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 구매대행’ 신종 보이스피싱 극성… 전국 경찰에 수십건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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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와 같은 쇼핑몰 구매대행 방식의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미 경찰에는 여러 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돼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구매대행 사기 피해자 A씨의 제보 내용을 토대로 신종 구매대행 사기 범행이 이뤄지는 과정을 재구성했다.
경제적 어려움 겪는 사람 타깃… 피해자 자금으로 자발적 구매 유도기존 보이스피싱이 피해자 계좌이체를 통해 범인 계좌로 송금하거나 현금을 인출해 전달하도록 했던 것과 달리 구매대행 사기는 피해자가 자신의 돈으로 범인이 지정한 쇼핑몰에서 물품을 구매해 지정된 배송지로 배송시킨다. 외형적으로는 직접 돈을 보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미션을 준 뒤, 미션을 완수하면 들어간 비용에 수당을 합쳐 되돌려주는 형태다. 이처럼 ‘구매대행’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으로 채용되는 방식이다 보니, 사기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자기 돈을 들여 점점 고가의 물품을 구매하면서 피해 금액이 늘어난다.
이들이 보내는 피싱 메시지는 솔깃하다. ▲나이·학력·성별 무관 ▲자유로운 근무시간(근무 요일·시간 선택 가능) ▲고소득 보장 등 충분히 끌리는 조건이다. ▲4대 보험 미적용조차 부업으로 가능하다는 조건이다. 즉, ‘통장에 잔고가 있거나,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인터넷 혹은 스마트폰 이용 가능자’면 이들의 타깃이 된다.
문자메시지→카카오톡(개인 미션)→텔레그램(단체 미션) 순차 안내
보이스피싱 일당은 처음엔 구인 광고 문자메시지를 이용한다. 광고 문자에 포함된 카카오톡 아이디를 검색해 친구로 추가한 뒤 1:1 채팅을 통해 말을 걸면 범인 입장에선 절반은 성공이다. A씨도 이렇게 걸려들었다. '매니저'라는 직함을 가진 범인 일당이 인사를 건네며, 이름과 나이, 근무 가능시간 등 기초적인 정보를 묻는다. 이후에는 미리 준비된 매뉴얼에 따라 십여개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연속적으로 보내 업무 내용을 설명했다.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 요구하는 물량을 우리가 공장가로 구매한 후 도매가로 판매해서 중간에 남는 마진을 수익으로 배당한다. 당신은 쇼핑몰 주문 건을 물류회사에 대리주문을 넣으면 된다.”
처음 시작은 5만원 정도의 소액이었다. 타깃이 지시받은 개인 미션을 수행하면 매니저는 타깃에게 적립된 포인트를 확인하고 현금으로 전환해 출금시킨다. A씨의 계좌엔 물품구매 대금으로 사용한 5만원에 10%의 수익금 5000원이 더해져 총 5만5000원이 물건을 구매한 쇼핑몰의 포인트로 적립됐다. 통장으로 인출하면 실제 출금이 됐다. A씨 등 타깃은 이 단계에서 ‘혹시 사기 아냐'라는 의심을 거두고 적극적으로 나선다.
‘남에게 피해를 줄 순 없지’… 심리를 이용한 단체 미션
이 단계가 되면 매니저는 단체 미션(그룹업무)을 제안한다. 개인 미션에 비해 훨씬 많은 물품을, 고가로 구입하기 때문에 그만큼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유혹한다. 매니저는 카카오톡 대신 보안성이 뛰어난 텔레그램을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여기까지가 카카오톡에 등장한 첫 번째 매니저의 임무다.
텔레그램에선 두 번째 매니저가 등장해 다른 타깃들이 멤버인 그룹방으로 초대한다. 그룹방에서는 개인 미션보다 훨씬 고가의 물품을 구입하라는 미션을 준다. 수십만~200만원대의 가전제품을 구입해야 한다. A씨에겐 총 10회에 걸친 단체 미션이 주어졌는데, 누군가 단체 미션을 중간에 중단할 경우 2주가 지나야 적립된 포인트를 출금할 수 있다고 겁을 줬다.
