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간 같은 아파트에서 삽니다, 손해 아닙니다

유영숙 2023. 11. 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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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값은 덜 올랐을지 모르지만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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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숙 기자]

나는 2000년 3월, 인천 서구에 있는 아파트에 입주하여 23년이 넘도록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물론 돈으로 따지면 손해를 많이 보았지만, 아들 둘 대학 졸업시키고, 장가도 보내고, 손자도 세 명이나 선물 받았으니 얻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서울 아파트 팔고 한 이사... 끝까지 심란했다 
 
 벚나무도 23년이 되어 멋진 벚꽃을 피워주어 아파트에서 벚꽃 축제를 즐긴다.
ⓒ 유영숙
 
결혼하고 서울에 살았다. 처음에는 전세를 살다가 결혼 4년 차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를 사서 이사하였다. 요즘은 집 사기가 어렵지만, 예전에는 결혼하여 맞벌이하며 월급 아끼며 저축하면 그럭 저럭 집을 살 수 있었다.

그 집에서 아들 둘을 낳아서 키우다 보니 좁아서 같은 단지 내에 있는 조금 큰 평수 아파트로 융자 오백만 원을 받아서 이사하였다. 5층 아파트라 재건축이 진행되었지만, 재건축도 될 듯 말 듯 시간을 끌었다. 언제 될지 몰랐다.

남편은 본적이 서울이다. 늘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마침 건설업인 남편 회사에서 아파트 공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남편과 다르게 대학 다닐 때부터 계속 서울에서 살아서 서울을 벗어나면 못 살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이 너무 간절하게 이사하고 싶어 해서, 당시 공사하는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살던 아파트는 내부 인테리어를 잘해 놓아서 쉽게 팔렸다. 입주하기 전에 잠시 작은 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다. 입주할 아파트는 IMF가 터져서 공사가 지연되어 예정보다 입주가 늦어졌다. 드디어 아파트가 완성되어 2000년 3월에 입주하게 되었다.

입주할 때까지 서울을 떠난다는 것이 너무 심란해서 즐겁지 않았다. 입주할 아파트지만, 딱 한 번밖에 방문하지 않았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도 문제였고, 아이들 학교도 걱정이 되었다. 과거 결혼할 때 장만한 가구와 가전제품은 이사하면서 모두 버렸다. 가구를 들이고 가전제품도 새 것으로 다 바꿔서 입주하였다. 그래도 기쁘지 않았다. 입주하는 날도 나는 출근을 하고 이사도 남편이 다했다. 물론 이삿짐센터 도움을 받았다.

이 곳에서 보낸 사계절, 장점과 단점 
  
 아파트 옆 작은 동산에서 사계절을 느낀다. 꽃이 피고 단풍이 들고 눈 내리는 풍경 덕에 전원주택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 유영숙
 
이사 와서 좋은 점은 아파트가 제법 크다는 거였다. 평수가 크다 보니 처음에는 현관부터 끝에 있는 안방까지 길게 느껴졌는데, 살다 보니 크다는 생각이 안 든다. 주방도 넓고 거실도 넓어서 좋았다. 아들 둘도 방을 하나씩 쓰게 하였다. 서재도 만들고 드레스룸도 있다. 좋은 점은 방이 많고, 공간이 넓다는 것뿐이었다.

처음 입주하다 보니 교통도 안 좋아서 승용차로 출퇴근할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에서 자체 전세버스를 마련하여 송정역까지 운영해 주었다. 가끔 이용하긴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주로 승용차로 출퇴근하였다. 운전면허는 오래전에 따 놓았지만, 장롱 면허라 운전을 안 했다. 이사 오기 전에 시내 연수를 다시 받고 집과 학교를 몇 번 오가는 연습 운전을 하고서야 차를 가지고 출근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들들을 태우고 집에 오다가 길을 잘못 들어 행주대교를 건너 간 적도 있다. 그때 얼마나 당황했던지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지금이야 친절한 네비게이션이 있으니 운전하기 얼마나 좋은가. 난 정말 길치가 맞다. 공간 지능이 낮아 지금까지도 주차는 참 못한다. 지금까지 뒤에서 받힌 적은 한 번 있었지만, 그 외엔 사고도 없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아이들 대학도 보내고 했으니 다시 서울로 나오라고 했다. 나도 가고 싶다. 그런데 그 사이에 서울 집값은 껑쭝 뛰었고, 인천 집값은 많이 오르지 않았다. 서울에서 살던 아파트도 재건축하였으니 굳이 셈하자면 도대체 얼마를 손해 본 걸까. 돈으로 생각하면 아깝다.
 
