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만 붙이면 성공하던 시대 끝나
‘카톡’ 너마저…신사업·해외 공략 차질
2010년대 중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는 그야말로 카카오 전성시대였다. 플랫폼 생태계 전반에 걸쳐 ‘카카오 제국’이 완성됐다. 전통 대기업 자리도 위협했다. 카카오그룹은 2016년 자산 5조원을 넘겨 주요 IT 기업 중 처음 준대기업집단에 올랐다. 이후 재계 순위는 쭉쭉 상승, 2022년 재계 15위를 기록했다. 올해도 순위를 유지했다.
카카오의 가파른 성장 배경에는 ‘카카오톡’이 있었다. 월간 4000만명이 사용하는 ‘국민 플랫폼’은 어떤 사업을 펼칠 때도 큰 힘이 됐다. 친숙한 이미지로 이용자의 호감을 얻은 덕분이다. 투자업계(IB)에서는 “카카오톡 덕분에 회사명 앞에 카카오만 붙으면 기업가치가 배로 뛴다”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카카오 제국 ‘구심점’ 역할을 하던 카카오톡이 흔들린다. 데이터센터 화재와 빈번한 서비스 오류로 신뢰를 잃은 데다 10대 중심의 이탈 현상도 걱정거리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줄면서 ‘국민 플랫폼’ 지위도 유튜브에 잃을 위기다. 이에 카카오톡 기반 수익 사업(톡비즈)도 부진한 모습이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하반기도 톡비즈 사업의 반등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위기를 느낀 카카오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카카오톡에 경쟁사 서비스와 닮은 ‘펑(24시간 후 삭제되는 숏폼)’ 등을 내놨다. 다만 이용자 반응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올드해”…DM으로 소통하는 10대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카카오톡 MAU는 4161만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4345만명)과 비교하면 약 200만명 가까이 이탈했다. 같은 기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라인 등 경쟁사 MAU는 우상향했다. 특히 유튜브는 2023년 9월 4137만명의 MAU를 기록했다. 카카오톡과의 격차는 24만명. 관련 업계에서는 올해 안에 유튜브 MAU가 카카오톡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 플랫폼 자리가 뒤바뀌는 것이다.
카카오톡 MAU 부진의 배경에는 소셜미디어(SNS)의 ‘다이렉트 메시지(DM)’ 서비스 확대가 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물론이고 틱톡도 DM 기능을 탑재했다. 최근에는 음성·영상 메신저 서비스 디스코드도 주목받는다. 이에 10대를 중심으로 카카오톡 이탈 현상이 감지된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젊은 층, 특히 10대의 경우 카카오톡을 ‘올드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며 “학교 선생님들과의 대화는 카카오톡으로, 친구들과의 대화는 DM으로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2년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대의 인스타그램 DM 이용률은 52.3%로 집계됐다. 2019년(20%)에 비해 이용률이 크게 늘었다. SNS 속 DM의 강점은 ‘연계’다. SNS를 통해 친구들의 소식을 확인하고 즉시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친구와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10대의 경우 SNS DM 활용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카카오도 이 같은 변화를 모르지 않는다. ‘메신저’ 기능만 수행하던 카카오톡에 SNS 기능을 적용하는 배경이다.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톡 프로필 탭 하단에 ‘펑’을 탑재했다. 펑은 인스타그램 주요 기능 ‘스토리’와 닮았다. 글·사진·동영상 등을 업데이트하고 각종 이모티콘과 음악을 추가할 수 있다. 24시간 동안 게시글이 유지되는 것도 공통점이다. 지난해 12월 도입한 ‘공감 스티커’도 SNS 기능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용자가 다른 사람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방문, 공감 스티커를 누르면서 상호작용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아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앱이 무거워졌다” “카카오의 혁신은 SNS 따라하기냐”라는 반감만 나오고 있다. 오동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카카오톡 개편 효과는 아직”이라며 “친구 탭에 신설된 ‘펑’ 기능도 이용자 호응은 크지 않다. 카카오톡 이용자당 이용 시간이 줄고 있는 만큼 체류 시간 확대를 위한 추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카카오톡 경쟁력 약화가 수익성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당장 카카오톡 기반의 ‘톡비즈’ 사업 성장세가 둔화됐다. 톡비즈는 크게 ‘광고형(비즈보드, 이모티콘 등)’과 ‘거래형(선물하기, 톡스토어, 메이커스 등)’으로 나뉜다. 이 중 광고형 부문 매출 성장률이 문제다. 지난해 상반기 30%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 성장률은 5% 미만에 그쳤다. 올 3분기도 이렇다 할 반등은 쉽지 않아 보인다.
