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축제' 주인공 실종…982t 몰려온 '이것' 동해 대표 됐다

박진호, 김정석 2023. 11.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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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이 2t 미만 문어배로 가득차 있는 모습. 어민이 줄면서 고성군 항구마다 '나 홀로 조업'이 가능한 문어배가 크게 늘었다. 박진호 기자

" “요즘은 오징어보다 문어가 더 많이 잡힙니다.” " 강원 고성군 거진항에서 1.59t급 어선으로 문어를 잡는 황광석(49) 거진연승협회장이 지난 1일 한 말이다. 황씨는 조업을 나갈 때마다 문어를 수십 ㎏가량 잡는다고 한다. 대문어가 잡히는 날에는 100㎏을 넘기기도 한다. 문어는 소문어(600g~4.9㎏)·중문어 (5~14.9㎏)·대문어(15~24.9㎏)·특대문어(25㎏ 이상)로 구분한다.

황씨는 “오징어보다 문어가 많이 잡히다 보니 문어배가 급격히 늘어 고성지역은 접안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고성 지역 항구는 접안 전쟁을 치를 정도"라고 말했다. 고성군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문어배가 100여척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350여척에 달한다고 한다.

오징어배는 상당수가 9.77t이다. 큰 배는 60t이 넘기도 한다. 반면 문어배는 나 홀로 조업이 가능한 2t 미만 소형어선이어서 중형어선보다 가격도 저렴하다. 문어배 장만하기가 한결 수월한 셈이다.

이에 따라 동해지방해양수산청은 고성군 대진항과 공현진항에 접안 시설을 확충했다. 지난 8월까지 124억원을 투입해 180m 규모 소형선 부두를 새로 만들고 월파 방지를 위해 645m 구간에 방파제를 보강했다.

강원 동해안에서 문어가 오징어보다 많이 잡히는 건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강원 동해안에서 잡힌 문어는 982t이다. 반면 오징어는 870t에 그쳤다. 특히 지난 7월에 문어가 174t 잡혔는데 오징어는 64t에 불과했다. 8월에도 문어는 104t, 오징어는 52t이 잡혔다.

2018년 강원 속초시 장사항에서 열린 오징어 맨손 잡기 축제에 참가한 피서객들이 행사장에 풀어놓은 오징어를 잡으려고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사진 속초시]


국내 근해 채낚기 '942척'에서 '404척' 급감


오징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589t보다 719t이나 줄었다. 3년 평균(2967t)으로 보면 2097t이나 감소했다. 오징어가 귀해지자 한때 오징어 위판 가격은 1두름(20마리)에 47만원까지 치솟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근해 채낚기 어선은 매년 감소 추세다. 1997년 942척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줄어 현재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404척이 남았다.

경북지역 오징어 어획량도 최근 10년 사이 13% 수준으로 줄었다. 2010년 6만6630t에서 2016년에는 4만4203t, 2017년에는 2만7427t으로 급감했다. 이어 2022년에는 9817t에 그쳤다. 여기에 더해 올해 상반기 어획량은 1355t에 불과하다. 지역에선 오징어는 더는 동해안을 대표하는 수산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한다.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 물양장에서 열린 제18회 주문진 오징어축제에서 맨손 오징어 잡기 이벤트가 열렸다. 연합뉴스


배 타고 나가봐야 적자 악순환 이어져


오징어 어획량이 크게 준 것은 수온 상승에 따라 어장이 북쪽으로 형성된 데다 북한 수역 남획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 바람에 오징엇값은 갈수록 오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오징어가 어획량 감소는 지역 주민 생활에도 변화를 몰고 왔다. 여름철마다 이색 체험행사로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 맨손잡기’ 행사가 자취를 감췄다.

2001년부터 강릉 주문진해수욕장에서 열리던 오징어축제는 2018년부터 오징어가 없어 맨손잡기를 방어와 광어 등 물고기로 대체했다. 더욱이 올해는 오징어가 없어 축제를 열지 못했다.

오징어가 잡히지 않는 데다 가격까지 크게 오르자 지난 7월 강원 속초시 동명동 속초항 오징어 난전 대부분이 문을 닫은 모습. 박진호 기자


서해안 오징어 사서 장사하는 동해안 식당


오징어를 구하지 못한 동해안 식당은 서해안에서 잡힌 오징어를 사다 쓴다. 충남 태안 앞바다에선 여름철이면 ‘오징어 황금어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오징어로 유명한 강원 속초항 오징어 난전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당시 오징어 20마리가 47만원(1마리 2만3500원)에 낙찰되자 상인들은 영업을 포기했다. 20곳 난전 중 5~6곳만이 어렵게 영업을 했는데 1마리에 2만5000원이나 하는 오징어 가격에 놀라 관광객이 발길을 돌리자 상당수 난전이 문을 닫았다.

30년 넘게 난전을 운영해 온 강미순(65·여)씨는 “오징어가 이렇게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건 30년 만에 처음 본다"라며 “파는 사람은 (사실상) 원가에 팔고 있는데 먹는 사람은 비싸다고 생각하고, 잡는 사람은 어획량이 적어 손해가 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성ㆍ울릉=박진호ㆍ김정석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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