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러에 6900만원 주고 왔는데, 1억 빚"…오징어 어선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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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구했는데 배 세워둘 수도 없고
오징어를 찾아 러시아 해역으로 원정 조업을 떠났던 89t급 채낚기 어선이 지난달 12일 강원 속초시 청호동 속초위판장에 입항했다. 지난 7월 28일부터 두 달 넘게 잡은 오징어는 8.6t. 위판에 나선 선주 이모(73)와 선장, 선원들은 망연자실했다.
무게 8.5㎏, 오징어 25마리가 들어간 대 사이즈 한 상자가 10만6000원(490개), 35마리가 담긴 중간 상자 9만8700원(370개), 45마리 소 사이즈 상자 7만2800원(17개) 등에 거래됐다. 총금액은 9734만600원으로 1억원을 넘지 못했다.
이씨가 올해 러시아 어장에서 조업하기 위해 쓴 비용은 2억원이 넘는다. 러시아 해역에서 조업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입어료(入漁料) 6900만원, 기름값 9500만원, 부식비 등 잡비로 3000만원을 썼다. 여기에 아직 지급하지 못한 선장과 선원 7명 인건비까지 합치면 2억원이 훌쩍 넘는다.
이씨는 “동해안에서 오징어가 안 나오니 러시아 말고는 조업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며 “어렵게 선원을 구해 놓고 배를 세워둘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갔는데 빚만 1억원 가까이 더 늘어나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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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 장담 못 하자 러시아 원정 포기도 '속출'
직선거리로 약 500㎞ 떨어진 러시아 어장까지 갔는데 오징어를 잡지 못하자 어민들 한숨이 커지고 있다. 지난 19일 러시아 원정 조업에서 돌아온 99t급 채낚기 어선도 석 달 가까이 조업을 했지만 잡아 온 오징어는 16.6t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러시아 해역에서 잡은 건 12t. 나머지 4.6t은 지난 2일 러시아 해역에서 나와 한ㆍ일 중 간수역인 대화퇴어장에서 잡았다.
2001년부터 20년 넘게 러시아 원정 조업을 나선 선장 주모(69)씨는 “러시아 원정 조업에 나서면 많을 땐 80t, 적어도 30t은 넘게 잡았는데 이렇게 안 잡힌 건 처음”이라며 “러시아 어장 말고는 대체 어장이 없어 큰일”이라고 했다.
러시아 어장에서 잡히는 오징어 어획량은 매년 감소 추세다. 강원지역 어선이 2021년에 러시아 어장에서 잡은 오징어는 921t이다. 하지만 2020년엔 201t, 2019년엔 192t에 불과하다. 오징어가 많이 잡힐 때는 연간 3000t을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입어료는 꾸준히 올라 어민 부담은 커지고 있다. 2001년 t당 55달러였는데 2013년 처음으로 100달러가 넘더니 올해 115달러가 됐다. 러시아 원정 어선 수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2013년까지 100척이 넘었는데 2019년 70척, 2020년 65척, 2021년엔 58척만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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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어장 어획량도 매년 감소
특히 올해는 역대 최저인 33척이 원정 조업을 떠났다. 지역별로 보면 지난 7월 말부터 순차적으로 강원 어선 20척, 경북 어선 13척이 떠났다.
이처럼 올해 원정 어선이 급감한 건 러시아 측에서 2년 치 입어료를 요구해서다. 29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4월 해양수산부와 러시아 연방수산청이 ‘한·러 어업위원회 어업협상’ 화상회의를 열었는데 이 과정에서 러시아 측이 2년 치 입어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원정 조업이 취소됐는데 취소된 해의 입어료까지 요구한 것이다. 2021년 입어료가 2800만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 어민들은 2.5배에 달하는 6900만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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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t당 입어료 ‘55달러’ 현재 t당 ‘115달러’
오징어는 매년 잡을 수 있는 쿼터와 t당 입어료가 정해지면 원정 조업에 나선 어선이 똑같이 나눠 입어료를 낸다. 어선 수가 감소하면 어선마다 내야 하는 입어료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이 때문에 원정 어업을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오징어 채낚기 어선 선주 김모(72)씨는 “어획량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막연한 기대감만 갖고 러시아에 갈 수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강원특별자치도와 경북도 등은 급한 대로 올해 러시아 어장 입어 경비를 척당 36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적자 폭을 감당하기엔 부족한 실정이다. 강원도 환동해본부 관계자는 “러시아 어장에서 조업하는 어선이 안정적으로 어로 활동을 할 수 있게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징어 자원회복을 위해선 불법 공조 어업을 막고 금지 체장(길이)을 20㎝까지 올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조 어업은 트롤어선과 채낚기 어선이 함께 오징어를 잡는 것을 말한다. 해상에서 채낚기 어선이 집어등(集魚燈)을 이용해 오징어가 모여들게 만들면 트롤어선이 그물로 바닷속을 싹 훑어 잡는 불법 어로행위다. 이렇게 하면 현재 잡지 못하게 한 체장 15㎝ 이하 오징어까지 그물에 걸려 올라오기 때문에 오징어 씨를 말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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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 어업 없어지고, 금지체장 높여야
앞서 2021년 4월 경북 포항에서 오징어 싹쓸이 공조 어업을 주도한 59t급 트롤어선 선장 A씨(61)가 구속됐다. 당시 A씨는 오징어 152t을 트롤어선으로 불법 포획한 혐의를 받았다.
경북도 환동해본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불법 공조 어업을 하다 36건이 적발됐다. 불법 공조 어업을 하면 수산자원관리법 제64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김중진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해양수산부는 2016년 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오징어 금지체장을 12㎝로 정했고, 이후에도 자원이 계속 감소하자 2020년 다시 한번 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을 개정, 15㎝로 강화했다”며 “단계적으로 20㎝ 정도까지 높여야 자원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ㆍ영덕=박진호ㆍ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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