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풍경 뒤 지역 주민의 고통, 경주에서 만났습니다

이향림 2023. 11. 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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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학교' 1박 2일 참가기... 원전 인근 주민들의 이야기 아십니까

[이향림 기자]

▲ 감은사지 삼층석탑 어릴 때 갔던 수학여행에서는 알지 못했던 경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
ⓒ 국토학교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한국에서부터 도보로 티벳을 거쳐 이탈리아 바티칸까지 도보순례를 이어간 이원영(전 수원대) 교수가 올해 9월 국토학교를 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국내 도시들을 선정하여 1박 2일간 12번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10월 20일, 두 번째로 진행한 국토학교에 참가했다. 청소년 시절 수학여행으로 갔던 경주가 이제는 어떻게 보일까 싶기도 하고, 월성 원전 피해 주민과의 대화도 흥미로워보였다. 무엇보다 가을 날씨의 경주는 어떨지 궁금했다. 서울 양재역에서 오전 8시에 모여 다 같이 관광버스를 타고 20명 남짓한 사람들과 함께 출발했다.

점심을 먹고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감은사 터였다. 멀리서 감은사지 삼층 석탑 두 개가 단정히 서 있었다. 경주라 하면 불국사 및 천마총과 같은 화려하고 거대한 유적지만 떠올랐는데 이곳은 한적하고, 아담하였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가보니 규모가 크긴 했다. 이 교수는 "삼층 석탑을 볼 때마다 기상과 기백이 느껴진다"며 감탄하였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원전을 물려줄 수는 없다"

경주의 정취를 맛본 뒤에 9년째 월성 원전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황분희 위원장(이주대책위원회)을 만났다. 76세인 그녀는 경주에서 35년 정도를 살았고, 10년 전에 갑상선암에 걸린 것을 알았다. "방문해 주는 사람들 덕분에 힘이 난다"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가녀린 체구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어가는 그녀의 얘기에 우리 모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변한 건 없지만 투쟁을 안 할 수도 없다. 원전을 가동한 지 약 40년이 되었다. 처음 25년 간은 이렇게 위험한 건지 모르고 살았다.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터지고 나서야 잘못됐다 느꼈다. 월성 원전에서도 잘못된 부분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원전 직원들의 실수가 잦았음에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원전에 쓰인 부품 중에는 돈 적게 들이려고 짝퉁도 썼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나서, 언론을 통해서야 주민들은 알게 되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은 원전이 얼마나 깨끗하고 안전한 전기를 생산하는지 알렸고, 점검도 자주 한다며 주민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월성1호기 핵연료봉 교체 과정에서 폐연료봉 다발이 떨어져 방사능이 유출된 사건, 2013년 원전의 부품 납품 과정 중 품질기준에 미달하는 부품들의 시험 성적서가 위조되어 원전에 쓰였던 것이 적발돼 68명이 실형을 선고받은 원전 비리 사건 등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주민들은 원전 측 주장을 그대로 믿기만 할 수는 없게 되었다. 

침착하게 말을 이어가던 황 위원장은 그러나 "경수로였던 후쿠시마 원전에 비해 월성원전은 중수로라서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 배출량이 10배나 많단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양이원영 국회의원과 환경운동연합 측 자료에 따르면, 중수는 핵분열 시에 발생하는 중성자를 흡수하게 되면서 삼중수소라는 방사성물질이 되는데 월성원전은 중수를 쓰기 때문에 삼중수소가 다량 발생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백혈병이나 암 유발 위험이 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2012년 황분희 위원장은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2015년에는 <추적 60분>에서 나아리 주민 40명 소변을 모아 삼중수소 농도를 검사하였는데, 황 위원장의 가족 삼대 모두가 참여했다. 그녀는 이 곳에서 계속 살수 있길 바랐지만, 40명 모두에게서 삼중수소가 검출됐다고 한다. 한수원 측은 이 상관관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때부터 여기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해 한수원 측에 '이주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처음부터 탈핵 운동을 한 것은 아니라며, 주민들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황분희 이주대책위원회 위원장 모습.
ⓒ 수피아
 
"이주 대책 세워야" vs. "그럴 법적 근거 없다" 

한수원의 홈페이지 지역지원이라는 파트에는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발전소 주변 지역의 주민들과 상생을 위해 지역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는 설명이 게시되어 있긴 했다.

