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의 딴생각] 보청기와 헤드폰

2023. 11. 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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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카를 타는 사람은 제 차가 퍽 자랑스럽겠지만 내 눈에는 머플러를 개조한 오토바이와 진배없어 보인다. 뿌바방뿡빵 방귀 소리로 행인들의 고막에 공격을 가하는 점은 오십보백보이기 때문이다. 도시인의 귀를 괴롭히는 소리가 어디 이뿐이랴. 휴대폰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철 지난 유행가, 지하철 바퀴와 레일이 만들어내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 윗집과 아랫집에서 서라운드로 들려오는 층간소음까지. 돈을 주고서라도 고요를 사고 싶다고 간절히 바란 끝에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 대중화됐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구입했다. 소음을 완벽히 차단해 주지는 않지만 뿌바방뿡빵 하는 굉음을 부바방붕방 정도로 줄여주기 때문에 신체의 일부처럼 끼고 산 지 오래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에는 숨은 기능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쓸데없이 말 걸지 마시오’라는 메시지 전달 기능이다. 호텔에 숙박할 때 ‘방해하지 마시오’ 팻말을 문고리에 걸어두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무언의 메시지가 모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헤드폰을 쓰고 바쁘게 출근하던 중 한 노인이 나를 붙잡고 무어라 말을 걸었다. 여든보다 아흔에 가까워 보이는 그는 세상에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라는 물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헤드폰을 벗어 목에 걸며 “예?” 하고 되물었다.

노인은 삼성전자로 가는 길을 물었다. 나는 그에게 길을 일러줬으나 노인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귀가 어두워 보청기를 끼고 있었지만 당신에게 맞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별안간 가족 오락관의 인기 코너였던 고요 속의 외침이 길 한복판에서 펼쳐졌다. “이쪽으로 쭉 가시다가! 큰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백화점이 있는데! 그 안에! 삼성전자가! 있어요!” 어렵사리 내 이야기를 이해한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큰 사거리에서 이쪽으로 직진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여기까지 온 것이라 했다. 노인은 나의 말을 좀처럼 신뢰하지 못하면서도 믿을 사람은 나뿐이라는 듯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지도까지 보여주며 같은 말을 거듭했다. 핵심만 명확하게 전달하려다 보니 말은 점점 짧아졌고 언성은 차차 높아졌다. 노인도 답답했는지 손에 꼭 쥐고 있던 삼성전자 팸플릿을 내밀며 말했다. “여기에 전화를 좀 해주면 안 되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거는 일이야 어렵지 않았지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야 대신 전달할 수 있는 노릇이었다. 나는 노인에게 물었다. “전화해서! 뭐요!” 그런데 그가 돌연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마워요… 고마워….” 동문서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내가 화를 낸다고 생각했는지 질문을 멈추고 걸음을 옮겼다. 노인이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삼성전자와 꼭 그만큼씩 멀어져 갔다.

아니, 내 말뜻은 ‘어르신, 전화를 걸어서 무엇을 물어봐 드릴까요’였는데 그렇게 가 버리면 내가 뭐가 돼? 나의 선의를 곡해한 노인에 대한 원망과 오해를 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뒤섞여 짜증이 일었다. 나는 애먼 헤드폰에 화풀이하듯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푹 눌러썼다. 순간, 요란스레 고막을 때리던 자동차 소음과 깔깔거리며 내 곁을 스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물에 잠긴 듯 아득하게 들려왔다. 고래고래 악을 쓰던 나의 목소리도 노인의 귀에는 이렇게 뭉그러져 가 닿았을까. 아니, 어쩌면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험악한 표정만 보였으려나. 원치 않는 고요를 떠안은 노인의 적막한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노인과 나는 보청기와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만큼 다른 세상을 살고 있기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다지도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무언의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전부일 테다. 보청기를 끼고 있으면 ‘큰 목소리로 인내심을 갖고 말해 주시오’라는 뜻이고, 지팡이를 짚고 있으면 ‘다리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너무 재촉하지 마시오’라는 이야기이며, 이마에 주름살이 파여 있으면 ‘살아온 세월만큼 존중 부탁드리오’라는 의미다. 나도 그들에게 하나 부탁하건대, 젊은이가 뚱한 표정을 짓고 있대도 ‘먹고사느라 지쳐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오’라고 이해해줬으면 한다. 할아버지, 저 정말 그런 사람 아니라니까요? 나 정말 억울해!

이주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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