 아파트와 연결된 근린 공원. 근처 근린공원에서 손자와 공도 차고, 남편과 운동도 한다.
ⓒ 유영숙
 
2000년 3월에 우리 동에서 1등으로 입주해서 23년 넘게 같은 집에 살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입주한 집은 다 이사 나가고 없다. 오래 살다 보니 곳곳이 낡고 지저분해져서 욕실도 리모델링하고, 싱크대도 교체하였다. 마루도 바꾸고, 새시도 모두 교체하였다.

작은아들 방도 베란다를 터서 넓게 만들어 쌍둥이 손주들 방으로 바꾸었다. 큰아들 쓰던 방은 붙박이장을 맞추어 드레스룸으로 바꾸었다. 아파트는 도배만 해도 새집이 된다. 우리 집에 오면 새 아파트 같다고 한다. 이사 가는 비용이 아파트 리모델링 하는 데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아들들이 장가가서 분가해 살다 보니, 둘이 살기엔 지금 집이 너무 넓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손자들이 놀러 오면 넓어서 좋아한다. 그네 미끄럼틀도 타고 트램펄린도 들여놓았다. 며느리가 어린이집보다 좋다고 하였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나게 노는 손자들을 보며 이사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3년을 살다 보니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아파트 베란다 앞 살구나무. 봄이 되면 살구나무가 화사한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주렁주렁 살구가 달린다. 옆 동산에서 날아온 새의 보금 자리가 되기도 하고, 새들이 집도 지어 새끼 새도 태어나곤 한다.
ⓒ 유영숙
 
아파트 옆에 동산도 있고, 아파트 단지와 연결된 근린공원도 있다. 베란다에서 눈 오는 산을 볼 때면 꼭 시골 별장에 있는 기분이 든다. 요즘 세컨드 하우스가 유행이지만, 하나도 안 부럽다.

오래 살다 보니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골프 연습장에서 함께 운동하던 지역 주민들과 형 아우 하며 친하게 지낸다. 애경사도 함께하고 모임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난다.

몇 년 전부터 우리 동네 옆에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아파트가 많이 지어졌다. 2017년에 지하철도 들어와서 서울 나가기가 편해졌다. 이제 승용차 없이도 못 가는 곳이 없다. 사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반려식물, 23년동안 이사하지 않아서 반려식물도 오래 키우게 되어 가족 같다.
ⓒ 유영숙
 
아파트가 오래되다 보니 아파트 나무도 함께 나이 들어 녹음이 우거졌다. 봄이면 아파트 산책길 양쪽에 20년이 넘는 벚나무가 벚꽃으로 화려하다. 벚꽃 구경을 갈 필요가 없다. 곳곳에 있는 키 큰 잣나무도 멋지다. 우리 집 베란다 앞 살구나무에는 살구꽃이 떨어진 자리에 주황색 살구가 주렁주렁 달리고, 여름에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새집을 짓고 알을 품어 새끼 새도 태어난다.

아무래도 나는 이 곳 아파트가 재건축될 때까지, 아니 아마도 이 세상 떠날 때까지 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사 가지 않으니 베란다에서 반려 식물도 많이 키운다. 집이 참 편하고, 23년 넘게 살고 있는 지금 아파트가 참 좋다. 아파트는 돈으로 환원되는 세상이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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