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재선 땐 한·미 밀월…트럼프 돼도 한국 오히려 기회? 왜 [미 대선 D-1년②]

강태화 2023. 11.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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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이 내년 11월 제47대 미국 대통령 자리를 놓고 재격돌할 가능성이 커졌다. 2020년에 이은 리턴매치에서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그는 미국 역사상 두번째로 임기를 건너뛰어 당선된 대통령이 된다.

미국 역사상 낙선 후 임기를 건너 뛰어 중임에 성공한 인물은 22·24대 스티븐 그로버 클리블랜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극히 예외적이긴 상황이나 불가능한 건 아니란 얘기다.

신재민 기자


현재까지 판세는 백중세다. 중앙일보가 2일 전문가 7명에게 선거 결과를 물은 결과, 바이든 또는 트럼프의 미세한 우세를 전망한 이가 각각 2명씩으로 갈렸다. 나머지 3명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다만 7명 모두 “어떤 결과에도 즉시 대처할 ‘플랜B’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바이든 2기 또는 트럼프 2기에 대한 '동시 대비'를 당부한 이유는 과거 미국 정권의 변화를 잘못 예측했다가 낭패를 봤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1960년 대선에 이어 고향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패한 리처드 닉슨 전 부통령은 1966년 9월 한국을 방한했다. 그런데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그 사람은 이미 끝난 사람”이라며 그와의 만찬 회동을 거부했다. 닉슨 측은 급히 한국 장관들과의 만찬을 잡았지만, 만찬에 오기로 했던 장관들이 같은 시간 소집된 ‘청와대 만찬’에 불려가면서 재차 자존심을 구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8년 8월 22일 미국 성 프란시스 호텔에서 닉슨 대통령과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앙포토


상황은 2년 뒤인 1968년 닉슨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역전됐다. 닉슨은 곧장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가 한다”는 내용의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고, 실제로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시켰다. 정부는 외교라인을 총동원해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닉슨은 무응답으로 일관한 끝에 1969년 휴가 기간 미국의 한 호텔로 박 전 대통령을 부르는 수치를 안겼다.

이동원 당시 외무장관은 회고록『대통령을 그리며』에서 “닉슨의 한국 방문 1박 2일이 주한 미군의 첫 철수를 낳았고, 박 대통령에게 위기의식을 안겨 줘 ‘10월 유신’과 ‘핵개발’ 등 불안을 보전할 악수를 두게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인권 캠페인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외교가에선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이미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대미 동맹 외교가 대체로 안정적으로 지속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제는 바이든과 모든 지점에서 반대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체제가 들어서는 경우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외교’를 구사했다. 만약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과거 동맹을 경시했던 트럼프의 독주가 보다 거세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동맹을 경시했던 트럼프에게 직언을 했던 존 볼턴, 허버트 맥매스터, 제임스 매티스 등 핵심 참모들이 줄줄이 경질되면서 정부 내 견제 세력이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아이오와에서 열린 선거 캠페인에 참석한 모습. 트럼프 전 대통령의 뒤로 자신의 선거 캠페인 슬로건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문구가 보인다. 연합뉴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견제 세력이 적어진데다 바이든에 대한 ‘복수의 정치’ 차원에서 동맹 외교 등 바이든의 모든 것을 강하게 부정할 가능성이 있는 트럼프 2기에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트럼프의 독단적 결정에 그나마 영향을 줄 수 있는 ‘제2의 볼턴’을 비롯해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싱크탱크 등에 대한 강력한 네트워크를 미리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4년 전 트럼프의 당선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서 트럼프의 핵심 참모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 등의 정치적 지분과 위력을 파악하지 못한 채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가장 큰 우려는 남북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트럼프가 북한과 성급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라며 “안보 분야에서도 바이든식 동맹외교를 부정하고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워싱턴선언, 핵협의그룹(NCG) 등 확장억제 시스템과 주한미군 관련 사안까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딜’의 대상이나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4년 단임으로 임기를 마쳐야하는 트럼프 2기가 오히려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내년 11월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트럼프는 2026년 집권당에 통상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내왔던 중간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후 민주ㆍ공화 양당은 곧장 차기 대선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짧은 시간 내에 바이든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반도를 비롯해 대만과 중동 등에서 더 강한 군사적 대치 상황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가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 북한과의 담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긴장감을 의도적으로 고조시키면서 그 과정에서 전략핵 재배치 등 한반도의 핵균형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9년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운운하며 한국에 지존의 5배가 넘는 50억 달러의 방위비분담금(SMA)을 요구했지만, SMA는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인 2021년 합리적 수준에서 타결돼 일단 2025년까지는 적용된다. 트럼프가 집권하더라도 중간선거 이후 정치 상황에 따라 이번에도 협상이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공개 비난했지만, 윤석열 대통령과는 아직 만난 적이 없고 배짱이 좋은 윤 대통령의 성향을 보면 오히려 트럼프와 더 쉽게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관측도 적지 않다”며 “1기 때의 합리적 전략가들이 2기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점은 매우 우려되지만, 외교와 안보를 ‘돈’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트럼프 체제는 오히려 돈을 내고 필요한 전략 자산을 끌어오거나 잠재력을 키우는 등의 선택지를 넓힐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의 대통령 전용 숙소인 '아스펜' 앞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시에 바이든 2기 행정부가 들어서는 상황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변화의 핵심으로는 대중국 정책이 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민주당 2기 정부는 국제정세를 평화적으로 만들었고, 바이든 대통령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초청하려는 것도 기후 위기 등을 매개로 중국과의 공존을 모색해 이를 자신의 업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볼 여지가 있다”며 “한국 역시 이러한 변화 가능성과 관련 한ㆍ미 동맹과 한ㆍ미ㆍ일 삼각동맹에 더한 중국과의 선제적 관계 개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신재민 기자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도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 미국내 투자를 최우선으로 삼고 이후에 동맹과 경쟁 체제 순서로 우선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며 “특히 바이든 2기 체제에서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한 대미 투자를 보다 강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강화될 경우에 대비해 우리와 역할이 유사한 동류국가들과의 다각적 외교 지평을 확장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강태화ㆍ이승호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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