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사건이 바꾼 K팝? 우리가 몰랐던 방시혁-박진영 이야기

이준목 2023. 11. 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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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이준목 기자]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2023년 기준, 하이브의 시가 총액은 약 10조 1839억, JYP는 4조 295억에 이르며 K팝을 대표하는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두 회사를 대표하는 수장 방시혁과 박진영은 BTS, god, 원더걸스, 트와이스 등 대한민국의 여러 전설적인 K팝 그룹들을 함께 배출해낸 주역들이다.

11월 1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운명적 만남'편에는 K팝 열풍을 이끈 두 전설의 프로듀서 박진영(JYP)과 방시혁(하이브)이 출연해 K팝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했다.

방시혁은 박진영의 회사에서 프로듀서와 주주로서 활동하다가 독립하여 지금의 하이브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현재까지도 형-동생 사이로서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첫 만남을 회상했다. 방시혁은 1994년 유재하 음악경연제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박진영은 '날 떠나지마'를 히트시키며 인기가수로 급부상하던 중이었다. 방시혁은 "박진영 측이 신인프로듀서를 찾고 있었다. 제 데모를 듣고 박진영에게 직접 전화가 왔다. 그때는 한국 음악을 잘 안 들을 때라 박진영하면 '비닐 바지'밖에 몰랐다"고 고백하여 폭소를 자아냈다.

박진영은 어시스턴트 프로듀서를 제안했고 방시혁은 당돌하게도 대뜸 "그럼 저한테 뭘 해주실 거예요?"부터 물었다고. 박진영은 "방시혁은 사람을 만나면 무표정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백이면 백 다 방시혁을 보고 '재 왜 저래?' 그런다. 사실 수줍어서 그런 건데, 오히려 저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너무 적극적인 사람은 무서워한다. 방시혁은 너무 귀여웠다"며 의외의 반전 첫인상을 설명했다.

방시혁은 사업에서도 전문분야는 경영진에게 위임한다고 밝히며 본인의 한계를 쿨하게 인정했다. 심지어 경영진으로부터 "당신은 세치 혀로 천 냥 빚을 만드는 재주가 있다"라는 팩폭을 당한 일화를 스스로 털어놓으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럼에도 박진영은 "방시혁은 투덜대면서도 다 해놓는 스타일이다. 초창기에 직원이 두 명일 때 그중 한 명이 방시혁이었다. 방시혁이 없었으면 지금의 JYP는 없었을 것"이라고 옹호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합작한 곡이 1996년 발표된 박진영의 대표곡 중 하나인 '그녀는 예뻤다'이다. 박진영이 창의적인 몽상가였다면, 냉철한 방시혁은 현실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성격이나 성향이 서로 상반되는 스타일임에도 그래서 호흡이 더 척척 맞았다고.

한때는 방시혁이 박진영의 '고스트 라이터'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실제는 정반대였다. 당시 신인이라 한 곡을 완성 못 할 때가 많았는데 박진영이 오히려 리드를 해주거나, 본인이 한 작업을 제 이름으로 하자고 해준 것도 많다"며 감사를 전했다.

이후로 두 사람은 박진영을 비롯하여 비, god, 원더걸스 등의 수많은 명곡들을 합작하며 20년 가까이 환상의 콤비로 활약했다. 박진영은 "나중에는 척하면 척이 됐다. 작업속도가 빨라져서 god의 음반을 한 달 만에 끝낸 적도 있다"는 일화를 밝혔다.
 
둘이 미국에서 함께 한 노력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명곡들의 반전 탄생 일화도 밝혀졌다. 방시혁은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을 찜질방에서, '내귀의 캔디'는 단식원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뒷이야기를 밝혔다. 당시 찜질방을 처음으로 가봤다는 방시혁은 "맨날 새로운 경험을 한다고 창의성이 올라가지는 않지만, 그 생각을 열심히 하다가 새로운 경험을 하면 계기가 된다"는 노하우를 전했다. '가격이 착해'라는 가사와 친근한 멜로디로 대중들에게 익숙한 한 유명 대형마트의 CM송 역시 방시혁의 작품이라고.

