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빈대와 참빗의 귀환
경북 경산에서 아동 26명이 집단 사망한 일이 있었다. 1956년의 일인데, 괴질에 놀란 국회에서 조사단을 지역에 파견했더니 결과가 엉뚱했다. 집단 사망사고의 원인이 농약이어서다. 살충제 ‘파라티온’은 약 3000배는 희석해야 안전할 정도로 독성이 강한데, 이를 진한 농도로 가정에 뿌려 아이들이 농약 중독으로 사망한 게 일의 전말이었다. 『구충록』을 쓴 보건의료사 연구자 정준호 박사는 논문을 통해 이 사건이 국내에 농약관리법이 도입된 직접적인 계기임을 설명한다. 비유하자면 1950년대 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왜 가정에서 그런 독한 살충제를 썼을까. 일차적으론 살충제의 독성을 간과해서겠으나, 당시 가정에서는 빈대와 벼룩, 이(蝨) 같은 해충을 방제하기 위해서 살충제를 분무하는 게 정상적 일상이었다. 살충제인 DDT를 쌀독에 뿌려 바구미를 잡고, 속옷에 뿌려서 이를 잡던 시절이다. 그러다 DDT에 내성을 가진 해충이 나오니, 확실히 박멸하려 파라티온 같은 독한 살충제를 쓰는 것도 이상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가 낳은 비극이었다.
박멸에 성공했던 머릿니가 돌아온 건 DDT 금지로부터 20년여가 지난 1980년대 후반이다. 심각성을 깨달은 보건사회부는 관리 기생충에 머릿니를 추가했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는 매년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연간 2만 명대의 주기적 유행이 되풀이되다, 최근 들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빈대는 사정이 좀 나았지만, 2006년부터 간헐적 유행이 보고되더니, 최근 들어 서울과 인천,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빈대 피해 경험담이 속출하고 있다. 옛 해충들의 귀환이다.
엄밀하겐 해충이 귀환했단 말은 틀렸다. 국가의 방제 작업에서도 산간벽지나 섬 지역은 곧잘 소외되었기에, 이들 지역에는 여전히 해충이 남아있었다. 1991년 보건사회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대도시 학생들은 머릿니 감염률이 3.4%였지만, 농촌 지역은 8.2%로 2배 이상 높았다. 특히나 제주 지역 초등학생 중 57.4%가 머릿니에 감염된 상태였다는 결과를 보면, 보건위생사업에서 어느 지역이 소외되었던지가 훤히 보인다. 결과적으론 국가가 홀대했던 이들에게 고통을 주던 벌레들이 늦게야 도시로 귀환한 것이다.
최근 빈대의 유행도 그리 다르지 않다. 세계의 변방에 남아있던 해충들이 유럽과 미국에 터를 잡았다, 재차 우리나라까지 번져왔다. 나이지리아와 콩고 지역의 오랜 풍토병이던 원숭이두창이 세계로 번진 것과 정확히 같은 구조다. 공중보건 분야의 국제공조가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 입장에서도 꼭 필요한 이유다. 마침 한국은 내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 집행이사국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박멸했던 빈대가 다시 돌아온 경험을 잘 곱씹으며 일해주길 바란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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