이에 대해 18년간 환경 관련 현장을 다닌 이상복 이투뉴스 부국장은 "대형 전력설비나 발전단지가 들어선 곳은, 발주법(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관한법률)이나 송주법(송·변전설비주변지역지원에관한법률) 규정처럼 단순히 시설과의 이격거리를 기준으로 피해 유무나 정도를 판단하기 어렵다. 관련법의 보상범위를 벗어나더라도 부동산 지가하락이나 경관 훼손처럼 실질적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면서 "신규 석탄화력이 건설된 동해지역과 경남 고성군 등에서 발전사가 기존 주거지역을 대규모 이주 보상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부국장은 "월성원전 주변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질적인 보상이나 이주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이라, 발전소 인접마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기존 주거지에서 속앓이만 하는 주민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 "관련법 피해보상 범위와 수준을 지금보다 현실화하고 이주의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보상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들이 말하는 '상생'에는 황 위원장과 몇몇 주민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녀는 딸네 가족을 당장 이 지역 바깥으로 내보냈지만, 정작 본인은 떠날 수가 없다. 집을 팔 수도 없고, 한수원도 사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소수 주민만 희생시키는 한수원과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정부가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월성 원전이 잘못되어 사고가 나면 한수원과 주민들뿐만 아니라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경주의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마음 놓고 지내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번듯한 한수원 건물 바로 옆에 천막을 치고 오랫동안 천막을 지키는 그녀를 비롯하여 농사만 지어온 몇몇 주민들에게 이 모든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 나는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했던 얘기 중 서울에 집회 때문에 한번 씩 올 때면 야밤에도 너무나도 밝은 불빛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전기를 좀 더 아껴 쓰면 원전이 문 닫을 수 있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고 탈핵과 관련한 강의를 연달아 들었다. 직접 피해를 호소한 분의 얘기를 듣고 강의를 들으니 좀 더 집중하며 들을 수 있었다. 김수진 교수(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정책학박사)는 2000년대 말까지 원전 대국이었던 독일이 어떻게 탈원전을 하게 되었는지 알려주었고, 이어 이상복 부국장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처럼 정전사태, 2020년 큰 태풍으로 선로가 끊어지기도 하는 등 큰 대형사고로 이어진 원전 관련 아찔한 사건 사고들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한번씩 들어만 봤던 사례들을 들으니 인간은 정말 망각의 동물이구나 싶었다.

이 부국장은 무엇보다 "에너지를 쓸 때 이 전기가 어디서 오는 건지, 누구의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건지 한번 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게 맞을까? 타인의 희생을 줄이고, 어려우면 최소한 그런 희생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 주는 것. 그것이 '에너지 정의'가 아닐까. 혹시 더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하더라도 말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경북 예천이었다. 정남호 사진작가의 <버스정류소에서>라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20년 동안 시장 풍경만을 찍었다는 작가는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찍은 사진 중에 20점을 선정해 전시를 했다. 왜 시장 사진만 찍었을지 궁금했다. 정 작가는 "그냥 시장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예뻐 보였어요. 한국인들 고유의 '공동체'가 담겨있기도 하고요"라며 역사를 기록하는 심정으로 담았다고 했다. 사진 작가의 사진 속 어르신들은 예뻐 보였다. 사진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너무나 따스했고 아름다웠다.  
 
 정남호 사직작가의 전시 <버스정류장에서>. 20년 동안 시장의 풍경만을 찍었다는 작가는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찍은 사진 중에 20점을 선정하여 전시를 했다.
ⓒ 수피아
 
서울로 올라오는 길 이 교수는 "국내에 환경, 역사 등의 문제들을 재능 있는 사람들과 비전을 함께 나누고자 국토학교를 기획하게 됐다. 일반인 누구나 참여가능하다"라고 마무리 인사를 전했다. 만약 이번 국토학교가 아니었다면 나 또한 원전 피해에 대해 깊게 들여다볼 일이 있었을까. 경주 주민들의 눈물은 알지 못한 채 아름다운 풍경과 찬란한 역사를 즐기기만 했을 것이다.

한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의 괴리감, 또 내가 반쪽만 알고는 돌아갔을 가능성을 생각하니 뜨끔한 기분까지 들었다. 참가자들도 한 명씩 소회를 나누었다. 개인 문제에만 매몰되지 말고, 나부터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며 작은 일이라도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해보자는 것. 느낀 바는 조금씩 달랐지만 비슷한 마음이었다. 환경 문제, 역사 문제, 전시회까지 테마는 달랐지만 공통적인 메시지는 개인이 아닌 '우리'였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박수를 쳐주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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