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걸어놓고 "내가 안했다"…중소건설사 울린 이상한 원고
대형 건설사의 고약한 ‘갑질’ 중 하나는 ‘소송을 통한 하도급 업체 후려치기’다. 방법은 이렇다. 대형 건설사가 하도급업체인 중소건설사에 줘야 할 공사비 등을 제대로 주지 않고 법원 판결에 따라 주겠다며 소송을 한다. 소송이 걸리면 자금 여력이 없는 중소업체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 기간을 버틸 재간이 없다. 주로 대형 로펌을 쓰는 대형 건설사에 법률적으로 대항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형건설사에 ‘합의’를 요청하고 대형건설사의 ‘뜻대로’ 정산한다.
특히 요즘처럼 인건비,자제비 등이 크게 올라 중소건설사가 “공사비를 더 달라”고 할 경우 대형 건설사는 이런 소송을 많이 한다. 그나마 건설업계의 ‘맏형’격인 현대건설은 중소업체를 상대로 이런 소송을 안 벌이는 업체로 꼽혔는데, 최근 현대건설 역시 ‘부적절한 소송’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법은 하나자산신탁(원고)이 경기 광주 태전7지구의 기반시설 조성 비용 중 158억원을 중소사업자 11명(피고)이 부담하라며 낸 소송에 대해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모두 원고가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원고의 주장을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결이다.
이렇게 크게 지는 소송을 벌인 원고는 하나자산신탁이지만 하나자산신탁은 말 그대로 사업을 맡아서 하는 회사이고 실질적인 원고는 태전건설이라는 시행사다. 하나자산신탁 측은 “신탁회사는 소송과 관련해서 이름만 빌려줬을 뿐이고 변호사 선임 등 소송과 관련한 모든 일은 위탁사측에서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식적인 위탁사인 태전건설 또한 자신들이 소송을 벌인 건 아니라고 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태전건설의 배후에 이 프로젝트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건설은 이 공사를 하면서 공식적으로 800억원의 손실을 봤는데, 손실의 일부라도 만회하기 위해 소송 자격이 있는 태전건설을 움직여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신탁회사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이 업계의 큰 손님이고, 해당 소송은 현대건설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졸지에 민사소송의 피고가 된 중소사업자 중 일부는 회사 운영자금을 가압류당하는 등의 피해를 보고 있다. 피고 중 하나인 모 중소시행사의 경우 29억원을 가압류당해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못하고 있다. 특히 미래에 생길 이익 등에 대해 가압류를 건 게 아니라 회사가 수시로 쓰고 있는 주거래은행 통장에 대해 가압류를 걸어 해당 중소업체의 피해는 더 크다. 가압류는 원고 측이 5억8000만원을 현금으로 공탁함에 따라 이뤄진 것인데, 공탁금을 마련한 주체 또한 현대건설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건설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이 중소시행사를 소송으로 압박한 후 ‘합의’를 통해 일부 이득을 취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본다. 또 법조계 일부에서는 현대건설이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소송 남용’이나 ‘권한 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측은 “법률적으로 이 소송에 관여할 수도 없고, 실제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수의 관계자들은 분명히 현대건설이 실질적인 소송 당사자라고 얘기해 ‘거짓말’논란도 일고 있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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