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배우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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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터지는 마약 스캔들로 올해도 연예계는 시끄럽다.
그러잖아도 어려운 한국 영화계에서 주연급 배우의 활동이 잇따라 멈추고 찍어 둔 작품들의 개봉이 기한 없이 미뤄진 상황이니 설상가상이란 말이 떠오른다.
다만 영화나 드라마는 보는 사람들이 작품 속 인물에 몰입하면서 얻는 카타르시스나 위로가 생각보다 크다.
지난봄 인터뷰 때 이선균은 배우로서의 목표에 대해 "운 좋게 좋은 작품들을 만나서 감사할 뿐이다.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게 내 욕심"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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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터지는 마약 스캔들로 올해도 연예계는 시끄럽다. 그러잖아도 어려운 한국 영화계에서 주연급 배우의 활동이 잇따라 멈추고 찍어 둔 작품들의 개봉이 기한 없이 미뤄진 상황이니 설상가상이란 말이 떠오른다. 산업적으로는 돈이 묶이고, 이제 막 날개를 단 K엔터테인먼트 전성기에 이미지 추락을 걱정하는 소리들이 나온다.
당연한 비판과 우려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을 지켜보는 마음이 조금 다르다. 마약 혐의를 받는 당사자가 ‘후계동 사는 박동훈’이라서 그렇다. 후계동 사는 박동훈이 누구냐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이다. 여러 산업적인 분석을 차치하고 대중이 체감하는 건 ‘믿고 보는 배우’에 대한 실망과 당혹, 힘들 때마다 돌려보던 ‘인생 드라마’에 묻은 얼룩에서 오는 우울감이다.
방영 당시 국내에서 시작된 ‘나의 아저씨’의 인기는 종영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해외까지 이어졌다.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 등이 드라마를 극찬하며 K콘텐츠 열풍에 힘을 보탰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드라마를 감명 깊게 보고 여주인공 아이유를 자신의 영화 ‘브로커’에 캐스팅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찰 포토라인에 선 연예인의 모습을 보고 이토록 착잡한 심정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어쩔 수 없이 써야 할 기사를 쓰면서 계속 속이 쓰렸다. 속상한 마음에 드라마 클립을 다시 돌려보고 돌려봤다. 여전히 좋은 이 드라마를, 여전히 어딘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이 캐릭터를 보면서 불미스러운 사건을 떠올리게 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예인의 분야에 따라 잘못과 책임에 경중이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돈스파이크나 지드래곤의 음악을 좋아하던 팬들에게도 마약 스캔들은 큰 충격이었을 거다. 다만 영화나 드라마는 보는 사람들이 작품 속 인물에 몰입하면서 얻는 카타르시스나 위로가 생각보다 크다. 몰입이 강할수록 대중은 작품 속 인물과 배우를 동일시하게 된다. 대중의 심리적 타격이 큰 건 이 때문이다.
박동훈은 어디서도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삶이 팍팍하고 때로는 비참하지만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에서 가족, 친구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소시민이다. 자신의 삶이 시궁창 같다고 여기던 사무실 인턴 지안(아이유)에게 좋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세상은 버텨볼 만하다는 걸 알려준 ‘어른’이다. 사람들은 찬바람이 불어오면 더욱 이 드라마를 떠올렸다.
지난봄 인터뷰 때 이선균은 배우로서의 목표에 대해 “운 좋게 좋은 작품들을 만나서 감사할 뿐이다.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게 내 욕심”이라고 했다. 그다음 인터뷰에선 “시기마다 중요한 작품들이 있었는데 최근작 가운데 ‘나의 아저씨’는 40대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나한테 너무 큰 걸 준 작품”이라고 했다. 연기에 대한 그의 욕심과 좋은 운때를 만난 것에 대한 감사가 거짓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앞으로 보여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더욱 지켜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기란 한순간 치솟았다가 사그라들기 마련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대중은 자신이 사랑한 스타가 화려하게 뜬 모습만큼 아름답게 지는 모습을 기대하고, 또 거기서 위안을 얻는다.
어떤 이는 서구권에선 마약 스캔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고 했고, 어떤 이는 한류 밥상 잘 차려놓고 스스로 걷어찼다고 했다. 이번 논란에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건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드라마의 팬들은 후계동에 안녕을 고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올해는 겨울바람이 더 스산하게 느껴질 것 같다.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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