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찾은 서울대 이공계생들 "이런 나라에선 연구 못한다"

박소희 2023. 11. 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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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산 대폭 삭감 우려에 민주당 예결위 간사와 간담회... 현장 목소리 반영 요구

[박소희 기자]

 2일 국회에서 열린 '서울대 총학생회 R&D 예산삭감특별위원회 간담회'에서 국회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의 R&D(연구·개발) 예산 대폭 삭감을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제 발로 국회를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감축 기조는 유지하되 고용 불안은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정부의 'R&D 카르텔'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강훈식 의원이 반갑게 서울대 'R&D예산 삭감 대응 특별위원회' 소속 학생들과 악수를 나눴다. 하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 또한 특위에서 강 의원 쪽에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강 의원은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 어떤 심정으로 왔는지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삭감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불안감 호소하는 이공계생들

학생들은 하나같이 불안감을 토로했다. 자연과학대 학생회장 오정민씨는 "이번 삭감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정부예산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을 학문 분야가 사장될 수 있다. 기초과학 등이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국가가 포기, 유기하는 것 아닌가.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또 "학내 조사에서 인상 깊은 응답 중에 '인문대 대학원 진학을 생각했는데 망설임이 강해졌다'는 것"이라며 "이공계만 문제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공과대학 학생회장 나세민씨는 "공대 차원에서 조사한 내용인데, R&D 자체가 이공계에서 주로 이뤄지긴 하지만 대학생 전체적으로 우려가 있는 상황"이라며 "자신의 진로와 연관 지어서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라고 대부분 우려한다"고 밝혔다. 또 "R&D 예산 삭감을 백지화할 절차가 뭐가 있을까 하던 와중에 '학생들 인건비, 학업에 지장없도록 노력하겠다'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인터뷰를 봤다"며 "(실제로는) 인건비 등에 피해가 피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물리천문학부 학생회장 문성진씨는 "(다른 학교와 연대한) 천문·우주항공분야 공동행동에서 조사·분석해봤는데 (예산 삭감으로) 대학원 진학, 진로에 있어서 상당히 고민하게 됐다는 게 70% 이상"이라며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대학원) 진학이 힘들겠다는 사람이 많고, 외국에 나가서 눌러앉겠다는 친구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학생들 얘기 중 하나가 '정부가 이렇게 정책을 쉽게 바꿔 학생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준다면, 이런 나라에선 연구를 이어갈 수 없다'였다"고도 소개했다.
 
 2일 국회에서 열린 '서울대 총학생회 R&D 예산삭감특별위원회 간담회'에서 국회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23.11.2
ⓒ 연합뉴스
 
생명과학부 2학년 유은강씨는 "학생회 등을 특별히 하지 않는 평범한 학부생"이라며 "친구들이나 학생들과 얘기해보면, 제일 많이 느꼈던 게 설득력 부족"이라고 얘기했다. 이어 "R&D분야가 정말 카르텔이나 비효율이 심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설명이 전혀 없이 '카르텔이라 예산 줄이겠다'고 해버리니까 납득이 잘 안 된다"며 "대학원 인건비가 적다는 걱정도 많은데 예산 삭감까지 된다니까 (학생들의) 사기가 더 저하된 것 같다"고 걱정했다.

물리천문학부 소속 이동훈씨도 "카르텔과 비효율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변명인지 불분명하다"며 "선진국들은 장기연구과제로 깊고 창의적인 연구를 많이 한다. 단기평가에 기반해 부실하면 바로 예산 삭감하는 방식으로는 노벨상이 나올만한 수준 높은 연구를 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효율성을 특정하는 기준도 불명확하다"며 "반도체 등 7개 분야는 확대하고 다른 분야는 소외받는 느낌이기도 하고, 그런 부분이 전체적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침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목소리 반영을..." 논의 규모 확대하기로

참가자들은 또 정부와 국회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할 통로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의식 서울대 총학생회 중앙집행위원장은 "대학생으로서 학문과 연구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대학생의 목소리를 반영할 거버넌스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든다"며 "학내 단체에서는 (오늘 행사를) '간담회'보다는 '협의회'라고 표현하길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좀더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류할 수 있고, 실질적의로 저희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통계학과 학생회장을 지낸 박새오름씨는 "흔히 (이공계에서) 의대로 많이 빠져나간다는 얘기가 서울대에서도 매년 나오는데 이 와중에 예산 삭감을 말하는 건 이공계 학생 또는 연구자를 꿈꾸는 학생의 진로를 응원하지 못할 망정 오히려 방해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이 문제의식에 사회적 공감을 받기 위해선 어떠한 방법이 있겠냐"고 강 의원에게 묻기도 했다. 문성진씨 역시 언론, 국회, 정부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불가피한 상황이고, 그건 참 미안하게 생각한다. 정치인으로서 죄송하다"며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이걸(R&D) 해야 하나', 지금 하는 학생들도 '의대 갔어야 하는 것 아니냐' 회의가 들게 만드는 건 기성세대로서 송구스럽다"고 했다. 또 "거버넌스를 만들자는 제안까지 해줘서 정말 환영한다"며 "당에도 요청하고 의원들한테도 제안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조만간 민주당의 다른 예결위원들과 타 대학들도 함께 만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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