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우리 정부 욕만 해"... 이 발언 이후 벌어진 일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6개월. 정부여당은 언론을 의심했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고. 공영방송의 인적·소유 구성을 바꾸려 했고, 각종 정책적 조치도 뒤따랐다. 국회에서 집권당 국회의원들은 때로는 공세로 프레임을 만들었고, 때로는 정부의 조치에 힘을 실어줬다. 새 정부 1년 반을 즈음해 '그래서 한국 언론은 나아졌는가'를 세 차례에 걸쳐 진단한다. <기자말>
[유현재 기자]
▲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안이 가결된 2022년 11월 15일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정연설이 진행 중인 서울시의회 앞에서 TBS 구성원들이 항의 집회를 벌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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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중립과 다양성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
언론이 가진 또 하나의 운명적 속성인 '중립성'과 성숙의 잣대인 '다양성' 부문을 살펴보자.
사실 '중립'이란 것은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다. 대체로 자신이 속한 정파 혹은 입장은 언제나 언론 지형에서 소외되거나 무시된다고 여길 수 있다. 따라서 기계적이며 실질적인 중립이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할 경우 차라리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중립성을 실현하는 방법이 더 민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명백한 위법 사항이 있다면 사회가 보유한 사법 체계 내에서 반드시 심판 받아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대척점에 속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밖의 다양성에 대해 보이는 관용이야말로, 언론계는 물론 사회 전체를 성숙하게 만드는 핵심 변인이라 믿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언론 지형은 중립과 다양성이 이상적으로 존재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라디오 방송 전체를 통틀어 수 년간 가장 높은 청취율을 기록하던 콘텐츠의 진행자는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강력한 비판과 압박을 경험하게 됐다. 서울시와 시의회가 보조금 예산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해당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이야기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사라지고 난 뒤 정부여당의 화살은 타 방송사 프로그램으로 향하는 중이다.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와 MBC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으로 말이다.
프로그램의 편파성 문제야 분명 짚을 수 있겠다. 그러나 장기간 명확하게 보유했던 높은 대중성은 곧장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다수결의 원칙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대중이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개개인의 사고방식을 따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이 보유한 대중성을 변수로 다양성을 인정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는 뜻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8일 인천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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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기자회가 2022년 발간한 세계언론자유지수 리포트의 한국 편에도 '우려(concern)'라는 주제로 이 사안이 등장한다. 집권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에서 TBS에 제공되는 공적 예산(public funding)을 삭감했으며, 편견(bias)과 충분하지 못한 공정성(lack of fairness)이 이유였다고 명시돼 있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편견'과 '충분하지 못한 공정성'이란 용어에 굳이 따옴표를 활용해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다양성을 참지 못 하는 세력이 공적 권한을 가질 때 발생 가능한 전형적 사건이라고 믿는다. 다양성을 인정하기 힘들 만큼 강력한 이 신념은 대통령과 대통령실, 미디어를 전문 영역으로 삼는 정치인과 정부 인사에게서도 충분히 관찰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개최된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언론은 그저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고 발언한 바 있으며,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취임사에는 "공영방송은 각종 특혜를 당연시하면서도 노영방송이라는 이중성으로 정치적 편향성과 가짜뉴스 확산은 물론 국론을 분열시켜왔다"는 주장이 담겼다.
대통령이 야당 추천 인사를 계속 거부하며 구성된 '다양성 없는' 2인 체제의 방통위 의결기구는 KBS 시청료의 분리징수와 KBS 사장 해임, MBC의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장과 이사진 해임 등 언론 분야의 핵심적 결정을 일사천리로 추진했다. 당시 2인 체제를 진두지휘하며 혁혁한 공(?)을 세운 위원장 직무대리 김효재는 얼마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편향성을 치유한다는 명분 아래 또 다른 편향성이 언론을 뒤덮는 형국이다.
▲ 유진, 3천199억원에 YTN 지분 낙찰 한전KDN과 한국마사회가 보유한 보도전문채널 YTN의 지분 30.95%를 유진그룹이 낙찰받았다. 23일 YTN 매각 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 주재로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 진행된 개찰을 마치고 관계자들이 회의장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3.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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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중립성이 우려되는 대목은 또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주 YTN의 매각 과정이 개시됐다고 밝혔는데, 지난 10월 23일 YTN의 공적 지분을 사들일 당사자가 정해졌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YTN 지분매각 절차에 대해 "단순한 재무적 역량뿐 아니라, 공정성과 공영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미디어 강국으로 도약할 경영철학 등이 종합적으로 심사돼야 한다"고 밝혔지만,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뉴스 채널의 대주주는 대형 기업이 된다는 의미다.
'공공'과 '공영' 그리고 '중립과 시민 우선'이라는 언론의 주요 가치가 사영(私營) 언론사에서 얼마나 준수될지 우려된다. 이미 우리나라의 상당수 언론사가 대형 건설회사를 비롯, 특정 기업의 소유 형태로 유지되며 나타나던 다수 부작용 사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아니라 편향성 업그레이드가 걱정이며, 중립 대신 특정 주체의 이익에 몰두하는 언론의 또 다른 등장이 우려된다.
마이클 샌델은 2022년 출간한 책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회복과 성숙은 반드시 경제 권력을 민주적 통제 아래 놓을 때 가능하다'고 설파한 바 있다. 대형 자본이 대형 언론을 품었을 때, 대중에겐 득보다 실이 많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유다. 돈과 정의는 웬만해선 어울리기 쉽지 않음을 역사는 이미 수차례 증명했다.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1년 6개월, 우리 언론은 과연 얼마나 좋아졌을까. 진영과 이념을 떠나 언론의 본류만으로 판단한다면, 도대체 어떤 평가가 가능할까. 언론인들은 물론, 국민들도 꼭 집중해서 곱씹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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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유현재씨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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