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식? NO!…맞춤형 건강 식단, ‘메디푸드’를 아십니까 [스페셜리포트]
장면 1. 최근 경기도 하남에 문을 연 메디컬오스위트요양병원. 55실 전체를 1인실로 꾸민, 업계 내에서는 실험적인 공간이다. 스위트라는 이름을 달았듯 방마다 대형병원 VIP실이나 호텔을 연상케 고급스럽게 꾸며놨다. 이 병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공들인 식단이다. 메디푸드 전문 업체 ‘메디쏠라’가 참여해 환자별 질환 맞춤 식단을 제공한다.
이돈구 메디쏠라 대표는 “질환 맞춤식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고시하고 규정하는 특수의료용도식품으로 당뇨질환자용, 신장질환자용, 암환자용 식단형 식품을 모두 포함한다”면서 “사구체 여과율 단계가 높아 혈액 투석을 진행하는 고객은 평소 인 함량이 높은 크림소스나 칼륨, 염분이 높은 토마토소스는 제한하는 대신 양식당에서나 즐길 수 있는 ‘슈림프 로제파스타’를 제공하는 식”이라고 소개했다.
장면 2. 1만9000여명 직원이 근무하는 LG디스플레이 파주 사업장은 직원 복지, 건강 증진 차원에서 최근 메디푸드 식단 체험자를 선착순으로 모집했다. 식품 전문 회사 아워홈이 개발한 ‘캘리스랩’을 통해서다. 건강 진단과 전문가와의 일대일 상담을 통해 고객 상태에 맞춘 식단을 최소 1일에서 최장 4주간 제공하는 방식이다. 첨가물과 가공식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기능성 소재, 저염소금, 불포화지방산유 등 선별된 재료를 쓴다는 게 특징이다. 회사 측은 “250명을 선착순 모집했는데 순식간에 지원자가 찼다”고 소개했다. 메디푸드 식단은 한 끼가 1만1000원대로 일반 구내식당 가격(7000원대 내외)에 비해 높다. 그럼에도 호응이 뜨거워 아워홈 측은 조만간 체험을 넘어 ‘캘리스랩’ 지점을 공장 내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메디푸드가 점차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예전만 해도 병원식, 환자식 정도 의미로 썼던 메디푸드가 일반인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최근에는 ‘맞춤 식단’ 개념으로 진화하는 양상이다. ‘메디푸드’라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메디푸드가 뭐길래
‘메디푸드’ 용어 정리부터 해보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메디푸드를 ‘특수의료용도식품’으로 정의한다. ‘정상적으로 섭취, 소화, 흡수, 대사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되거나 질병, 수술 등의 임상적 상태로 일반인과 생리적으로 다른 영양 요구량을 가진 사람의 식사를 대신할 목적으로 제조 가공된 식품’을 의미한다.
2020년 11월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메디푸드 식품 유형은 표준형, 맞춤형, 식단형 제품으로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더해 식품을 가려 섭취해야 하는 만성질환자가 영양 성분 섭취량에 대한 걱정 없이 가정에서 간편하게 준비해 식사할 수 있도록 하는 식단형 식사관리식품 유형도 메디푸드로 인정하기로 했다.
식약처 고시에 따르면 ‘식단형 식사관리식품은 질환별 영양 요구에 적합하게 제조된 것으로서, 조리된 식품이거나 조리된 식품을 조합해 도시락 또는 식단 형태로 구성한 것, 소비자가 직접 조리해 섭취하도록 손질된 식재료를 조합해 조리법과 함께 동봉한 것 또는 조리된 식품과 손질된 식재료를 조합해 제조한 것을 말한다’로 규정돼 있다.
예를 들어 식품 회사가 영양사 등 전문가와 함께 온오프라인 상담 후 만성질환자에게 맞춤형 식단을 메디푸드라는 이름으로 HMR 형태의 냉동, 냉장 배달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사업성은 있을까.
업계는 대외 환경이 메디푸드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건강관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 이돈구 대표는 “중환자나 만성질환자를 위한 의료 서비스 외에 일반인도 평균 수명 증가와 인구 고령화로 건강한 삶을 위한 식단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분위기가 관련 산업 성장의 주요 이유”라며 “더불어 젊은 세대에서도 만성질환자가 증가하며 수요층이 확대되다 보니 관련 규제가 신설되거나 완화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품 회사 입장에서 시장 내 접근성이 좋아진 점도 관련 시장 성장 기대감을 북돋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메디푸드(특수의료용도식품), 미국에서는 메디컬푸드, 유럽에서는 FSMP로 불리는 메디푸드. 메디푸드는 의약품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닌 일반 식품으로 규정된 만큼 약국, 마트, 온라인 등 다양한 채널에서 구매할 수 있다. 식품 제조사와 유통사가 이 시장을 신성장동력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고령화도 무시할 수 없다. 또 다른 메디푸드 업체 잇마플의 김현지 대표는 “노인 인구가 6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한국은 인구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다. 고령층 구매력도 나쁘지 않아 본인 건강관리를 위해서라도 메디푸드를 적극 소비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부도 시장을 키우고 싶어 한다. 2019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식약처, 해수부가 선정한 5대 유망 식품으로 메디푸드를 선정하고 시장 육성 계획을 수립하는 등 체계적인 시장 조성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관련 시장은 뚜렷한 성장세를 구가한다.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메디푸드 출하량은 2020년 4만3998t에서 2021년 4만7715t으로 전년 대비 8.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출하액은 1076억원에서 1535억원으로 42.7% 급증했다. 참고로 2021년에는 환자용 식품 출하량이 전체 출하량의 99.9%를 차지했다.
