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주한미군, 동맹의 힘" vs 트럼프 "韓, 미국 車산업 파괴" [미 대선 D-1년②]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턴매치가 될 내년 미국 대선에서 두 사람은 모두 ‘미국’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데 두 사람이 생각하는 미국의 역할과 지향점은 완전히 다르다.
바이든 대통령의 선거 홈페이지엔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슬로건이 걸렸다. 민주주의 가치연대 동맹 체제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한 바이든 행정부의 철학이 담긴 말이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ㆍMake America Great Again)’다.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에 중심을 둔 트럼프 행정부의 키워드다.
대선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글로벌 수퍼파워 미국의 본질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의 상시적 위협 속에 미국을 유일한 동맹국으로 둔 한국의 입장에선 외교ㆍ안보ㆍ군사ㆍ경제 등 전 영역에 걸친 전면적 전략 수정을 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주한미군은 동맹의 힘” vs “韓, 안보 무임승차”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메모리얼데이(현충일) 기념식에서 주한미군을 언급하며 “미군은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기대치를 구현해왔고, 우리가 자유의 횃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바이든 행정부는 4월 워싱턴선언을 통해 핵협의그룹(NCG)를 구성해 동맹인 한국을 핵무기의 공동기획과 실행에 참여시키며 전략적 안보동맹의 기틀을 잡은데 이어, 8월엔 한ㆍ미ㆍ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거치며 위협에 함께 대응하는 안보동맹 체제를 완성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한ㆍ미ㆍ일 삼각동맹은 군사 분야를 넘어 경제협력 등 전분야를 아우르는 핵심축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안보는 돈이 드는 ‘비용의 문제’다. 트럼프는 재임 시절 “동맹국들이 적들보다 우리를 훨씬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이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며 기존보다 5배 이상 늘린 50억 달러(6조원)의 방위비분담금을 요구했다. 돈을 더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공개한 사전 공약 성격의 ‘어젠다47’에도 돈의 논리가 적용돼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대해 “미국은 2000억 달러를 썼고, 유럽에 배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만 방어’ 공약에 대해서도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2일 통화에서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방위비뿐 아니라 확장억제력, 군사 훈련, 대만 상황 등 모든 이슈에 대해 바이든과 반대로 할 가능성이 있다”며 “심지어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압박의 고리로 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실제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지난 9월 공개한 ‘프로젝트 2025’ 보고서에도 북한의 위협과 관련 “한국이 방어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돼 있다.
‘전략적 인내’ vs “김정은은 내 친구”
만약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동맹국과 함께 북한을 철저히 압박해 장기적인 ‘항복’을 받아내는 방식의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전략이 폐기될 가능성도 있다. 집단적 동맹체제를 앞세워온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개별국과의 ‘1대 1 담판’을 선호한다. 재임 시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3차례 직접 만났던 것도 이 때문이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지난달 30일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북ㆍ미 관계에는 ‘해프닝’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다시 만나자고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협상의 달인’을 자처했던 트럼프는 김정은을 ‘내 친구(My friend)’라고 호칭하며 협상 타결을 자신했지만, 협상은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을 통해 실패로 결론났다. 특히 그의 섣부른 대북접근은 북한이 서방과는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고 중ㆍ러 등 우방과 강하게 결집하며 핵ㆍ미사일 기술을 급속히 고도화하는 등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킨 계기가 됐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트럼프식 ‘톱다운’ 방식의 대북협상이 진행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며 “트럼프는 북한의 핵을 사실상 인정해주면서 미국을 공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폐기하는 방식을 가장 빠르고 현실성 있는 ‘좋은 딜’로 오판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경제안보 동맹” vs “‘눈에는 눈’ 보복”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대만 등 동맹국을 중국을 겨냥한 공급망 경쟁의 핵심 파트너로 활용했다. 한국은 미국의 5㎚ 이하 첨단 반도체 내재화에 동참했고 칩4(chip4)동맹, 경제프레임워크(IPEF)에도 1순위로 가입했다.
지난해 5월 바이든 대통령이 첫 방한 때 첫 일정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것 자체가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경제안보 분야의 역할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꼽힌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 역시 경제에서는 트럼프 못지 않은 자국우선주의 노선을 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지형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바이든이 동맹외교, 동맹경제를 강조했지만 전기차 업계에 부담을 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에서 보듯 상당한 자국우선주의 정책을 펼쳤다”며 “다만 강도와 방식 등에서 예상 범위를 넘었던 트럼프와 비교하면 그나마 예측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트럼프 당선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트럼프 1기’를 넘는, 한층 강력한 자국 최우선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일본과 한국 수입품의 홍수로 파괴됐다”며 사실상 한국을 자국 제조업의 적(敵)으로 표현했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겨냥해 “가장 끔찍한 협정”이라며 FTA 재개정을 최대 치적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는 이어 “인도, 중국, 또는 다른 나라가 100%, 200% 관세로 우리를 때리면 우리도 똑같은 관세로 때리겠다”며 스스로 “눈에는 눈 법(法)”으로 명명한 ‘트럼프 상호호혜무역법’을 경제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는 이 법을 통해 “미국을 제조업 초강대국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제조업은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의 핵심이자 근간으로 꼽히는 분야다.
‘공통의 적’ 중국에도 ‘관리’ vs ‘대결’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중국과의 경쟁구도는 크게 변화될 가능성이 적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여기서도 강도와 방식의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워싱턴을 방문한 왕이(王毅)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 장관을 만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미ㆍ중은 경쟁 관계를 책임있게 관리하고 열린 소통 채널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경쟁하더라도 ‘룰에 의해 관리되는 경쟁 구도’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리를 중국과 다른 외국에 완전히 의존하게 만든 것은 세계주의자 계급(민주당)”이라며 “미국 내 모든 중요 인프라 시설에 대한 중국의 소유를 금지시키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대해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중국에 대해선 민주ㆍ공화당 모두 이해관계가 일치되기 때문에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강경한 입장이 지속될 것”이라며 “다만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경제 분야는 물론 대중국 군사 전략의 비중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특히 한국의 안보와도 직결된 대만 관련 갈등이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강태화ㆍ이승호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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