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스웨터의 계절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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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계절 지표'가 있다.
이응이의 귀 끝이 차갑거나 보일러 열선이 지나가는 따뜻한 자리에 자주 눕는다면 바야흐로 '스웨터의 계절'이 온 것이다.
나는 옷장 안쪽에서 스웨터를 꺼낸다.
마름모꼴의 노르딕 스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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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계절 지표’가 있다. 바로 반려묘 이응이다. 이응이의 귀 끝이 차갑거나 보일러 열선이 지나가는 따뜻한 자리에 자주 눕는다면 바야흐로 ‘스웨터의 계절’이 온 것이다. 나는 옷장 안쪽에서 스웨터를 꺼낸다. 마름모꼴의 노르딕 스웨터. 오래 입어서 보풀이 일었지만 나는 이 스웨터를 아낀다. 어릴 적 엄마가 떠준 스웨터와 디자인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팔뚝은 품이 넉넉하고 소매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항아리 모양의 자줏빛 스웨터. 나는 그 스웨터를 좋아하지 않았다. 꽃무늬 자수도 촌스럽게 보였다. 변변한 외투가 없어 초겨울 내내 교복 위에 그 스웨터를 입고 다녔는데, 어느 날 수학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스웨터 참 예쁘다. 어디서 샀니?” 엄마가 직접 떠주셨다고 하니까 선생님은 어머니 솜씨가 좋다며 감탄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 솜씨를 얕잡아 보았나 보다.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평범한 스웨터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근사한 옷으로 바뀌었다.
몇 해가 지나 엄마가 옷장을 정리하면서 그 스웨터를 꺼냈다. 작아서 못 입는 스웨터의 털실을 재활용하려는 이유에서다. 엄마는 스웨터 밑단을 풀어 마분지 조각에 실을 감았고, 나는 양손으로 스웨터를 잡아당겼다. 올이 줄줄 풀리면서 스웨터가 점점 짧아졌다. 달걀만 하던 실뭉치가 두툼해져서 이내 양손으로 쥐고도 남았다. 올 풀린 털실은 라면처럼 구불구불했다. 볕을 받은 털실 먼지가 마법 가루처럼 밝게 반짝였다.
그 기억은 어머니가 내게 써준 동화 같았다. 어머니는 손재주가 좋았다. 목둘레를 재고, 등에 스웨터를 대가며 눈짐작으로만 스웨터를 완성했다. 이제 어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다. 가끔 마음이 가난해지면 나는 그때를 떠올린다. 때때로 삶이 구겨진 마분지 조각처럼 초라하게 여겨질 때 당신에게 포근하게 사랑받았던 기억의 힘으로 다시 살아가기 때문이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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