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해봤습니다, 그 결과는

서부원 2023. 11. 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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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후폭풍은 거셌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서부원 기자]

 페미니즘
ⓒ unsplash
 
발단은 몇 해 전 교육 실습을 나온 여자 교생 선생님의 황당한 경험을 직접 듣고서다. 한 아이의 느닷없는 질문에 그는 머리가 하얘져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한동안 얼음이 되어 서 있어야만 했단다. 그것도 설레는 마음 가득했던 첫 수업 시간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고 했다.

"선생님, '페미'예요?"

첫 인사가 끝난 뒤 곧바로 튀어나온 맥락 없는 질문이었다. 처음 만난 교생 선생님을 향해 다짜고짜 '정체를 밝히라'며 협박한 셈이다. 그 황당하고 무례한 언동에다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호응하는 통에 칠판에 학습 목표를 적는 손이 다 떨렸다며 당시의 당혹스러움을 토로했다.

요즘 아이들에게 '페미'는 차라리 욕설이다. 페미니즘의 '페'자만 나와도 너나없이 흥분한다. 페미니즘이 여성주의로 번역된 탓인지 여성주의는 물론, 여성의 권익이나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단어조차도 색안경을 끼고 본다. 이럴진대, '메갈'은 아예 발본색원의 척결 대상이다.

이렇듯 '살벌한' 분위기 속에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은 시도조차 어렵다. 성별과 상관없이 교사도 '페미'로 낙인찍히는 순간 학교생활이 힘들어진다.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특이한 말과 행동 하나가 '페미'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와중에 '페미'는 학교 내에서 금기어가 됐다. 갈등의 소지를 미리 없애겠다는 식으로, 아이들이 묻기 전에 스스로 '페미'가 아니라고 고백하는 교사도 있다. 한 동료 교사는 최근 들어 페미니즘이 과격하게 변했다고 지적하며, 짐짓 그들을 두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교육한 이유 

'여성가족부 폐지'. 이는 작년 윤석열 대통령을 당선시킨 '1등 공신' 공약이었다. 달랑 이 일곱 글자로 초접전 양상이던 선거에서 20~30대 청년층의 지지를 끌어낸 게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갈라치기 전략이었을지언정 페미니즘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장담하건대, 지금 10대 아이들의 반감은 작년 윤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준 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 하지 않다. 몇몇 아이들은 어떤 후보든 '페미 척결'이라는 공약만 내걸면 이것저것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찍겠다고 말한다. 그들은 더한 혐오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올해 초 교내 자율활동 주제를 내심 페미니즘으로 정한 이유다. 아이들 앞에서 대놓고 페미니즘을 내걸 수 없어, '낯설게 세상 바라보기'라는 이름으로 우회했다. 책을 함께 읽은 뒤 소감을 나누고, 강사를 초빙해 강연도 들으면서 퉁명스럽고 강퍅한 마음을 녹여보려고 했다.

1학기 때는 정희진 작가가 2017년에 쓴 <낯선 시선>을 함께 읽었다. 누구든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는 페미니즘 입문서라는 판단에서다. 시의적절한 주제를 소재로 쓴 길지 않은 글인데다 어휘도 쉽고 구어체에 가까워 고등학생 정도면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대입 공부에 쫓겨 좀처럼 책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하는 현실이 문제였을 뿐, 내용이 난해하다거나 지루하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빠듯한 일상에도 불과 하루 만에 다 읽었다는 아이도 있었다. 최근에 벌어진 사건들에 주석을 단 현대사 교양 도서 같았다는 느낌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런데, 입이라도 맞춘 듯 한결같은 소감이 있었다. 딱히 버겁진 않았지만, 불편했다는 것. 다들 지금껏 믿어 의심치 않던 자기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건건이 지적하는 듯해 불쾌했다고 꼬집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심어주었다며 기꺼워한 아이들도 아예 없진 않았다.

