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복지 예산 깎은 윤석열 정부... 현역 병사들 반응은?
[차원 기자]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021년 12월 20일 강원도 철원 육군 3사단 부대(백골 OP)를 방문해 생활관에서 장병들과 대화하고 있다. |
ⓒ 국회사진취재단 |
대선 후보 시절부터 '병사 월급 200만 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윤석열 대통령. 지난 달 3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윤 대통령은 "병 봉급은 내년도에 35만 원을 인상하여 2025년까지 '병 봉급 205만 원' 달성에 차질이 없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날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그동안 병사에게 현금성 또는 현물로 지원했던 사업 예산안 914억 원어치를 삭감했다. 병사 월급 인상을 위해 내년도 증액한 예산(4131억 원)의 22.1% 정도를 도로 삭감한 셈이다. 예산 삭감에 따라 병사들은 내년부터 생일날 특식으로 케이크를 받지 못하고, 축구화 구매비나 이발비, 효도휴가비도 지원받지 못한다.
이에 야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들을 원숭이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드는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비판했고(관련 기사 : 이재명 "대통령, 병사월급 올리겠다더니... 국민들 원숭이로 여기나" https://omn.kr/268z6), 이재랑 정의당 대변인도 1일 브리핑에서 "왼손으론 물을 붓고, 오른손으론 물을 빼는 황당한 행보에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이것이야말로 '거짓선동'"이라고 지적했다.
현역 군인들이나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예비역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1일, 주변 지인들에게 병사 복지 예산 삭감에 대해 물었다. 어쨌든 월급이 오르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반응부터 급여와 복지는 별개로 챙겨야 하는데 복지를 줄여 급여를 올리는 건 문제라는 반응까지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었다.
먼저 현재 GOP에서 복무 중인 육군 병장 최아무개씨는 "줄어든 복지예산은 병사 1인당 한 달 2~3만 원 정도로, 별로 체감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그보다 월급이 오르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공군 전역한 김정우씨도 "내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이 많아지는 게 최고"라면서 "복지예산은 병사들이 잘 알지 못하거나 사용을 못 하는 일도 많다"고 했다. 지원 예산이 깎이는 것보다는, 월급이 인상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 '내 직장은 어디일까?' 10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2023 제대군인 취업박람회를 찾은 장병들이 참가 업체 부스를 찾아다니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러나 실망스럽다는 상반된 반응도 있었다. 공군 일병으로 복무 중인 신아무개씨는 "어쨌든 월급을 올려 준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면서도 "군인 복지는 더 지원해도 부족하지 않은데, 오히려 삭감한다니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또 "20대 청춘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입대하는데, 대통령이 이렇게 장난치듯 후보 시절 공약을 뒤집는 모습을 보며 많은 장병이 비슷한 실망감을 느낄 듯 싶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10월 해군 전역한 김아무개씨도 "200만 원이라는 숫자가 현재 군의 실태를 주의 깊게 살핀 후 나온 공약이 아니라, 20대 남성의 표심을 사기 위해 무책임하게 던지고 본 공약이 아닌가 우려했었다"면서 "그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6월 육군 전역한 현성용씨는 "지원 예산 삭감이 크게 체감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병사 월급 인상은 원래 대통령이 약속했던 일이고, 그 예산을 맞추기 위해 병사의 복지를 줄이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받아야 하는 걸 다 못 받은 꼴이 아니냐는 의미였다.
월급 인상으로 복지예산 삭감을 덮을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해 12월 공군 전역한 김도윤씨는 "급여와 복지는 별개의 문제"라면서 "월급을 덜 올리더라도, 복지를 없애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라는 제도는 일터, 또는 사회가 개인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는 것을 넘어 지속가능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군대도 마찬가지로 월급을 지급하면서도 장병들의 생활에 군이 계속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급여는 노동의 대가에 따른 보상이고, 복지는 일터가 개인의 더 나은 삶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노력의 표시이기 때문에 단순히 급여를 올린다는 이유로 복지를 줄이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월급이 올라 좋아하는 병사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정부가 이렇게 돈으로 쉽게 '때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기자도 3년 전 신병교육대에 있을 때, 생일을 맞아 케이크를 받고 기뻐하던 동료 훈련병의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물론 병사 급여 인상을 공약하고, 이를 지키려 노력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좋은 공약과 정책도, 이런 방식이면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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