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라이프톡] 빈대의 돌연변인 '수퍼버그' 되다

오병상 2023. 11. 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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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전세계에 파견된 미군들이 빈대와 이를 박멸하기위해 DDT를 많이 사용하였다. 당시만 해도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이 안 알려져 사람 몸에 직접 뿌렸다. 자료사진

현대그룹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이 들려준 독특한 일화는 '빈대 이야기'다.
공사장 막노동하던 젊은 시절 빈대 소굴인 숙소 대신 구내식당 테이블 위에서 잠을 청했다. 한밤중 가려워 보니 빈대가 천장으로 기어올라가 자신의 몸을 겨냥해 떨어졌다. 이를 보고 '빈대도 살려고 이렇게 노력하는데'라는 생각에 더욱 분투노력한 결과 성공했다고 한다.
다소 황당하지만 정주영은 '빈대 이야기'에 진심이었다. '빈대만도 못한 놈'은 그가 구사하는 극강 모멸감의 표현이었다.
빈대가 40년만에 돌아왔다. 프랑스 파리 지하철을 점령한 빈대 뉴스가 황당했는데 어느새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빈대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살기에 인간과 숙명적 생존투쟁을 벌여왔다. 2차 대전 이후 인간은 '기적의 살충제' DDT를 개발해 빈대를 거의 멸종시켰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화학물질은 환경파괴범이었다. 인간에게도 치명적이었다. 1970년대에 대부분 국가에서 사용금지됐다.
이후 수십년간 빈대는 살충제를 견뎌내는 돌연변이를 했다. 외골격 (껍질)을 두껍게 만들어 독성물질의 침투를 최소화하고, 체내로 들어온 독성의 확산을 차단하고, 나아가 해독하는 효소까지 장착했다.
그 사이 인간은 빈대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빈대의 천적 바퀴벌레를 박멸해주고, 지구온난화로 빈대가 좋아하는 기온을 만들었고, 해외관광에 열광하면서 전세계로 빈대를 실어날랐다.
빈대가 DNA를 바꾸는 환골탈태의 분투노력으로 인간과의 생존투쟁에서 승리한 꼴이다. 정주영이 저승에서 '빈대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꾸짖는 듯하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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