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아프리카에서 본 것들
얼마 전 아프리카 출장 중 마주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바글바글한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탄자니아 므완자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들렀는데 폐교라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교실 바닥은 콘크리트가 벗겨져 자갈이 드러나 있고, 칠판은 색칠이 벗겨져 바랬다. 그런 교실에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아이들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짠하게 다가왔다.
지난달 28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50년이면 전 세계 인구 4명 가운데 1명이 아프리카인이 될 전망이다. 1950년 세계 인구의 8%에 불과했던 아프리카 인구가 향후 25년 동안 지금의 2배로 늘면서 25억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건 전 세계 청년층(15~24세) 가운데 아프리카인이 최소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서구를 비롯해 우리나라 등 대다수 나라가 고령화 여파로 젊은 인구는 쪼그라드는데 아프리카는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평균 연령이 낮아지면서 아프리카의 젊은 피가 세계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신문은 내다봤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본 것은 낡은 교실의 볼품없는 어린이가 아니라 20년 뒤쯤 동네 거리에서 눈인사를 건네는 글로벌 아프리칸을 미리 만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 현지에서 열악한 학교들의 방문을 안내한 이들은 한국인 선교사였다. 짧게는 4~5년, 길게는 30년 가까이 그곳에서 전도와 함께 교육·구호 활동을 병행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갈수록 불어나는 아이들 때문에 부족한 교실을 더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직접 보여주고 설명하며 왜 후원이 필요한지 역설했다. 그 나라 정부나 지방 교육청이 할 일을 외국 선교사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이역만리 떨어진 나라에서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사람을 키우는 그들의 헌신은 140여년 전 언더우드·아펜젤러 같은 초창기 내한 선교사들을 떠올리게 했다. 동시에 수혜국에서 어느덧 받은 사랑을 보답하는 시혜국으로 뒤바뀐 대한민국의 위상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김평육(67) 선교사는 르완다 탄자니아 콩고 우간다 부룬디 등 빅토리아 호수를 끼고 있는 접경 국가들을 순회하면서 교육·구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00만명 넘게 사망한 르완다 대학살 사건이 터진 1994년, 당시 미국에 살던 30대 초반의 그는 취재차 르완다를 들렀다가 지옥 같은 현장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가족을 잃고 떠도는 수많은 난민 어린이들의 틈바구니에서 김 선교사는 “하나님, 여기서 딱 1년만 돕겠습니다” 하고 시작한 일이 30년째다.
그의 활동도 대단하지만 그가 초·중·고·대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며, 병원선을 띄워 빅토리아 호수 섬마을 주민들을 돌볼 수 있었던 건 돕는 손길 없이는 불가능했다. 김 선교사는 “공사비가 없어 건물을 정해진 공기에 맞춰 완공한 적이 거의 없었다”면서 “그때마다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돕는 손길이 나타나 후원금만큼 벽돌을 올리고, 또 후원이 들어오면 지붕을 올리고 그런 식으로 건물을 지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십시일반 온정의 손길을 내민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교회와 성도들이었다. 현장 선교사는 아니지만 기도와 재정 후원으로 돕는 ‘보내는 선교사’들인 셈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여름 방학과 휴가철, 또는 설·추석 명절 때면 의료·교육·문화 선교팀을 꾸려서 달려오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프리카에서 목격한 건 바로 대한민국의 선교, K미션의 힘이었다.
아프리카를 향한 선교사들과 한국교회의 헌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가 있다. 빠른 속도의 인구 성장과 함께 종교 성장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엔 지금 개신교와 더불어 이슬람교, 이단·사이비 등의 바람도 거세지는 ‘종교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진리의 전쟁이 이미 시작됐거나 앞두고 있다. 잘 먹고 잘사는 육신의 욕구 충족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함께 전하되, 진짜 복음을 심어주는 일이 관건이다.
박재찬 종교부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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