시야를 해외로 넓히면 시장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2021년 세계 메디푸드 시장 규모는 78억달러(약 10조3000억원) 규모로 파악된다. 전년 대비 4.1% 증가한 수치다. 통계가 잡히기 시작한 2017년 67억달러(약 8조8000억원) 대비해서는 16.3% 늘어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메디푸드 시장이 대사증후군과 만성질환자 증가와 함께 2017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7.95%의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메디푸드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유통 기업들은 기민하게 대응한다. 식품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메디푸드 유행’ 흐름에 올라타는 분위기다.
식품 대기업 중에서는 현대그린푸드와 대상웰라이프, 아워홈이 두각을 드러낸다.
현대그린푸드는 2022년 당뇨 식단과 암환자 식단을 선보이며 메디푸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건강식을 판매하는 자체 브랜드 ‘그리팅’을 통해 판매한다. 소비자가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는 식단을 구독하는 방식이다. 올해 들어서는 당뇨·암환자·신장질환 식단을 아우르는 그리팅 ‘질환 맞춤 식단’ 카테고리를 신설했다. 초기 36종이던 식단 수는 117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4월 메디푸드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현대그린푸드의 메디푸드 관련 매출은 매 분기 20% 이상 성장 중이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단체급식 사업을 영위하며 쌓은 노하우 덕분에 사업이 빠르게 성장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린푸드는 현재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위한 식단 외에도 질병 예방을 원하는 소비자를 위한 상품까지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다.
대상웰라이프는 환자용 식품 브랜드 ‘뉴케어’를 내세워 메디푸드 시장에 진출했다. 뉴케어는 종이팩에 담긴 음료 형태 균형 영양식이 주력이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암 투병 중인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암 ▲당뇨 ▲장질환 ▲신장질환 등 다양한 질환별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의 환자용 식품 기업 뉴트리와 MOU를 체결하고 환자용 식품 개발 전반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했다. 뉴케어는 메디푸드 유행이 시작된 2020년부터 매출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2022년 ‘뉴케어’ 매출액은 2021년 대비 51% 성장했다. 특히 뉴케어 제품군 중 환자용 식품 품목은 최근 3년간(2019~2022년) 연평균 성장률이 52.6%에 달한다. 대상웰라이프 관계자는 “뉴케어는 9년 동안 환자용 식품 국내 판매 1위를 지켜왔다. 가장 인기가 많은 뉴케어 ‘구수한 맛’은 1초에 2팩씩 팔리는 스테디셀러”라고 귀띔했다.
아워홈도 최근 ‘캘리스랩’을 통해 메디푸드 시장에 진출했다. 병원 급식 사업에서 갈고닦은 경쟁력을 토대로, 메디푸드 시장에 뛰어들 예정이다. 아워홈은 지난해 4월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이 시행하는 ‘소화기암 환자의 수술 후 영양 충족, 소화 증진이 가능한 암환자용 메디푸드 산업화’ 연구과제 주관 기관으로 선정돼 연구개발 중이다.
연구개발은 ▲암환자용 메디푸드 식단·제품 개발 ▲암환자에게 부족하기 쉬운 미량 영양소 전달을 위한 효율적 전달체 개발 ▲암환자용 메디푸드 임상시험 ▲메디푸드 산업화 순으로 진행되며, 연구 기간은 2025년 12월 31일까지다. 아워홈 관계자는 “현장에서 고객 목소리를 들어보면 ‘식단의 다양성 부족’으로 인해 건강관리 식단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맛과 건강을 챙기는 메디푸드에 대한 수요가 많다. 소비자 요구에 맞춰 단순 저염, 저당, 저칼로리 등 일반 건강 식단이 아닌 맛과 양, 영양소 등 밸런스 완성도가 높고 다채로운 메뉴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풀무원식품은 2022년 개인 맞춤형 식단 사업 플랫폼인 디자인밀을 공개하며 식단형 메디푸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디자인밀의 풀스케어를 통해 연화식(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행위가 곤란할 때 먹는 음식)과 연하식(식도로 삼키기 어려울 때 먹는 음식) 등 다양한 식단을 판매 중이다.
대기업 외에 중견·스타트업의 진출도 활발하다. 메디쏠라, 잇마플 등이 대표 주자다.