히트메이커 프로듀서들의 저작권 수익 1위곡은 무엇일까. 박진영은 'What is love', 'Feel special' 등 트와이스의 노래를 꼽으며 "무조건 최근 곡들이다. 액수의 단위가 달라진다"며 K팝의 높아진 위상을 증명했다. 방시혁은 저작권료 1위곡에 대하여 "솔직히 잘 모른다"고 답했다. 박진영과 방시혁은 과거 한때 농담처럼 "미국에서는 한 곡이 히트하면 몇십억을 번다더라"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게 훗날 운명처럼 현실이 되었다고 신기해했다.

국내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두 사람은 2003년 돌연 미국 진출을 모색했다. 박진영은 미국 여행을 함께하다가 자신이 동경하던 음악의 본고장에서 내 음악을 실험하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고. 하지만 방시혁은 당시 그런 박진영의 이야기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는 속내를 밝혔다.

함께 동거하던 두 사람은 박진영이 벗어놓은 양말 때문에 사소한 다툼이 계기가 되어 결국 방시혁은 4개월 만에 먼저 귀국을 선택했다. 박진영은 미국에 남았지만 공교롭게도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등이 겹쳐 해외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때를 기점으로 각자의 길로 갈라지며 훗날 K팝의 지각변동을 불러오는 나비효과로 이어진다. 방시혁은 "그때 그 양말 사건만 아니었다면 K팝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방시혁이 독립의사를 밝혔을 때도 박진영은 섭섭해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존중해줬다고. 오히려 초기에 자본도 지원해주고 업무제휴를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방시혁은 "진영이 형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방시혁이 설립한 '빅히트(하이브의 전신)'는 초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방만한 운영으로 회사는 초창기 백억 원이 넘는 빚더미에 올랐고 BTS의 데뷔조차 무산될 뻔한 최대 위기도 있었다. 지켜보던 박진영은 안타까운 마음에 방시혁에게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방시혁은 회사가 망할 뻔한 위기 속에서도 BTS 멤버들의 재능에 대해서만큼은 확신을 가졌다고 "이런 재능을 가진 친구들을 그냥 둘 수 없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2013년 6월, BTS가 데뷔하여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분기점이 된 2015년 <화양연화> 앨범이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빌보드에까지 진입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방시혁은 "그때 확신이 생겼다. 지금 미국 시장을 테스트해봐야 한다. 미국 향의 음악을 해서 미국 팬들이 반응하는지 봐야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당시 방시혁은 경영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회사를 전문 경영진에게 넘긴 상태였고, 회사 측에서는 미국 진출에 회의적인 반응이 강했다. 하지만 BTS의 해외성공 가능성에 자신감이 있었던 방시혁은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처음에도 미국 시장을 목표로 제작된 '불타오르네'는 빌보드 차트 상위권 진입, 미 아이튠즈 뮤비 종합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달성하며 월드스타 BTS의 본격적인 탄생을 알렸다.

방시혁의 세계시장 노크 전략은 '유명해져서 유명해지기'였다. 유명세를 퍼뜨려서 BTS를 몰라도 알고 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고 월드투어를 통하여 아시아와 남미를 거쳐 미국에까지 연착륙한 BTS는 3년 만에 빌보드 핫차트 1위를 기록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한다. BTS의 RM은 프로듀서 방시혁에 대하여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기압 같다. 항상 방향과 계절을 바꿔주시는 분"이라고 정의하며 감사를 전했다.

한편으로 박진영과 방시혁은 K팝의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방시혁은 최근 K팝의 위기론에 대하여 "위기론의 근간은 강렬한 팬덤의 소비다. K팝 팬은 어떤 팬덤보다 강렬한 몰입과 소비를 보인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확장성의 한계가 있다. 가볍게 소비하는 라이트 팬들도 많이 붙을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한다. 틈새에서 시작하여 흥했던 장르들이 일정 팬덤을 넘지 못하고 없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박진영 역시 "가장 큰 고민은 팬들을 넓히는 거다"라고 강조하며 "K팝 1단계가 한국 가수와 한국 노래를 부르는 것, 2단계가 한국어와 외국어를 섞었다면, 3단계는 현지 가수가 현지 언어로 된 음악을 K팝의 시스템으로 제작하는 것"이라는 비전을 설명했다.

JYP와 하이브는 글로벌 오디션을 진행하며 새로운 형태의 현지화된 K팝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으며 공고만으로 전 세계에서 12만 명의 지원자가 몰렸고, 오디션이 3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충분한 잠재력을 확인했다. K팝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한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들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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