빈대 퇴치를 위해 구매한다며 사람에게 사용해도 안전한지 등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식용 등급의 규조토도 흡입으로 인체에 들어올 경우에는 위험해 분말 상태로 바닥에 뿌려두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②일광 소독 효과 제한적
하지만 지금은 일광소독도 크게 효과를 보기 어렵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햇볕이 뜨거운 한 여름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날이 선선한 지금은 효과가 없다”고 했다. 엄훈식 한국방역협회 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도 "고온의 날씨에서 일광소독을 오래하면 빈대를 사멸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빈대 알은 건조한 조건을 잘 견딜 수 있어 완전한 박멸은 어렵다"고 말했다.
엄 선임연구원은 "훈증으로 빈대를 퇴치하기 위해 집안 난방 온도를 50도까지 끌어올리는 방법도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빈대가 숨어 있는 가구나 바닥의 틈과 같은 은신처의 온도는 난방기구 온도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③ 바퀴벌레로 빈대 잡는다? 사실 무근
양영철 교수는 “바퀴벌레는 주방에 있는 유기물을 먹이로 먹고, 빈대는 침실에서 흡혈하기에 서식처가 거의 겹치지 않는다. 천적은 서로를 먹이로 인식하든지 경쟁 관계여야 하는데 이들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엄훈식 선임연구원도 "바퀴벌레가 죽은 빈대 사체를 단백질 흡수 차원에서 먹는 건 가능하지만, 살아있는 빈대를 잡아먹지는 않는다"며 "빈대와 바퀴벌레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가정집 빈대 대책은?
기존의 빈대용 살충제가 아닌 다른 살충제를 물리적 방제와 병행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이시혁 교수는 “환경부가 허가한 살충제 중에 비(非) 피레스로이드 계통의 살충제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고 있는 빈대는 피레스로이드 계통 살충제에 최소 1000배 이상의 강한 저항성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피레스로이드 계통의 살충제는 사실상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엄 선임 연구원은 "여행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모든 의류와 침구를 세탁하고 건조기로 30분 이상 고온 건조를 시키는 게 좋다"고 했다. 또 "빈대가 은신했던 물건을 함부로 버리면 빈대가 다른 집에 확산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송다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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