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가 말하는 ‘소년들’ ‘황반장’ 그리고 정지영 감독 [D:인터뷰]
"'소년들'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영향 끼쳤으면 하는 바람"
‘그놈 목소리’ ‘소원’ ‘생일’ ‘실미도’ ‘킹메이커’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배우 설경구가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블랙머니’ 등 사회 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를 만드는 정지영 감독과 손잡고 ‘소년들’에 출연했다.
‘소년들’은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3인조 강도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용의자로 소년 3명이 검거되고 사건을 종결됐다. 그러나 곧 진범이 나타나고, 이들이 경찰과 검찰의 강압수사로 인해 만들어진 가짜 범인임이 드러난다. 사건 발생 17년만인 2016년 이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설경구는 극중 베테랑 형사 황준철을 연기한다. 그러나 이 인물은 삼례 나라슈퍼 사건 당시엔 없는 영화 속 가상의 인물이다. 물론 이는 다른 사건의 인물을 차용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과 비슷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황상만 반장이 모델이다. ‘강철중’ 이후 형사 역을 밀어냈던 설경구가 오랜만에 형사 역할을 맡은 것이다. 10월 어느 날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설경구는 영화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소년들’이 왜 흥행해야 하는지를 강조했다.
- 영화를 본 소감은 어떤지요.
“전주에 가서 시사회를 했는데 아직도 묘한 기분이 들어요. 촬영을 전주에서 하면서 도움 주신 분들, 피해자 유가족들과 ‘소년들’의 실제 피해자 중 한 분도 오셨어요. 화성 연쇄살인 사건 8차 피해자, 낙동강 살인사건의 누명 쓰신 두 분도 오시고, 제 캐릭터 모티브가 됐던 약촌 오거리 사건의 황 반장님과 재심을 맡으셨던 박준영 변호사도 오셨죠. 심지어 진범까지도 만났어요. 기존에 실화 작품을 하면 그 피해자분들과 가족분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진범이 있어서 그런지 제대로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진범이) 유가족 분들이랑 연락하고 지내신대요. 정말 기분이 이상했죠.”
- 그 분들은 영화를 보신 후 반응이 어땠나요.
“박준영 변호사님은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사건의 당사자들인) 그 분들이 겪었던 게 있어서 그런지 내 일 같이 영화를 보신 것 같아요.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봐주셨어요. ‘그래도 정의는 있다’ 이런 식으로 굉장히 초월한 분들 같아 보였어요. 세상이 당신들을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한 원망보다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 ‘아직은 정의는 살아있지 않냐’ 그렇게 보시더라고요. 이분들은 뭔가 경지에 올라서 일반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어요. 정말 처참했던 인생이었을 텐데. (낙동강 살인사건 누명 쓰신 분은) 아기 돌 때 누명 쓰고 들어가서 나오니까, (아이가) 24살이더래요. 그러니까 확 와닿는 거예요. 그런데도 좋은 일 하시려고 노력하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려 하는데, 그게 또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어떤 점이 먼저 끌리셨나요.
“어떤 점이 아니고 정지영 감독님이 (대본을) 줘서 끌렸다. 살아온 과정을 제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영화감독님 중에서 상당히 사회 참여형 감독님이라 생각하거든요. 남들이 말하기 어려운 것도 그냥 ‘야 내가 얘기할 거야’라며 앞에 나서시는 분이고. 사회 문제 있을 때 농성도 하시고 단식도 하셨죠. 뚝심이 있는 분이라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 이전에도 실화 영화에 많이 출연하셨어요. 이런 류의 영화는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소진하는 연기를 해야 한다. 그러한 선택을 계속 하는 이유는 뭘까요.
“실화 바탕 영화가 들어오면 보통 하게 돼요. 그리고 감독님들이 책(시나리오)을 줄 때부터 충만해져서 오세요. 이미 책을 쓰고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여기에 몰입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힘이 아주 강렬해요.”
- 극 중 황 형사의 젊은 시절부터 퇴직 직전의 늙고 초라한 모습까지 소화하는데, 준비가 힘들었을 텐데요.
“약촌오거리 사건 당시 진범을 잡은 분에게 빌려온 캐릭터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상상을 했죠. 좌절하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는 모습을요. 일주일 동안 살을 뺐어요. 뭔가 건조해 보여야 할 것 같았죠. 그리고 실제 그 분을 만나보니 저보다 더했던 것 같아요. 파출소로 좌천된 것도, 하루에 6-7병 소주를 안 마시면 잘 수 없을 정도였고 결국 뇌경색이 오셨대요. 지금도 후유증이 있어서 어느 단어는 생각이 안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그 마음을 알겠어요. 저는 상상하는 거고요. 실제로 16년간 진급이 안되고 경위로 퇴직하셨대요. 재수사를 밀어붙이니까 그만하라는 상급자랑 싸우셨다는 얘길 들으면서 연기적으로 더 갔어야 했나 생각이 들었죠.”
- 그간 젊은 감독들과 하다가 원로인 정지영 감독님과 일을 해보니 다른 점이 있었나요.
“분명히 있었죠. 선입견일 수 있지만, 옛날 분이라 생각했죠. 감독으로 40주년이지, 연출부까지 하면 50년이 넘잖아요. 그런데 그 선입견이 현장에서 무참하게 깨졌어요. 그런 분이 아니더라고요. 상냥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그런데 일단 관계에 상하가 없어요. 현장에서 연출부들이 조심스러워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없이 수평 관계라 놀랐어요. 스태프들이 감독님에게 거침없이 얘기해요. 사실 감독이란 존재가 어려울 수 있는데, 그 경계를 무너뜨린 거죠. 조감독하고 큰 소리 내며 격한 토론 하는데, 저는 싸움 난 줄 알았어요.”
