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강제북송' 몰랐다는 국정원…"선택적 무능" 비판
野, 정보역량 질타…"中 탈북민 규모도 몰라"
"알고도 무능 택했나, 민간보다 휴민트 엉망"
중국이 지난달 9일 탈북민 수백명을 북송하기 전 관련 첩보가 정보 당국에 제공됐다는 주장에 대해 국가정보원은 이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서도, 휴민트 역량을 보강하겠다고 자성했다. 조직적 대규모 북송의 징후조차 잡지 못한 것은 정보 역량에 구멍이 뚫렸다는 방증이라는 비판과 함께, 북송 사태를 예견하고도 '선택적 무능'을 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2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은 사전 징후를 알았어도 알고 있었다고 밝힐 수 없는 입장"이라며 "향후 중국에서의 정보활동 편의, 국내 비판 여론 등을 고려해 가장 방어적인 선택을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표적인 북한·정보 전문가로, 올해 2월 북한연구소장에 선임됐다. 이 연구소는 1971년 11월 중앙정보부 외곽기구로 설립된 뒤 민간 사단법인으로 전환됐으며, 현존하는 북한 전문 연구기관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다.
김 교수는 "애초 국정원은 입수한 첩보를 다른 부처에 공유하지 않는다"며 "(정보의 구체성과 무관하게) 그것이 외교부, 통일부 등 관계 부처에 유기적으로 공유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를 용산(대통령실)에서 정리해줘야 하는데, 말로만 '인권'을 외칠 뿐 구체적인 변화와 역할을 주문하지 않고 있다"며 "중국은 강제북송을 계속할 것이고, 현재로선 우리 정보기관과 부처들이 이를 막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도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지난달 31일 본지 인터뷰에서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탈북민 500여명을 북송하기 이틀 전 국정원에 '대규모 북송 조짐이 있다'는 정보가 제공됐지만, 휴민트(HUMINT·인적 네트워크)를 가동한다거나 적극적인 상황 파악에 나서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표는 해당 소식통에 대해 1990년대 말부터 탈북민 수천명을 구출해온 활동가이자,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등 주요 인사와 정보를 교류하는 신뢰할 만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전날 국정원에서 비공개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이 같은 보도에 대한 위원들의 질의가 잇따랐다. 정보위 여당 간사 유상범 의원은 감사 결과 브리핑에서 '강제북송 사태에서의 국정원 역할'이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고 꼽았다.
유 의원은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이 강제북송 사태를 국정원이 사전에 인지했는지 질의했으나, 국정원장은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답변했다"며 "중국에서의 정보활동이 약화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전했다. 야당 간사 윤건영 의원은 "(재중) 탈북민 전체 규모를 혹시 파악하고 있느냐는 질의에도 '파악하지 못한다'고 말했으며, (강제북송 사태와 관련해선) '구체화된 첩보가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첨언했다. 국정원에 정보가 입수된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은 것이다.
中 정보망 무너졌나…국정원 "휴민트 역량 보강"
국정원이 실제 탈북민 강제 북송 조짐을 파악하지 못했어도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첩보의 '구체성'을 이유로 추가적인 사태 파악에 나서지 않은 것인 데다, 대중(對中) 정보 역량의 허점을 공식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전직 정보 관계자는 국정원이 밝힌 입장이 사실이라는 전제로 "단편적으로 탈북민 수백명과 거기 동원된 공안 인력, 수십대의 차량만 고려해보라"며 "이 정도 규모의 움직임도 인지하지 못했다는 건 정보망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이야기밖에 더 되느냐"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지난 정부 시절 친중·친북 기조를 내세우며 관련 요원들을 물갈이한 영향을 지적하며 "오랜 세월 휴민트를 구축해도 한 번 무너지면 이전으로 복구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어 "접근이 가능한 중국에서도 정보 역량이 민간단체보다 못할 정도가 됐다면, 물리적으로 닿지도 못할 북한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수집하고 있겠나"라며 "하마스의 수준 낮은 재래식 기습에 유린당한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참패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지난 정부 당시 핵심 휴민트망이 붕괴된 것이 (국정원이 강제북송 사태에 대한) 사전 정보 파악에 실패한 이유"라며 "국정원이 국제 첩보 기능을 상당 부분 잃고 한낱 행정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결국 이번 (강제북송) 사태에서 그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대중국 정보망에 큰 구멍이 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라며 "국정원은 조속히 해당 기능을 복원하라"고 주문했다.
한편, 국정원 측은 전날 국정감사에서 "(중국이 탈북민을) 추가 북송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휴민트 역량을 보강해 나갈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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