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별장 아니고 화진포의 성” 닥터 홀 가의 의료선교 이야기

우성규 2023. 11. 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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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황연옥 지음/홍성사

닥터 로제타 홀과 아들 셔우드와 딸 이디스. 딸은 아버지처럼 감염병으로 어린 나이에 숨졌다. 사진=국민일보DB


아버지 닥터 윌리엄 제임스 홀(1860~1894)은 평양지역 개척선교사로 청일전쟁 당시 부상자들을 치료하다 감염병으로 숨졌다. 어머니 닥터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은 남편보다 먼저 조선에 의료선교사로 파송돼 한국의 여성 어린이 시각·청각장애인 등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이 과정에서 남편과 어린 딸을 전염병으로 잃어 서울 양화진에 먼저 묻고 자신도 유언에 따라 양화진에 묻혔다.

아들 닥터 셔우드 홀(1893~1991)은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 로제타 홀을 따라 평양에서 자라났다. 어머니와 함께한 이화학당 출신 김점동이 미국 유학 후 한국인 1호 여의사인 박에스더가 돼 조국으로 돌아와 의술을 펼쳤으나 곧 폐결핵으로 속수무책 사망하는 걸 보고 평생 결핵과 싸울 것을 다짐한다. 캐나다와 미국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40년 일제가 추방할 때까지 해주구세병원에서 사역하며 결핵요양원을 건립했고 결핵환자를 돕는 크리스마스씰을 도입했다.

앞줄에 닥터 로제타 홀, 뒷줄 왼쪽부터 며느리 매리언 홀, 아들 셔우드 홀. 2대에 걸쳐 4명의 부부 의료선교사로 섬긴 홀 집안이다.


며느리 닥터 매리언 보톰리 홀(1896~1991) 역시 셔우드 홀을 만나 의과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조선에 의료선교사로 파송 받아 평생을 함께한다. 외과 전공인 매리언은 만삭임에도 추운 겨울밤 외진 산골 마을에 왕진을 가서 환자를 수술하며 생명을 살린다. 이들 부부는 일제에 의해 1940년 추방당하자 곧바로 인도 아지메르로 가서 또다시 22년간 결핵 치료를 위해 사역한다. 이들도 유언에 따라 양화진으로 돌아와 잠들어 있다.

닥터 홀 가의 2대에 걸친 의료선교 이야기를 담은 실록 소설 ‘화진포의 성’이 홍성사에서 발간됐다. 셔우드 홀은 1978년 미국에서 회고록 ‘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청진기를 가지고 조선에서)를 발간했고, 이는 캐나다 교포 김동열씨의 번역으로 1984년 ‘닥터 홀의 조선회상’ 제목으로 출간됐다. 2003년 판권을 달리해 기독 출판사 좋은씨앗에서 752쪽 벽돌 책으로 출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진포의 성’은 이 회고록 등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로 강원도 고성 출신 문학가 황연옥(71)씨가 집필했다. 황씨는 책머리에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2대에 걸쳐 부부 선교사로 조선에서 실천한 뜨거운 인류애를 독자들께서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닥터 셔우드 홀의 청진기. 사진=국민일보DB


논픽션으로는 딱딱하기만 한 이야기들이 소설로는 손에 잡힐 듯 표현돼 있다. 조선 소녀를 위해 자신의 피부를 떼어 수술해 준 서양인 처녀 의사였던 로제타 홀, 평양에서 병원 설립 준비 작업을 하다가 서울로 향하는 길목에서 성경 속 비유 그대로 길에서 강도를 만나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신음하고 있는 걸 발견하고 자신의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되돌아간 윌리엄 홀, 아버지처럼 미국의 마운트 허몬 고등학교에 진학해 학생자원운동(SVM)이 탄생한 바로 그 교실에서 강의를 들은 셔우드 홀, 조선 최초의 감리교 목사로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 부부의 유복녀 이디스가 이질로 사망하자 시신을 평양에서 서울 양화진까지 지고 가서 묻어준 김창식 목사와 훗날 의사가 되어 해주구세병원에서 진료한 김 목사의 아들 김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롭게 펼쳐진다.

화진포의 성 전경. 사진=국민일보DB


셔우드 홀의 회고록을 우리말로 번역한 김씨는 추천사를 통해 “‘화진포의 성’은 국내에서 ‘김일성 별장’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름으로 변형돼 알려졌다”면서 “닥터 홀의 사진은 어느 구석으로 쫓겨나서 신음하는 듯했다”고 밝혔다. 소설엔 일제에 의해 원산에서 쫓겨나 화진포로 별장이 옮겨가게 된 배경, 작은 오두막을 지으려 했으나 독일인 망명 건축가 베버의 구상으로 규모가 커지고 대금을 갚기 위해 평양에 있던 땅을 팔아야 했던 이야기 등이 소개된다. 늦게나마 강원도청과 고성군청을 중심으로 김일성 별장, 이승만 별장 등에 밀려 소외됐던 닥터 홀 가의 선교 이야기가 화진포의 성에서 부각되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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