강석오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경기 침체 영향 지속으로 카카오는 3분기에도 한 자릿대 성장률에 그칠 것”이라며 “친구 탭과 오픈채팅 탭을 개편했지만 의미 있는 비즈보드 매출이나 트래픽을 기대하기에는 이르다”고 설명했다.
계열사 신사업 추진에도 부정적 영향
카카오톡이 쌓아 올린 ‘친숙한’ 이미지도 연이은 논란에 무너졌다. ‘쪼개기 상장’부터 ‘골목상권 침해’, 최근 불거진 ‘시세조종’ 혐의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른 탓이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를 향한 소비자 신뢰도는 회복이 어려운 수준까지 떨어졌다. 과거 카카오그룹 계열사들의 든든한 힘이던 ‘카카오’ 타이틀이 어느새 ‘짐 덩어리’가 된 셈. IT업계에서는 카카오그룹 계열사들이 진행 중인 신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게 느껴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카카오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는 최근 화물 중개 시장 진출 과정에서 중소기업(화물맨) 기술 탈취 논란에 휩싸였다. 카카오모빌리티가 2021년 4월경 화물맨 인수를 추진하다가 거래가 성사되지 못하자 기술을 탈취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카카오T트럭커’에 적용된 ‘맞춤형 오더’와 ‘빠른 정산’ 기능을 지적했다.
다만 관련 업계에서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억울하게 됐다”는 말이 돈다. 화물맨이 언급한 기술들이 플랫폼업계 전반에서 쓰이는 일반적 기능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빠른 정산’은 소상공인과 협업하는 플랫폼 대부분이 적용 중인 서비스다. 네이버와 쿠팡도 빠른 정산 서비스를 갖췄다.
맞춤형 오더도 마찬가지다. 이용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특성상 서비스 영위를 위한 ‘필요충분조건’ 중 하나다. 화물 중개 시장에서도 관련 서비스를 찾아볼 수 있다. 로지스팟은 2020년 추천 오더 기능을 도입했고, KT는 지난해 화물 매칭 플랫폼을 공개했다. 카카오모빌리티도 “빠르고 최적화된 매칭(맞춤형 오더) 역시 우리가 최초로 고안해 택시와 대리 등 서비스에 이미 도입한 방식”이라고 반박했다.
관련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카카오모빌리티가 과도한 비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카카오 타이틀을 문제 삼는다. 신뢰를 잃은 카카오 타이틀이 일종의 ‘주홍 글씨’로 작용을 했다는 의미다. 실제 기술 탈취 의혹이 불거진 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골목상권 침해하더니 이번에는 카피캣”이라는 등의 비난이 이어졌다. 사실 여부를 궁금해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IT업계 관계자는 “카카오 이름을 달고 있다는 이유가 문제다. 단순 의혹 제기만으로도 신사업에 문제가 생기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신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리면서 카카오모빌리티 수익성 개선도 쉽지 않게 됐다. 카카오모빌리티 영업이익률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 지난해 매출 7915억원, 영업이익 19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2.4% 수준이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는 본업인 ‘카카오T’ 호출, 가맹 수수료를 손봐야 하는데 매번 택시업계 반발에 무산되고 있다. 이에 화물 중개 등 신사업을 통한 수익성 개선을 노렸는데, 기술 탈취 의혹에 발목을 잡힌 상태다.
