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겠습니다"… 죽음 두려워도 터놓고 이야기 해야
◇강의하려고 ‘죽음’ 말했다 쫓겨나기도…
웰다잉이란 말 그대로 잘 죽는다는 걸 뜻한다. 그러나 죽음은 말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이번 특강을 맡은 ‘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 강원남 소장은 과거 경로당에서 죽음 얘기를 꺼냈다가 쫓겨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요즘에도 1년에 한 두 번씩은 어떤 강의인지 모르고 참여했다가 화를 내면서 나가는 어르신들이 있어요. 죽음이 두렵고 불편한 주제니까. 그래도 확실히 과거에 비해선 나아졌죠. 최근에는 말기 암 환자나 보호자들이 뭘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오셔서 강의를 들으시기도 해요.”
특강에서 주요 과제는 ‘해피엔딩노트’ 작성이었다. 작은 자서전이라고 볼 수 있는 노트에는 웰다잉 선언문, 인생 그래프, 유언장,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호스피스 이용 의향서 등이 담겨 있다. 구체적인 실천 사항들을 작성하며 삶을 어떻게 마칠지 계획하는 것이다.
한 수강생이 다 작성하면 어디에 쓰냐고 물었다. 강 소장은 맨 앞장에 적은 대로, 마지막을 지킬만한 사람에게 전달하면 된다고 말했다. “어떤 어머니께서 다 쓰신 다음에 따님한테 노트를 주셨는데 따님이 이걸 보고서 눈물을 흘렸대요. 보니까 우리 엄마가 이렇게 살았구나,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는 게 고스란히 느껴져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합니다. 또 엄마한테 장례식이랑 연명의료 같은 걸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기 좀 껄끄러웠대요. 그런데 먼저 정리해서 주니까 굉장히 큰 선물이 됐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이날 특강은 4주차의 마지막 차수였다. 보통 웰다잉 강의는 6~8주차로 진행되기 때문에 짧은 편에 속한다. 입관체험이나 영정사진 촬영 등의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래도 수강생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강 소장이 소감을 묻자 “죽음이 두려웠는데 터놓고 얘기하다 보니 한결 가벼워졌다”, “연명의료에 대해 딸한테 어떻게 얘기할지 정리할 수 있었다”, “살아왔던 시간 말고 남은 시간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큰 가르침을 받았다” 등의 대답들이 이어졌다.
평생을 간호사로 살아온 공옥희(73세)씨는 이번이 3번째 웰다잉 교육이라고 말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면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얼마나 두려울까 이런 생각은 많이 했죠. 그런데 입관체험을 한 뒤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어요. 관에 들어가 부모님도 이렇게 가셨겠구나 생각하니 편안해지더라고요. 죽음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대상이 아니라 그냥 생명의 소멸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건 내가 공부해야 된다는 걸 되새기려고 교육에 계속 참여하는 것 같아요. 덕분에 지금은 아침에 눈 떠서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요.”
웰다잉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잘 사는 데에 있다. 죽음을 인식하고 준비해야 남은 하루를 소중하게 살 수 있고, 이러한 시간들이 쌓여서 결국 좋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강 소장은 특강 내내 수강생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강조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참 잘 살아왔다. 애썼다 고생했다, 수고 많았다고 위로해야 잘 사는 거예요.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요.”
◇전생애에 걸쳐서 교육, “죽음 양지로 꺼내야…”
급격한 고령화와 공동체의 해체로 ‘죽음의 질’이 점점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죽음은 의료적인 사안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연명의료결정법, 조력존엄사 등이 주로 언급된다. 이러한 사안들은 당사자와 가족들의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연관성이 크기 때문에 중요하지만 좋은 죽음의 전부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죽음의 질이 개선되려면 죽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 속에서 편하게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자연스럽게 죽음을 성찰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건양대 웰다잉융합연구소 장경희 박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죽음에 대해 계속 얘기하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며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 이후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죽음을 얘기하는 것에 대해 인색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죽음교육은 대부분 노인 대상으로 이뤄진다. 살아온 삶을 돌아보거나 남겨진 가족들을 위한 행정적인 절차를 알려주는 ‘준비’ 교육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젠가 또는 갑자기 찾아온다. 따라서 전생애에 걸친 교육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지난 1972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웰다잉 교육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중학교에서도 웰다잉 교육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죽음은 자살 예방 교육에서만 등장한다.
강 소장은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죽음에 대해 교육하는 건 인성 교육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죽음을 공부한다는 건 결국 삶과 생명의 소중함을 공부하는 건데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법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례식에는 아이를 데리고 가면 안 된다는 말처럼 우리나라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접하는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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