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빈대엔 '맹물'...원액 담가도 안죽는 살충제 뿌리란 정부

정은혜 2023. 11. 3. 05: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 19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기숙사에서 방역업체 관계자와 기숙사 관리직원들이 빈대 박멸을 위해 기숙사 내부를 소독하고 있다. 뉴스1

최근 빈대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정부는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를 사용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하지만 이 살충제는 이미 지난 4월 국내 빈대가 내성을 갖고 있는 성분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31일 환경부·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교육부 등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빈대 대책을 논의했다.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 질병청은 환경부에 빈대 방제를 위한 살충제 목록을 요청했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퍼메트린'과 '델타메트린' 성분의 살충제 목록을 질병청에 전달했다. 질병청은 이를 바탕으로 빈대 대응 안내문을 각 부처에 전달했다.

퍼메트린과 델타메트린은 모두 피레스로이드 계통의 살충제다. 질병관리청은 '빈대 예방 정보집'에서 "서식처 틈새에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를 분무하라"고 안내했다.

질병관리청이 배포한 '빈대 정보집'에 담긴 화학적 방제 가이드라인.

하지만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는 이미 과거에 국내 연구진에 의해 빈대 방역 효과가 떨어진다고 밝혀진 물질이다. 서울대 연구진이 지난 4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21년 국내에서 발견된 '열대 빈대'는 강한 피레스로이드 살충제 저항성을 갖고 있다. 같은 연구진이 앞서 2020년에 발표한 논문에도 국내에서 발견된 빈대 대부분이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 저항성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연구를 진행한 이시혁 서울대 응용생물학과 교수는 "연구진이 추적한 거의 모든 빈대가 피레스로이드 계통의 살충제에 대해 2만 배에 달하는 강한 저항성(내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살충제 원액에 담갔다 빼도 죽지 않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빈대는 강한 신체적 고통과 정신 질환을 야기할 수 있는 해충"이라며 "빈대 추적 감시를 하고, 피레스로이드계가 아닌 다른 계통의 허가된 살충제 사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효과가 거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도 정부가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를 사용하라고 안내한 셈이다. 이에 대해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기존에 식약처가 허가한 빈대 살충제 목록에 따라 안내했다"고 답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살충제는 굉장히 보수적으로 다뤄야 하는 문제"라며 "허가된 것 외에 다른 살충제를 제시하는 것은 법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연구진은 환경부가 허가한 살충제 중에서 피레스로이드 계통이 아니면서 빈대 퇴치에 효과적인 살충제를 연구하고 있다. 이시혁 교수는 "빈대의 저항성 문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문제인데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집에서 '셀프 방역' 중이라는 서울 송파구 주민이 잡은 빈대. C씨는 "방역업체 이곳 저곳을 알아봤지만, 한번에 끝나지 않을 거라는 안내에 '셀프 방역'을 결심했다고 한다. 사진 C씨


살충제로도 박멸하기 어려운 빈대는 가정집에도 나타나고 있다. 스팀 다리미 등으로 '셀프 방역'을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강남구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구청에 빈대가 나타났다고 알렸지만 '관련 지침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며 "방역 업체는 100만원 넘는 비용을 써도 완전 박멸을 장담하지 못한다고 한다. 가정집은 셀프 방역밖에 답이 없는 것 같아 막막하다"고 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빈대는 감염병 매개체가 아니기 때문에 빈대 방역은 질병청 소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빈대 방역은 지자체의 몫이지만 가정집 방역까지는 지자체 소관 업무가 아니다"라고 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송다정 인턴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