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마켓 나우] 병든 독일, 새로운 ‘어젠다’가 필요하다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이 고전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에 따르면 올해 독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5%로 서방 선진 7개국(G7) 중 꼴찌다. 단기적·중장기적 원인이 겹쳤다. 제조업 강국 독일의 최대 교역상대국인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예상보다 적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값싼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끊겼다. 제조업체의 원가 부담이 전쟁 전보다 최소 두 배 정도 커졌다.
여기에 노동력 부족이 독일을 옥죄고 있다. 독일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 중 1957~69년 출생자가 앞으로 15년 이내에 퇴직하지만, 출산율 하락으로 2035년까지 700만 명의 노동력이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 연립정부는 6월 고급·숙련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했다. 그런데 극우 독일대안당(AfD)은 이민 통제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세력을 키우더니 7월에는 지지도 2위 정당으로 부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8월 독일을 ‘유럽의 새로운 병자’로 규정했다. 이 매체는 1999년 6월 독일을 ‘유로(euro)의 병자’로 부른 바 있다. 독일이 1997년 흡수 통일에 따른 후유증으로 고실업·저성장에 시달릴 때였다. 독일 경제가 건강을 회복한 것은 2003년 시행된 ‘어젠다 2010’의 성공 덕분이었다.
당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주요 세력기반인 노동조합과 당내 급진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복지 삭감과 노동시장 유연화 개혁을 감행했다. 퇴직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상향 조정했고, 실업급여 수급 기간도 이전의 32개월에서 55세 이하는 12개월로 줄였다. 2005년 가을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전임자의 개혁 덕분에 경제 재도약의 과실을 톡톡히 누렸다. 2005~19년 기간 독일 경제는 총 24% 성장해 영국(22%)이나 프랑스(18%)를 앞섰다.
현재 독일을 움직이는 것은 중도좌파 사민당과 녹색당, 중도우파 자유민주당으로 구성된 3당 연립정부다. 2025년 가을 선거에서도 3당 연정이 성립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도우파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자민당, 중도좌파 녹색당의 연정이 유력하다.
전문가들은 이제 독일에 ‘어젠다 2030’이 필요하다고 본다.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중장기적 원인을 제거하고 경제체질을 확 바꾸는 구조개혁을 실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도 ‘어젠다 2030’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국이 ‘어젠다 2030’을 채택하고 성공한다면 후세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 ‘한국과 독일은 이념이 다른 정당들이 국가적 의제를 합의하고 실천하면 병든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중요 성공사례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교수(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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