- 허성태 배우와는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어땠나요.
“그 친구가 악역만 하다가, 이번에 이 역할을 소화하려고 하니 많이 ‘업’이 된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곳에서 ‘오징어 게임’을 찍고 있을 때였는데, 여기 오면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리고 자기는 원래 이 역이 본인 성향에 맞다고 말하더라고요. 내가 본 성태는 정말 그랬어요. 낯가림도 심하고 처음 본 사람과 잘 안 어울려요. 자기는 악역을 하면, 다음 날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때려놓고 집에서 힘들어서 막 운다고.”
- 삼례 나라슈퍼 사건 당시 경찰들은 아직 입을 닫고 있지만, 검사는 사과를 했어요. 하지만 정지영 감독님은 진정성이 없다고 평가를 했어요. 사과는 했지만, 너무 늦었다고 봤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영화 찍을 때까지 사과를 안했어요. 그래서 원래 이와 관련해 자막이 있었는데, 검사가 사과한 후 삭제했죠. 어찌 되었든 사과해서 유족들이 받아들였는데, 이를 ‘사과 안 했다’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 검사가 그걸 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왜냐하면 그 전까지 피해자들 대상으로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했었어요. 법원 판결이 났어도 검사는 사과를 안 했어요. 그런데 영화가 완성된 후 사과를 하니 감독님이 의심하는 거지요.”
-감독님이 제안할 때 강철중의 이미지 때문에 꺼려했을 듯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선택했고요.
“감독님도 강철중이 10년 후 저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셨대요. 제 핸디캡이기도 한데 형사를 하면 아무리 다른 걸 해도 강철중 같아서 피하기도 했어요. 이번엔 황 반장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소년들이 자기 목소리도 못 내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조작된 것에 대해 말 못한 걸, 처음으로 용기 내서 세상에 외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감독님도 저도요. 고맙게도 박준영 변호사가 (전주 시사회에서) 보고 그 부분을 언급해 줬어요. 실제 재심 때도 (재판 과정에서) 목소리를 못냈대요. 영화로나마 소년들이 용기를 내서 얘기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데 뭉쿨하더라고요.”
-현재 사회 고발 영화가 옛날에 비해서 확실히 힘이 확 빠졌어요. 예를 들어 영화 ‘도가니’의 경우에는 관련 법도 생기고 사회적 공분도 일으켰는데, 지금은 이런 류의 영화를 많이 불편해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다들 이런 일에 대해 무뎌진 것 같아요. 자극적인 거 외에는 ‘또 일어났구나’ 정도로만 생각하죠. 내 일 아니면요. 그게 영화에도 영향이 미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런 영화가 잘돼야 한국영화가 잘 된다고도 봐요. 뭔가 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것만 인기를 얻는다고도 하지만 이것도 폭력적이에요. 이만한 폭력이 없죠. 어떤 식으로든 제발 영향을 끼쳤으면 하고 많은 사람 입에 오르내렸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이 그거겠죠. 뒤늦게 재심을 통해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만 영화로 거울이 됐으면 좋겠다고, 감독님도 저도 그런 마음이에요.”
-극장 영화만 하던 입장에서 넷플릭스 ‘야차’는 OTT로 간 첫 영화다. 본인의 의지는 아니였겠지만, 영화를 극장이 아닌 스마트폰 등으로 봤을 때 기분은 어땠는지요.
“그때 감독님이 완강히 반대했죠. 그러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본전이라도 환수해야 하기에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야 다음 스텝이 나오니까. ‘길복순’의 경우에도 일주일이라도 극장에서 개봉하면 안되냐고 묻기도 했어요. VIP 시사도, 베를린에서도 스크린 상영을 했는데, 공개된 이후에는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GV를 하는데 이 분들이 집에서 영화를 보고 신청해 극장에서 이야기하는데 굉장히 낯설었어요. 세상이 바뀌면 저도 적응을 해야 되긴 하죠. 필름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면서 다들 당황했지만 계속 그렇게 바뀌는 것 같죠. 자율주행 차 타고 영화 보면서 회사 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시대 아닌가요.”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남현희 "전청조, 성관계 때 남자…고환 이식 믿었다"
- "이게 브라야 유두야"…킴 카다시안 '벗은 느낌' 속옷 논란
- 비웃음 당한 "I am 공정" 조국…4시간 뒤 한 줄 덧붙였다
- 국힘, 한동훈-서울 이준석-광주 내보내라
- "남현희, 범죄 숨기려고 김민석 고소한 것이면 무고죄 성립하지만 가능성 낮아" [법조계에 물어
- 국민의힘, '특별감찰관 추천' 당론 추진…'김건희 특검법'은 재의요구 건의
- 한동훈, 당원게시판 논란에 첫 입장…"분열 조장할 필요 없다"
- 김혜경 벌금 150만원 선고…"범행 부인하고 책임 전가"
- ‘민희진 플랜’대로 흘러가나…뉴진스, 어도어에 내용증명 초강수 [D:이슈]
- ‘불공정위원회’ 이기흥 회장, 직무정지 카드 받고도 승인...정몽규 회장도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