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약탈·차별…美 원주민 정책이 악인을 만들었다
원주민 부족공동체 해체하려고 편법 동원한 백인 비판
디캐프리오, 인간이 악의 물들어가는 과정 보여줘
기회주의적 방관·침략적 야욕 신랄하게 꼬집어
미국은 남북전쟁 뒤 성장을 거듭했다. 가장 발달한 산업은 농업. 넓은 땅이 필요해 원주민 토지에 눈독을 들였다. 1870년부터 1890년까지 4억3000만에이커(약 174㎢)를 강탈했다. 연방정부의 관개사업 투자가 약탈을 촉진했다. 아메리카 원주민 토지를 모두 농지로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변방으로 밀려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도탄에 허덕였다. 버펄로가 전멸해 식량 사정조차 어려워졌다. 백인들은 개의치 않았다. 주식(主食) 혁명을 주장하며 생활을 유목에서 농경으로 바꾸라고 강권했다. 의회에 크게 세 가지 사항도 주문했다. 공동소유 토지의 개인 소유화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내국민 자격 인정, 동화 정책 강화다.
헨리 도우즈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은 이를 바탕으로 1885년 토지 할당제에 대한 특별법을 제안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부족 소유 땅을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개인에게 양도하는 내용이었다. 부족공동체를 해체하고 백인식 개인주의를 도입해 한 사람의 보통 시민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이른바 '일반토지 할당법'은 1887년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서명과 함께 발효됐다. 최초 입안자의 이름을 따서 도우즈법으로 불렸다. 이에 따라 세대주는 160에이커(약 64만7497㎡), 18세 이상 미혼자는 80에이커(약 32만3749㎡), 18세 이하는 40에이커(약 16만1874㎡)를 할당받았다. 받은 토지는 25년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었다.
농사는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았다. 할당받은 땅 대부분이 농작물을 가꾸기 어려울 만큼 척박했다. 농기구 구매 등 초기 투자비를 해결할 길도 막막했다. 더구나 미성년자는 학교에 가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토지를 이용할 수 없었다. 갖가지 문제를 인식한 연방의회는 토지 임대를 허용했다. 나이가 어리거나 장애로 인해 경작이 어려우면 내무부 장관에게 승인받아 임대차계약이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잘 몰랐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아메리카 원주민 권리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할 연방정부 주재관도 백인들과 결탁해 아메리카 원주민을 착취하는 데 앞장섰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한 '플라워 킬링 문'은 이렇게 겉과 속이 판이한 백인들의 야비하고 더러운 역사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희생양은 고향에서 쫓겨나 오클라호마주에 정착한 오세이지족. 부족의 명맥이 끊겼다고 좌절한 순간 척박한 땅에서 유전이 터진다. 석유 시추 사업으로 떼돈을 벌어 막대한 부를 거머쥔다. 축복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족의 멸망을 앞당기는 촉매제였다. 돈 냄새를 맡고 모여든 백인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주인공 어니스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그중 하나다. 오세이지족 여성 몰리(릴리 글래드스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삼촌 헤일(로버트 드니로)의 강요가 있었다. 몰리에게 어머니와 자매가 있는데 상속을 잘 받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부추겼다. 그것은 집단적 범죄의 시발이었다. 잇따른 의문사로 막대한 부의 향방이 점점 한쪽으로 쏠린다. 일련의 과정에서 어니스트는 하수인에 불과하다. 별다른 계획 없이 헤일이 구상한 일을 다른 이에게 교사하기 급급하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처럼 나약한 인간이 자연스럽게 악의에 물들어가는 얼굴을 3시간 이상 집요하게 조명한다. 어니스트는 분명 아내를 끔찍이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한다. 그것이 범죄임을 알면서도…. 흉계와 음모가 난무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동화돼버렸다. 문명화됐다고 착각하는 백인들의 기회주의적 방관과 침략적 야욕을 동시에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을 위한다는 제도와 정책에서 비롯한 인재다. 특히 '플라워 킬링 문'은 1921년 통과된 후견인 임명 법안을 비판한다. 오세이지족에게 돈에 대한 올바른 관념이 없다고 판단해 백인 변호사, 사업가 등에게 대신 관리하도록 한 제도다. 오세이지족은 자기 돈을 용돈 받듯 타서 써야 했다. 후견인들은 수수료를 과도하게 책정하는 등 허점을 악용해 재산을 불렸다.
토지 사유화도 아메리카 원주민의 경제·사회적 생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대부분이 생활비 조달을 위해 분배받은 땅을 헐값에 백인에게 팔았다. 극빈자로 전락한 이들은 미국 시민권이 있었으나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번번이 인종차별의 높은 벽에 가로막혔다.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시민권은 명목상의 자격일 뿐이었다. 조상들이 겪었던 차별이 그대로 이어져 서부 영화나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찍이 도우즈법을 반대했던 아메리카 원주민 매리 콥 애그뉴의 우려처럼.
"연방정부는 도우즈법을 제정해 도우즈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또 하나의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이웃 사람의 땅을 침범하지 않았다. 옛날 조지아에서와 같은 정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인들은 또다시 지난날 조지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땅을 탐하고 있다. 백인들은 아직도 우리를 야만인으로 보고 있으며 지능이 모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로 간주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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