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尹 사랑하면 험지 가라"…윤핵관 때렸다, 최소 39명 타깃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3일 “당 지도부와 중진, 대통령과 가깝게 지내는 의원들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수도권 지역 내 (국민의힘 승리가) 어려운 곳에서 출마하는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당 주류 전체를 겨냥해 ‘희생’을 요구하면서 여권엔 격랑이 예고됐다.
인 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혁신위 3차 전체회의를 가진 뒤 직접 브리핑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당과 나라의 위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희생 결단이 요구된다”며 “과거엔 국민이 희생하고 정치인이 많은 이득을 받았는데 이젠 국민에게 모든 걸 돌려주고 정치인이 결단을 내려서 희생하는 새로운 길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혁신위는 인 위원장의 발언이 ‘정치적 권고’라고 규정했다. 정식 혁신안으로 의결되진 않았으나 “국민적 관심사가 큰 부분은 위원장이 우선적으로 피력할 필요가 있었다”(김경진 혁신위원)는 설명이었다 . 또 지도부와 중진,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의 범위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당에서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인 위원장이 떠난 뒤 김경진 혁신위원은 이날 혁신위가 공식 의결한 ‘2호 안건’ 네 가지를 발표했다.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전면 포기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세비 책정 ▶현역 국회의원을 평가해 ‘하위 20%’ 공천 원천 배제 등이다. ‘희생’이란 화두로 이날 결정된 안건은 조만간 당 최고위원회에 보고된다. 지난달 30일 혁신위는 ‘1호 안건’으로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김재원 전 최고위원 등에 대한 ‘대사면’을 건의했고, 최고위는 지난 2일 건의를 받아들여 이들에 대한 징계 취소를 의결했다.
이날 여권의 관심은 ‘정치적 권고’인 불출마 요구에 쏠렸다. 공식 의결 안건은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역대 혁신위가 늘 띄우던 단골 주제인 반면 불출마 요구는 당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혁신위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정치적 권고’라는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혁신위에서 중진, 대통령과 가까운 분의 정치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어떤 위원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힘을 실었다. 대변인 격인 김경진 혁신위원은 “지도부에서 당 회생을 바란다면 적절한 답변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압박성 발언도 덧붙였다.
혁신위가 ‘희생 결단’을 요구한 숫자는 최소 39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현역 의원만 따지면 36명으로 국민의힘 전체 의원(111명)의 3분의 1 규모다. 당 지도부엔 통상 ‘당 4역’인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유의동 정책위의장, 이만희 사무총장과 김병민·조수진·김가람·장예찬·김예지 최고위원이 포함된다. 중진은 통상 3선 이상을 가리키고 31명이다. 3선은 윤재옥·장제원 의원 등 17명, 4선은 권성동·김기현 의원 등 8명, 5선은 정진석·주호영 의원 등 6명이다.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은 권성동·장제원·윤한홍·이철규 의원 등이 꼽힌다.
인 위원장의 발표로 당내는 종일 술렁였다. 앞서 인 위원장이 사견을 전제로 제기했던 ‘영남 스타의 서울 출마론’이나, 혁신위 2호 안건에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가 돌았던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제한'보다 더 파괴력이 큰 이슈였기 때문이다.
특히, 주요 타깃이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관계자)이란 점에서 여권의 파장은 더 컸다. 그동안 당내에선 “총선이 다가오면 친윤계 핵심의 불출마나 험지 출마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유력했다. 그런 ‘공공연한 여권의 비밀’을 인 위원장이 공식화해버린 셈이다. 인 위원장은 발표 직후 MBC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대상 인물을 분명히 했다. 그는 “대통령을 사랑하고 지지하면 희생하자는 말”이라며 “정말 대통령을 사랑하면 험지에 나와서 (출마하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해라. 못 하겠으면 내려놓으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꼭 가야 할 길을 새삼스럽게 얘기하고 분위기를 만들어서 거기로 가게끔 하는 게 우리 임무”라며 “모두가 가야 할 길을 다 안다. 한국말로 공개된 비밀”라고도 했다. 그동안 대통령의 측근을 자부하며 “대통령을 위해서”라는 말을 자주 해오던 친윤계 핵심들을 대놓고 겨눈 것이다.
정치권에선 혁신위의 이번 권고가 용산 대통령실과의 공감 속에 나왔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여권 내부 사정에 밝은 인사는 중앙일보에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전 부터 윤 대통령은 측근들의 불출마나 험지 출마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고, 이런 기류가 어떤 식으로든 혁신위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머지 않은 미래에 일부 ‘윤핵관’이 수도권 출마나 불출마를 선언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최근엔 일부 의원들의 구체적인 예상 출마지가 당 내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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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사자들은 일단 원론적 입장만 밝혔거나 말을 아꼈다. ‘지도부’이자 ‘영남’(울산 남을) ‘중진’인 김기현 대표는 “혁신위가 논의한 결과를 종합적으로 제안해오면 당에서 정식적인 논의 기구와 절차를 통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만 했다.
‘윤핵관’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대통령과 친하다고 내보내면, 누가 헌신하냐”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공개적으로 입장을 내지는 않았다. 친윤계 핵심 의원 측 관계자는 “당장 뭐라고 반응할 상황이 아니다. 혁신위 제안을 당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추이를 봐야 한다”고 했고, 다른 의원 측에서도 “일단은 무대응 기조”라고 했다. 다만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을 수행했던 초선 비례대표 이용 의원은 “당이 요구하면 불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총선 전략 측면에서 “혁신위 권고가 잘못됐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혁신위 권고대로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던 중진이나 친윤계 핵심이 수도권 출마를 할 경우 기존 수도권 원외 당협위원장이 총선 공천에서 연쇄적으로 밀려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익명을 원한 수도권 지역 당협위원장은 “중진들의 수도권 출마가 ‘희생’이란 점이 강조되면 자연스레 기존에 있던 사람한테는 양보하라는 압박이 갈 것”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에서 내분이 터질 수 있다”고 했다.
지역구마다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PK지역 중진 의원은 “중요한 건 본선 경쟁력”이라며 “해당 지역에서 중진이 빠진 뒤 이를 대체할 사람이 있느냐를 중심으로 지도부가 잘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영남권 중진 의원도 “4년 내내 관리한 지역구를 갑자기 떠나는 건, 상대 당 후보만 이롭게 해주는 자가당착”이라고 강조했다.
친윤계가 혁신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긍정 평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큰일 났네. 부산에 장제원과 아이들, 강원도에 이철규와 아이들, 경남에 친윤이라고 거들먹대던 아이들, 울산에 김기현과 아이들, 지도부의 듣보잡과 아이들, 용산 대통령실 출마 대기 아이들, 모두 모두 집에 가게 생겼네”라며 “혁신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썼다.
반면 유승민 전 의원은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영남 중진을 서울로 보내면 빈자리가 있을 것”이라며 “그러면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영남에, 당선 가능한 지역에 막 꽂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이날 “혁신위가 쫓아내고 만든 꽃방석 지역구 의석은 결국 ‘윤핵검’(윤 대통령과 가까운 검사 출신)이 차지할 수밖에 없다”며 “인요한 혁신위는 용산 선거기획단을 자청하는 것이냐”고 논평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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