소감을 나누던 날, 부러 이 책을 선택한 이유를 들려주었다. 단순히 여성주의로 번역되지만, 페미니즘은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겠다는 다짐이며, 일상에서 접하는 일들을 낯선 시선으로 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몇몇 아이들은 공감을 표시했고, 다른 몇몇은 꿈보다 해몽이라며 비아냥거렸다.

2학기 때는 미국의 여성학자 게일 피트먼이 쓴 <페미니즘 탐구생활>을 함께 읽었다. 10대 청소년을 위한 본격적인 페미니즘 교양서로, 일상생활 속 다양한 주제와 상황을 설정하여 주요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책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맹목적인 편견을 해소하는 데 제격이다.

스스로 성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점검해볼 수 있었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안내되어 좋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몇몇은 페미니즘이 여전히 공격적인 느낌이라며 읽기가 조금은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저자와 직접 만나 대화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페미니즘을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구시대적 발상일 뿐이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는 특별히 남녀의 성역할이 나뉘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과거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요즘 세대의 가치관을 재단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페미니즘을 오랫동안 차별당한 기성세대 여성들이 애꿎은 젊은 남성을 향해 욕하는 거라고 규정했다.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첫발은 내디뎠다. 내친김에 전문가를 모시고 대중 강연을 계획했다. 편견은 무지에서 생기고, 편견이 고착화하면 부정할 수 없는 진리처럼 여겨지는 게 다반사다. 특히 어릴 적부터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영상에 길들어진 아이들에겐 더욱 위험하다.

기실 페미니즘을 향한 극단적인 혐오도 그렇게 형성되고 굳어진 것이다. 아이들에게 페미니즘을 정의해보라고 하면, 십중팔구 남성에 대한 역차별과 맹목적인 남성 혐오를 들먹인다. 내세우는 근거조차 허술하기 짝이 없어, 유튜브 등에서 떠들어대는 가십거리가 대부분이다.

대중 강연은 의도와 결과가 전혀 딴판이었다. 300명 가까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은 주제조차 전달되기 힘들 만큼 내내 어수선했다. 아이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변 시간이 길어지면서 강연의 흐름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했고, 강사는 당황해하는 낯빛이 역력했다.

아이들은 강의 도중 말을 끊으며 페미니즘을 향한 혐오를 거침없이 쏟아냈고, 강사는 그들에게 혐오 표현을 자제하라며 언성을 높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걸 간과했고, 실을 바늘허리에 묶어 쓰려는 꼴이 되고 말았다. 대중 강연은 게도 구럭도 다 잃은 채 실패로 끝났다.

잠시 멈춰서더라도, 우회하더라도 

극도로 민감해하는 주제인 줄 알면서도 순진했고 준비마저 부족했다. 만시지탄이지만, 강연 대상을 앞서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눈 아이들로 한정했다면 훨씬 더 생산적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전문가를 만나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생각에 욕심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

후폭풍은 거셌다. 당장 강사와 아이들 사이에 끼어서 난처한 처지가 됐다. 강연의 취지와 내용을 두둔하려니 아이들로부터 "선생님도 페미냐?"는 질문을 받고, 일상화한 아이들의 혐오 표현에 이해를 구하려니 강사로부터 "왜 그런 의견을 두둔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양극단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중도적 입장은 양쪽으로부터 모두 욕먹기에 십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됐다. 동료 교사들은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은 시기상조라는 말을 건네며 위로했다.

잠시 멈춰서기로 했다. 물론,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가 없다거나 영영 불가능하다고 여겨서가 아니다. 주제 글귀를 살짝 바꿨듯 우회할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시쳇말로 '일단 칼을 빼 들었으니 썩은 무라도 잘라야' 하는데, 머릿속이 복잡하다. 성평등의 의미와 필요성을 강조하기보다 여성이 주도해온 역사적 서사를 소개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지금 '하늘의 절반은 여성이 떠받친다'고 일갈한 마오쩌둥의 어록을 다시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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