영양 식단 정기배송 서비스 업체 메디쏠라는 라인업을 2개로 나눴다. 현재 건강할 때부터 시작하는 프리케어 솔루션(건강 케어식)과 건강이 걱정될 때 관리하는 메디푸드 솔루션(질환 케어식, 질환 맞춤식·특수의료용도식품)으로 구분해 총 10가지 상품을 판매한다. 질환 맞춤식은 당뇨질환자용, 신장질환자용, 암환자용 식단형 식품으로 품목을 나눴다. 현재는 고혈압환자용 식단형 식품에 대한 식단 개발을 진행 중에 있다. 이돈구 대표는 “식단 관리가 중요한 당뇨환자용 식단의 인기가 가장 높다. 이어 신장질환용, 암환자용 순으로 판매가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스타트업 잇마플은 ‘신장환자용 식단’에 초점을 맞췄다. 신장환자용 밀키트, 냉동 도시락, 레토르트(즉석식품) 등이 주력이다. 현재 가장 인기가 많은 상품은 1:1 맞춤형 정기구독 식단이다. 식단을 구독하는 인원만 월 2000명에 달한다고. 김현지 대표는 “잇마플을 시작할 때, 신장환자용 식단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존재하지 않았다. 신장환자 식단 시장 틈새를 파고들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메디푸드 시장이 현재보다 더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유는 3가지다. 고령화와 젊은 만성질환자 증가, 그리고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도 상승이다.
메디푸드 주요 소비자는 당뇨,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등을 앓는 만성질환자다. 신체 특성상 만성질환은 50대 이상에서 발생 확률이 높다. 즉, 고령자가 많아질수록 메디푸드 시장은 계속 커지는 셈이다. 한국은 현재 고령화가 급속도록 진행되고 있다. 한국 고령화율은 2022년 17.5%에서 2070년 46.4%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젊은 층에서도 만성질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만성질환자 현황’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최근 5년간 80대 미만 연령대 중 20대에서 당뇨 환자 수가 가장 많이 늘었다. 2022년 20대 당뇨 환자는 4만2657명. 5년 전인 2018년(2만8888명)에 비해 47.4% 증가했다. 고혈압 역시 20대 증가폭이 가장 컸다. 같은 기간 20대 고혈압 환자는 30.2%가 불었다.
대상웰라이프 관계자는 “고령층이 늘고 젊은 층에서도 만성질환자가 증가하며, 건강한 삶을 위한 일상적인 식단 관리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는 추세다. 메디푸드 수요도 당연히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도가 상승하고 있는 것도 메디푸드가 각광받는 이유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만성질환이 발병하기 전에 미리 관리하려는 수요가 급등했다. 실제로 만성질환 대부분은 사전에 관리가 가능하다. 당뇨, 고혈압, 이상지질혈증과 같은 대사적 만성질환은 모두 질환 단계로 이환되기 전의 ‘전 단계’가 존재한다. 전 단계는 말 그대로 질환에 해당하는 상태는 아니지만 정상 수치는 넘어선 단계로, 식단이나 운동과 같은 생활 습관 교정으로 얼마든지 정상 수치 단계로 돌아갈 수 있는 상태다. 당뇨병만 보더라도 30세 이상 성인 중 당뇨병은 16.7% 정도인데, 당뇨병 전 단계에 속한 인구는 44.3%에 달한다. 전 단계에서부터 미리 관리하려는 인구가 늘수록 메디푸드 시장은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돈구 대표는 “중환자나 만성질환자를 위한 의료 서비스 비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사전 예방을 목적으로 식단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수요가 늘며, 관련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시장과 사업이 커진다고 해서 무턱대고 뛰어들면 곤란하다. 주의해야 할 점이 많다. 단백질, 유지류 등 원료의 수급 불안정, 가격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률 저하 위험, 의료용 식품법 발의에 따른 제도 변화 등 불안 요인이 존재한다.
메디푸드에 들어가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의 영양소를 만들기 위해 덱스트린, 카제인나트륨, 분리대두단백 등의 원료가 쓰인다. 해당 원료 대부분 수입산이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원료 가격이 상승하면 제조 업체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2018년과 2019년 미국의 이상 기후로 덱스트린 원료인 옥수수 생산량이 급감하자, 국내 업체들은 덱스트린 수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가격 출혈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제약사, 식품사, 유가공사 등 여러 제조사들의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며 메디푸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메디푸드 2022년 가공식품 세분 시장 현황’ 보고서에서 메디푸드 시장에 대해 “최근 가격 경쟁이 점차 심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규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식품 산업 특성상 생산·관리 등의 꼼꼼한 규제가 따른다. 생산시설은 해썹(식품관리인증) 인증이 필수다. 깐깐한 규제 제도는 앞으로 더 복잡해질 전망이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용 식품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법이 통과되면 메디푸드, 즉 특수의료용도식품에 대한 정의부터 달라진다. 규제 환경이 현재와 다르게 바뀔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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