A씨는 고가의 물품을 자비로 구입해야 하는 미션이 부담스러웠지만, 내가 할당된 주문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다른 회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거듭된 고가 물품 구매 요구에 A씨는 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10회 중 5회까지라도 진행을 하면 14일의 출금제한 기간을 7일로 앞당겨준다는 말에 속아 결국 통장에 남은 잔고를 모두 소진해 5회 미션을 완수했다. 며칠 만에 400만원이 넘는 자기 돈을 들여 할당된 물품을 구매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수익금까지 583만원의 포인트가 적립됐다.
A씨가 적립된 포인트를 현금으로 전환해 인출하기 위해 쇼핑몰 사이트에 접속하니, 사이트가 열리지 않았다. A씨가 텔레그램으로 매니저에게 “홈페이지가 안 열린다”고 묻자, 매니저는 “현재 서버 오류 점검 중이니 기다려 달라”고 답했다.
끝까지 멈추지 않은 사기… “금감원에 적발됐다”
잠시 후 매니저가 다른 쇼핑몰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며 “재가입후 아이디를 알려달라”라고 말했다. A씨가 매니저가 알려준 사이트에 다시 회원 가입을 마치니 사라진 줄 알았던 583만원이 그곳에 남아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A씨는 자신이 또 다른 사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문제는 이번엔 바로 인출이 안 된다는 점이었다. 매니저는 며칠 뒤 정상 영업 시간 중에 만원 단위로 전액 출금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인출이 가능하다고 안내받은 날이 되자 A씨가 적립된 포인트를 인출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A씨는 매니저가 안내해준 경로로 '쇼핑몰 상담센터'와 카카오톡 상담을 진행했다. 당연히 상담센터도 사기범 일당이다.
상담센터에서는 금융감독원 공문처럼 위조한 가짜 문서를 전달했는데, A씨가 운 나쁘게 금감원 모니터링에 비정상적 소득으로 적발됐다는 내용이었다. 정확한 조사를 위해 인지세를 납부해야 하고, 금감원 조사에 불응하면 불이익은 A씨의 책임이라는 허위 내용이었다.
상담센터는 A씨가 세무조사를 받게 되는데, 미납 세금을 상담센터를 통해 납부하면 벌금은 면제된다고 A씨를 계속 속였다. A씨에게 적립된 포인트 583만원에 대한 세금 193만원을 납부하면, 수수료는 회사에서 보상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요약하면, A씨는 400만원이 넘는 자기 돈을 써서 사기범들이 지정한 물건을 사주고 포인트 180만원을 배당받았는데, 자기 돈을 더 들여서 포인트보다 많은 193만원의 '세금'을 사기범들에게 건네줘야 나머지 잔액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구매대행 사기로 이미 400만원이 넘는 돈을 A씨로부터 편취한 상태에서, 세금 운운하며 190여만원을 추가로 편취하려 한 셈이다. A씨는 돈을 보내지 않고 항의했지만, 일당은 이후 A씨와의 연락을 끊었다. 지난달 10일 처음 구직 광고 문자메시지를 받고 나서 열흘 만에 A씨는 처음부터 모든 게 사기였음을 깨달았다.
경찰, 유사 사건 확인 중… “범인 검거가 최우선”
A씨는 지난달 23일 인천서부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현재 전국 각 경찰서에는 A씨처럼 구매대행을 빙자한 보이스피싱 사기 사건이 수십건 이상 고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전국 각 경찰서에 접수된 사건을 검토하며 범행에 사용된 카카오톡 계정 또는 은행계좌 명의자를 확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구매대행 보이스피싱 사기로 피해 금액을 최대한 확보해 피해자들이 돌려받을 수 있게 하겠다”며 “다만 피의자를 검거한 뒤 그의 재산이 범죄 수익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하므로 현재로선 피의자 특정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실질적으로 사기 피해가 증빙된 사람에 한해서라도 정부가 채무상환 유예 등 구제책을 좀 마련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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