갈 길 바쁜데…‘키맨’ 잃은 카카오
AI 신사업·해외 공략 차질 불가피
문제는 앞으로다. 카카오와 카카오톡뿐 아니라 주요 계열사들의 성장도 둔화한 상황. 미래를 위한 새 먹거리가 필요한데, 이를 이끌 핵심 경영진이 모두 사법 리스크에 휘말렸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배재현 대표는 계열사 투자 관련 의사 결정을 총괄해왔다. 홍은택 대표와 김성수 대표도 소환됐다. 오동환 애널리스트는 “현재 카카오를 둘러싼 여러 소송과 조사가 집중되며 경영진 리소스가 분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영진 사법 리스크로 ‘비욘드 코리아’ 전략 차질은 불가피하게 됐다. 비욘드 코리아는 ‘내수용’ 꼬리표를 떼겠다며 카카오가 제시한 미래 방향성이다. 해외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해외 매출 비중이 큰 SM 인수도 비욘드 코리아 전략의 일환이다. 하지만 경영진 사법 리스크로 해외 시장 공략을 추진할 동력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내부에서도 당분간 해외 시장 관련 주요 추진 사업은 ‘일단 정지’ 상태라는 말들이 나온다. 특히 비욘드 코리아 핵심으로 불리던 카카오엔터의 기업공개(IPO) 일정이 지연될 전망이다. 이번 시세조종 혐의 중심에 엔터 사업이 있기 때문. 투자업계는 관련 이슈가 정리될 때까지 카카오엔터가 IPO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카카오엔터는 지난 1월 사우디아라비아국부펀드(PIF)와 싱가포르투자청(GIC)의 투자를 받으면서 수년 내 상장을 약속했다. 늦어도 내년부터 본격적인 상장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다수였다.
헬스케어와 인공지능(AI) 등 신사업 향방도 불투명해졌다. 역시 카카오그룹 신사업 투자를 총괄한 배재현 대표가 구속된 탓이다. 이미 신사업 관련 인수합병(M&A) 투자 검토 사안들은 올스톱된 상태다. 특히 AI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시선이 짙다. 카카오가 올해 10월 선보이겠다고 밝힌 초거대 AI 모델 ‘코GPT 2.0’ 관련 소식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홍은택 대표는 올해 2분기 실적설명회에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코GPT 2.0은 올해 10월 이후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10월을 넘기면서 홍 대표의 약속은 반쯤 어그러졌다. 문제는 연내 출시도 미지수라는 점이다. 연말이 다가오지만 코GPT 2.0을 포함한 카카오의 AI 로드맵은 감감무소식이다.
카카오가 ‘침묵’을 지키는 동안 경쟁사들은 치고 나가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8월 24일 초대규모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하고 ‘큐:(Cue:)’ 등 관련 서비스들을 출시했다. 통신사들은 해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T는 태국 대표 정보통신 기업 ‘자스민(Jasmine)그룹’과 함께 태국어 거대언어모델(LLM)을 구축할 예정이다.
연이은 신저가…목표주가 하향 이어져
증권가에서도 부정적 시선이 감지된다. 목표주가 하향이 줄을 잇는다. 10월 중 카카오 관련 리포트를 낸 증권사 11곳 중 10곳이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사법 리스크와 성장동력 부재, 실적 부진 등이 이유다. 목표주가를 6만2000원에서 5만4000원으로 하향 조정한 오동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경기 둔화와 구조조정, 신사업 관련 비용 증가로 2023년은 영업이익 역성장이 불가피하다”면서 “주가 회복은 체질 개선과 신사업 효과가 본격화되는 내년 이후가 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계열사 상황도 좋지 않다. 카카오그룹 캐시카우로 불리는 카카오게임즈 역시 실적 부진으로 인한 주가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카카오게임즈 3분기 실적이 시장 전망치(컨센서스)를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7월 말 내놓은 신작 아레스는 초반 구글 매출 순위 2위에 올라갔지만 현재는 10위권 중반으로 떨어졌다. 기존 작품인 오딘의 경우 3분기에도 매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어 2분기 대비 실적 개선폭은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목표주가도 4만원에서 3만원으로 낮췄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2호 (2023.11.01~2023.1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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