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쓴 컵홀더·빨대로 투표”…분리배출, 밸런스게임으로 풀다
분리 안된 일회용컵 보고 아이디어 고민
세제 리필하는 ‘지구자판기’ 사업도
‘이상형과 연애하고 학점은 올(All) F’ vs ‘이상형에게 차이고 학점은 올 A+’
지난달 24일 중간고사 시험이 한창이던 중앙대 도서관 분리수거함에 이런 문구가 적힌 종이 상자 두 개가 놓였다. 투표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감싸는 종이 홀더로만 할 수 있다. 평소처럼 커피를 마신 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분리 배출하지 않은 채 그대로 놓고 가려던 학생들이 멈춰 섰다.
바로 그 옆에는 ‘감자튀김을 초장에 찍어 먹기’ vs ‘회를 케첩에 담가 먹기’라는 문구가 쓰인 상자가 설치됐고 투표는 플라스틱 빨대로 하도록 했다. 반나절도 안 돼 각각의 상자에는 수십 개의 컵홀더와 빨대가 쌓였고, 그 덕분에 분리수거함에는 플라스틱 컵만 깔끔하게 버려졌다.
사람들이 즐겨하는 밸런스 게임으로 완벽한 분리배출을 유도한 아이디어는 중앙대 신소재공학부 4학년생 서사라(23)씨가 떠올린 것이다. ‘밸런스 게임’ 분리배출함은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궜고 다른 대학과 인근 고등학교로부터 ‘우리도 설치할 수 있겠냐’는 문의가 쏟아졌다.
지난 1일 만난 서씨는 “(뜨거운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음 날 친구들이 뉴스 화면을 캡처해 보내준 것을 보고 반응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3년 만에 복학한 서씨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분리배출되지 않은 채 가득 쌓여 있는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시험공부로 밤을 새우던 중에도 그 광경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자 노트 한편에 아이디어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시험이 끝나자마자 서씨는 옆 학생에게는 사인펜을, 경비원에게는 테이프를 빌리고 도서관 곳곳을 돌아다니며 종이 상자를 주웠다. 밸런스 게임 분리 배출함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의 아이디어가 학내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건 처음이 아니다. 3년 전 서씨는 세제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가 재활용이 어려운 점에 주목했다. 서씨는 “매번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세제를 사지 말고 리필(refill)하세요”라며 용기를 가져온 학우들에게 세제를 나눠줬다.
세제 리필에 성공한 서씨는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기 위해 학교를 잠시 떠났고 자신의 이름을 따 ‘사라나지구’라는 스타트업을 세웠다. 서씨가 창업하기 전에도 세제를 리필해주는 서비스는 있었는데, 상주 직원에 따른 인건비와 영업 공간 확보에 드는 임대료 등으로 성행하진 못했다.
서씨는 휴대전화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필요한 만큼 세제를 리필할 수 있도록 무인 자판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발업체의 문을 두드렸고 기계 공정에 대해서도 틈틈이 공부했다.
처음 개발한 자판기가 학교 근처 카페에 시범 설치됐을 땐 소비자 반응을 살피느라 한 달 동안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서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자판기를 쓰는지 계속 지켜봤다. 밥 대신 커피와 빵만 먹었다”고 했다.
서씨는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지구자판기’를 개발했다. 환경보호 행사장에서 선보인 지구자판기는 ESG경영에 뛰어들기 시작한 기업과 공공기관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우리 회사와 기관에도 설치해달라”는 러브콜이 밀려들었고 서씨는 30여곳의 공공기관과 기업에 지구자판기를 대여해줬다.
환경을 사랑하는 평범한 공대생이던 서씨는 최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최한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는 등 ‘에코인프라’ 사업가로 인정받았다. 다음 달에는 본격적으로 렌탈 사업을 하기 위한 지구자판기 최종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이용자 데이터 분석을 접목한 수익 모델도 구상 중이다.
서씨는 3년 만에 돌아온 학교에서 새로운 영감도 얻었다. 서씨는 “사업을 할 땐 자발적으로 환경보호에 힘쓰던 사람들과 교류해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의 실태를 몰랐다”며 “환경보호에 나서라고 압박하는 것보단, 친근하고 재밌게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의 사업에서도 활용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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