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기’ 금지한다는 재건축 상가, 그래도 투자할 만?
최근 서울 아파트와 단지 내 상가를 합쳐 재건축하는 사업지에서는 상가 매물이 아파트 못잖게 인기를 끌고 있다. 재건축 사업지에서는 상가 조합원도 아파트 조합원처럼 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틈새 투자처로 각광받는 분위기다.
기본적으로 재건축 사업장에서 아파트 조합원은 아파트를, 상가 조합원은 상가를 분양받는 게 원칙이다. 그럼에도 예외는 있다. 조합 정관에 ‘상가 소유주도 아파트 조합원이 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으면 가능하다.
재건축 상가가 입주권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통하다 보니 재건축 조합이 정식으로 설립되기 전 아예 상가 지분을 잘게 쪼개 아파트 분양 자격을 대폭 늘리는 꼼수도 횡행했다. 상가 ‘지분 쪼개기’는 말 그대로 상가 지분을 쪼개 소유자를 여러 명으로 나눠 분할 등기하면 소유자 각각에게 분양 자격이 주어지는 방식이다. 예컨대 10평짜리 상가를 5평, 5평 두 개로 나누면 소유자가 2명이 되고 이후 재건축을 통해 2명이 각각 상가 혹은 아파트 입주권을 분양받는 꼼수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재건축 아파트 입주권을 노린 ‘상가 쪼개기’가 6배 이상 증가(2020년 123건 → 지난해 77건)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9월까지 이미 50건을 넘었다.
특히 서울 강남권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상가 쪼개기가 성행했다. 송파구 올림픽훼밀리타운은 올해 9월 상가 조합원 수(118호)가 2020년(41호)보다 3배가량 늘었다. 이 밖에도 강남구 개포우성3차는 13호 → 74호, 개포현대1차는 21호 → 49호, 잠실 아시아선수촌은 7호 → 31호, 개포경남은 16호 → 36호로 늘어났다.
꼼수가 횡행하자 정부는 지난 9·26 대책을 통해 향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개정해 상가도 권리산정일을 넘기면 지분 쪼개기를 통한 분양권 취득을 못하게 막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자 규제가 실행되기 전 재건축 추진 단지 내 상가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몰리고, 상가 몸값도 덩달아 뛰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재건축 사업지가 많은 서울 강남권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올해 서울 지역 아파트 단지 내 상가 매매 거래를 분석한 결과 3.3㎡당 매매 가격이 가장 높았던 10곳은 모두 서울 강남구에 속했다.
단위면적당 가장 비싸게 거래된 단지 내 상가는 서울 강남구 도곡우성 단지 내 상가로 올 8월 지하 1층 5.09㎡가 7억5000만원(3.3㎡당 4억8625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7억5000만원에 팔린 또 다른 상가(5.12㎡, 3.3㎡당 4억8338만원)도, 9억5000만원에 팔린 상가(7.2㎡, 3.3㎡당 4억3540만원)도 도곡우성에서 나왔다. 인근 한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지난 8월 매매 계약서를 쓴 후 지금은 매물이 하나도 나와 있지 않다”며 “아파트보다 적은 금액으로 재건축 입주권을 확보할 수 있다 보니 매수를 하겠다고 대기 중인 손님이 여럿”이라고 전했다.
올해 서울에서 3.3㎡당 매매 가격이 네 번째로 높았던 상가도 강남구에서 나왔다. 압구정동 미성상가에서는 지난 5월 10.97㎡짜리 점포가 14억200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3.3㎡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4억2716만원이다.
압구정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미성아파트는 압구정 6개 구역 가운데 재건축 사업 속도가 가장 느린 곳인데도 재건축 상가 매입 문의가 꾸준하다”며 “권리산정일 전에 매물을 확보하려는 투자자가 몰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미성상가는 지하 1층 18평짜리 매물이 22억원, 3층 15평짜리 상가도 22억원에 나와 있다.
도곡우성, 압구정미성상가처럼 단위면적당 매매가가 높은 상가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3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 단지 내 상가라는 점이다. 이들 상가는 매매가에 비해 임대료는 낮은 편이라 임대수익률이 높지는 않다. 그런데도 노후 단지 상가 몸값이 유독 높은 것은 재건축 투자 수요가 유입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통상 상가는 임대수익을 목적으로 매입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파트 단지 내 상가는 재건축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목적이 많다는 것이다.
정관에 명시하면 상가도 주택 배정
‘산정비율’ 낮을수록 상가에 유리
물론 모든 상가 조합원이 원한다고 아파트 입주권을 받는 것은 아니다. ‘보유한 상가 권리가액이 새 아파트의 최소 분양 가격보다 높아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과거에는 상가 권리가액이 주택 가치보다 낮은 경우가 많아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는 게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C단지 상가 총 권리가액이 10억원, C단지가 재건축을 통해 새 아파트로 바뀌었을 때 전용 59㎡ 분양 가격이 15억원이라고 하자. 상가 가치가 아파트 가치보다 더 낮아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없는 식이다.
다만 이런 사정을 고려해 재건축 조합이 ‘산정비율’을 낮춰주는 등 상가 조합원에 우호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산정비율이란 상가 조합원이 아파트를 받을 수 있을지 좌우하는 숫자다. 산정비율이 높게 책정되면 아파트 분양은 어렵다. 조합 정관에 별도로 정하지 않은 경우, 산정비율은 1이다.
그런데 산정비율이 1보다 낮아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조합설립에 앞서 재건축추진위와 은마상가 재건축추진협의회가 상가 산정비율을 0.1로 설정하는 데 합의하면서 그 전까지 계속됐던 이견을 다소 해소했다. 새 상가 분양가에서 종전 상가 재산가액을 뺀 값이 재건축으로 공급되는 가장 저렴한 가구 분양가의 10%만 돼도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다만 장점이 많다고 해도 재건축 상가 투자는 사실상 전문 투자자 영역에 가까운 만큼 일반 투자자가 참여하려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먼저 일부 재건축 단지의 경우 상가 소유주에게 아파트를 줘서는 안 된다며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개발이익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아파트 조합원과 상가 조합원 간 갈등이 격화되면 분양 지연은 물론 준공 후 입주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잠실주공2단지 재건축)는 상가 분쟁으로 2008년 아파트 준공 후에도 오랜 기간 수분양자들이 입주하지 못했다.
리스크는 차지하고 매수하려는 상가의 권리가액과 산정비율은 어느 정도인지도 따져야 아파트 분양 가능성과 투자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 조합 정관에 상가 소유주가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되지 않거나 산정비율 혹은 감정평가액에 따라 아파트 분양권을 받기 어려울 수 있는 만큼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2호 (2023.11.01~2023.1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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